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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극단선택 네 남편, 극락 보내자”…굿 비용 32억 뜯은 동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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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극단선택에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사기

돈 가로채 생활비·자녀 아파트 대금 등으로 써

법원 “불안한 정신 악용, 죄 무거워” 징역 10년


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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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극단적 선택으로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굿값 명목으로 수십억원을 뜯어낸 60대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1부(재판장 신교식)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ㄱ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ㄱ씨는 2013년 2월께 친구 ㄴ씨가 남편의 극단적 선택으로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접근해 “죽은 남편을 위해 굿을 하지 않으면 남편이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된다”고 속여 2021년 2월까지 8년 동안 584차례에 걸쳐 32억9804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ㄱ씨와 ㄴ씨는 같은 시장에서 장사하며 알게 된 사이였다. ㄱ씨가 “우리는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접근해 친분을 쌓게 됐다. 죽은 남편 이야기를 하며 굿을 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70만원을 받아 간 이후 ㄱ씨는 ㄴ씨에게 “너에게 신기가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굿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네 아들이 죽거나 정상적으로 살 수 없다”며 무속인의 말을 대신 전하는 것처럼 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르는 굿값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ㄱ씨는 ㄴ씨와 전화 통화 때 굿을 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했고, ㄴ씨가 돈이 없다고 하면 자신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굿을 하라고 압박한 뒤 나중에 돌려받았다. 하지만 ㄴ씨에게 무당을 소개하거나 굿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 적은 없었다. ㄱ씨는 스스로 굿을 할 능력이나 다른 사람에게 굿을 부탁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다.

ㄴ씨는 ㄱ씨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부동산 등 재산을 처분해 현금을 마련했는데, 이 역시 ㄱ씨가 시킨 일이었다. ㄱ씨는 ㄴ씨에게 받은 돈을 생활비·노후자금으로 쓸 생각이었고, 아파트 구입 비용으로 딸들에게 돈을 보내기도 했다. ㄱ씨는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ㄴ씨에게 굿을 해주겠다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고, 무당을 언급한 적도 없다.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하지만, 빌린 돈이고 일부는 갚았기 때문에 공소장에 담긴 금액을 모두 다 가로챘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ㄱ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ㄱ씨는 피해자의 불안한 정신 상태나 불우한 가족사를 이용해 굿 명목으로 거액을 편취했다”며 “그런데도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고 있는 점 등을 비춰 볼 때 죄의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ㄱ씨는 자신의 생활비나 가족들을 위해 ㄴ씨로부터 편취한 돈을 사용해, 그 범행의 경위나 동기도 매우 불량하다”며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이 사건 범행으로 상당한 경제적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이며, 여전히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양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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