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은행도 9 to 6" 힘받는 영업시간 다양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파특보가 내려진 지난 27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인근 KB국민은행 남대문종합금융센터. 이곳은 주변 다른 은행들이 문을 닫은 오후 3시 30분 이후에도 2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양한 연령대 고객들로 붐볐다. 이 점포는 국민은행이 작년 3월부터 확대 시행한 '9to6 뱅크'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이날 오후 5시쯤 대기 인원은 14명에 달해 소파가 거의 찼다. 40대 자영업자 김 모씨는 "다른 은행은 다 문을 닫아서 발을 동동 구르다 여기는 늦게까지 영업한다고 들어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9to6 뱅크 직원들은 오전·오후조로 나눠 7시간씩 근무한다. 은행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오후조에 근무하는 김은정 대리는 "아이 둘을 키우는데 아침을 챙겨 먹이고 등교하는 것까지 보고 출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이 30일부터 은행 영업시간을 코로나19 사태 이전으로 정상화하는 가운데 점포 운영시간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9일 은행권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과 금융노조가 코로나19로 단축한 영업시간을 원상 복구하는 과정에서 합의에 실패한 것은, 노조 측이 은행 창구 영업시간을 '6시간30분'으로 30분 줄이자고 주장한 반면 은행권은 기존 7시간 유지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금융노조 측에 '선(先)복구'한 뒤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점·폐점 시간을 논의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노조와 사측 안 모두 소비자 눈높이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오후 4시가 넘어 은행 점포를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국민은행이 9to6 뱅크를 도입한 계기가 된 것은 고객 의견 조사였다. 국민은행이 자사 고객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오후 4시 이후 영업점 방문 의향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86%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특히 20·30대는 오후 4시 종료에 대한 불편 경험률이 73%에 달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9to6 뱅크의 고객 추천 지수는 75.3%로, 국민은행 전체 영업점 평균보다 17.2%포인트 높게 나온 내부 조사 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9to6 뱅크를 전국 72곳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 점포의 영업 시작과 종료 시간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노조의 반발 때문이다. 국민은행의 9to6 뱅크도 노조의 반대로 힘겹게 시작했다. 은행의 일반적인 영업시간과 달리 운영되는 이른바 '탄력점포'는 작년 말 기준 919개로 전체 점포(6094개, 2021년 말 기준)의 15%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대다수가 관공서 소재 점포(438개), 고기능 무인자동화 기기(300개), 환전센터(14개) 등으로 일반인이 이용하는 대면 서비스와 거리가 멀다. 국내 4대 은행 중 대면영업으로 은행 운영시간을 늘린 경우는 9to6 뱅크가 사실상 유일하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노조가 은행 점포 운영시간을 다양화하자며 영업시간 '6시간30분'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공약으로 내건 주 4.5일제 추진과 관련 있다"며 "총 영업시간 유지를 두고 노사 간에 또 다른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해외 은행들은 대체로 국내 은행들보다 일찍 문을 열고 늦게까지 영업한다. 주중에 업무로 바쁜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를 배려해 토요일에도 반나절을 영업한다. JP모건, 뱅크오브아메리카, 웰스파고, 씨티 등 미국 4대 은행의 경우 대다수 영업점이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5·6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토요일에도 오전 9시에 문을 여는 것이 '국룰'에 가깝고, 최장 오후 2시까지 영업하는 지점도 있다. 국내 은행들이 '모바일 금융' 등 디지털 혁신과 글로벌 진출에서 벤치마킹하는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는 주중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영업한다. 영업시간은 8시간으로 한국보다 1시간 더 길다.

전문가들은 고객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순호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은 "은행 영업시간을 정상화한 것처럼 서비스업의 본질인 고객의 니즈에 철저히 맞춘다는 게 제1 원칙"이라며 "인건비 등을 감안해 탄력적인 인력 운용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