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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배터리 불나면 일반차보다 끄기 힘든데… 대비는 걸음마 수준 [뉴스 인사이드 - 잇단 전기차 화재 불안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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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1대 진화 3시간 걸렸다

고압 전기 배터리 조금만 손상돼도 열폭주

2022년 전기차 화재 44건… 1년 새 2배 증가

배터리 물 담가 진화 ‘소화 수조’ 15개뿐

지하 충전소 많은 한국, 더욱 취약

시설 밀집돼 대형화재로 번질 가능성 커

배터리 이상 경고 등 안전기능 강화 시급

“100% 완충 피하고 완속충전… 위험 줄여”

#1. 지난 7일 서울 성동구 테슬라 서비스센터에 입고된 모델X 차량에서 화재가 났다. 운행 중 이상을 감지한 차주가 수리를 맡기기 위해 서비스센터에 차를 입고했는데 세워둔 차에서 갑자기 불이 난 것이다. 펌프차 등 소방 장비 27대가 출동해 3시간 가까이 물줄기를 쏟아내 겨우 불길을 잡았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차량은 절반가량이 탔다.

#2. 지난해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폐차장에서 폐차 처리된 테슬라 차량에서 불이 났다. 소방관들이 즉시 출동해 진화 작업을 시작했지만 아무리 물을 뿌려도 배터리 칸에서 불길이 계속 살아났다. 소방관들은 트랙터를 이용해 땅을 파고 여기에 물을 채운 뒤 차량을 통째로 물웅덩이에 집어넣어 배터리를 물에 잠기게 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불길을 잡았다.

최근 테슬라 차량의 화재가 잇따르며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사고 발생 장소는 제각각이지만 일단 불이 붙으면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면 대처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하며 친환경차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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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세종시 소정면 운당리 국도 1호선을 달리던 테슬라 전기차가 화재로 전소돼 뼈대만 남아있다. 세종소방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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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화재에 소비자 불안 확산

27일 소방청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기차 화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총 44건이다. 앞서 2020년에는 11건, 2021년에는 24건이 발생해 매년 2배가량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테슬라 외에 국내 완성차업체에서 만든 전기차에서도 화재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경북 영주에서는 건물 외벽을 들이받은 현대차 아이오닉5 택시에서 불이 났고 70대 운전자가 숨졌다. 같은 달 15일에는 제주 서귀포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쉐보레 볼트 EV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전기차 화재 사고가 늘어나는 것은 도로에 운행되는 전기차 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자동차 등록현황을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38만9855대다. 전년도(23만1443대)보다 15만8412대(68.4%) 급증했다.

전기차 화재 건수 자체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매우 적지만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피해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기차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도 확산하고 있다. 전기차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지 1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만큼 전기차 화재 관련 조사나 연구는 아직 많이 나오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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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교적 쉽게 화재가 진압되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 화재는 진압 방법도 쉽지 않다. 열전도를 막기 위해 수조에 넣고 물에 완전히 담그는 방법 정도가 알려져 있다. 현재 전국에 있는 소화 수조는 지난해 8월 기준으로 15개 정도로 화재 대비도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테슬라의 긴급 대응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모델S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배터리에 직접 물을 뿌려 불을 끄는 데 꼬박 24시간이 걸리는데, 이마저도 1만1000∼3만ℓ의 물이 필요하다.

◆전기차 화재 예방하려면

전기차의 화재 위험을 높이는 요인은 전기차의 주요 부품인 배터리다. 대부분의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로, 내부 분리막에 손상이 생겨 양극재와 음극재가 만나면서 과도한 전류가 흐르고 열폭주를 일으키며 화재로 이어진다. 김철수 호남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지난해 7월 한국자동차기자협회가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전기차는 전기를 이용해 구동되는 자동차인데, 무거운 차량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전압의 전기가 사용되고 많은 전기를 저장하기 위해 높은 에너지 밀도를 지닌 배터리가 필요하다”며 “전기차는 근본적으로 전기로 인한 화재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품질과 안전도를 더욱 높일 필요가 있다. 배터리 셀 자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의 기능을 배터리 이상 경고, 화재 발생 경보 등까지 확대하는 등 개선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하주차장 등 도심의 밀집 시설이 많은 국내 환경에 맞게 안전기준과 시설을 확충하고, 사고 시 대처법을 알릴 필요성도 제기된다. 서울시의 전기차 충전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서울시 전체 전기차 충전소(3만4132개) 중 지하 충전소는 92%(3만1694개)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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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이 대부분 모여 있어 화재가 확산하면 걷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지하 안전시설을 강화하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며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전기차와 내연기관차가 무엇이 다른지 등을 충분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사용할 때 완충 비율을 낮추고 완속 충전을 하는 것도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 기술로 100% 예방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시스템상에서 완충 비율을 85% 정도로 낮추고, 배터리의 노화를 촉진하는 급속충전보다는 완속충전을 하면 화재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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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성동구 테슬라 서비스센터에서 일어난 차량 화재 사고. 서울 성동소방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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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기차 10만대당 화재 건수 25.1대 내연기관차 1529.9대보다 훨씬 낮아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도입된 지 이제 갓 10년 정도가 지난 만큼 전기차 화재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진 객관적 자료와 상식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전기차 화재에 관한 내용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화재가 잘 발생하는가.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와 교통통계국에 따르면 전기차 10만대당 화재 건수는 25.1대다. 이는 내연기관차(10만대당 1529.9대), 하이브리드차량(10만대당 3475.5대)에 비해 훨씬 낮은 수치다. 국내에서도 지난해까지 누적 자동차 등록대수 대비 화재사고 발생 비율을 살펴보면 전기차 화재 비율은 0.01%로, 내연기관차(0.018%)보다 낮다. 다만 전기차가 2010년 무렵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것을 고려했을 때 전기차가 좀더 노후화되고 차량과 배터리가 마모되면 화재 발생 가능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

─전기차 화재의 전조증상이 있는가.

“배터리셀에 이상이 있으면 배터리관리시스템(BMS)에서 이상을 감지한 다음에 경고등을 표시한다. 경고등과 별개로 배터리 팬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가스가 새어나오면 쉭쉭 소리가 난다. 이 단계까지 오면 화재가 진행되는 것이다. 진압은 불가한 상태니 주변 안전한 곳과 지상으로 차량을 이동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차량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수증기 구름이 감지되면 잠재적인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차량에서 내려야 한다.”

─전기차 화재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차량이 충돌하거나 도로의 파편에 부딪히거나 물에 잠겼을 때 리튬이온 배터리셀에 합선이 생기면 발생한다. 배터리셀이 손상됐거나 결함이 있는 경우 발화 가능성이 높아진다. 차량을 충전할 때나 수리 중에 화재가 발생한 경우도 있다.”

─전기차를 운전할 때 물을 통과해도 괜찮은가.

“전기차가 손상을 입으려면 장기간 물에 완전히 잠겨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기차를 타고 빗속이나 물웅덩이 등을 통과하는 것은 괜찮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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