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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슈 로봇이 온다

‘로봇 벌레’로 수리·구조 기술 점프 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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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딱정벌레목에 속한 곤충인 방아벌레는 몸통을 뒤집은 뒤 몸길이의 수십배를 점프할 수 있는데 공중으로 뛰는 순간 몸에서 딸깍 소리가 난다. 이 때문에 영어명으로 ‘클릭 비틀(click beetle)’이라고 불린다. 위스콘신대 밀워키캠퍼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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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연구진 개발한 소형 로봇
‘방아벌레’ 구조 공학적으로 재현
말렸다 풀어지는 몸통 근육 본떠
활시위 모양 장치로 점프력 높여

100원짜리 동전만 한 작은 물체가 잡힌 한 동영상 장면. 고요하고 지루한 상황이 얼마간 이어진다. 그런데 갑자기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이 정체불명의 작은 물체가 공중으로 펄쩍 뛰어오른다. 점프 높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십㎝다. 이 화면은 최근 인터넷에 공개된 ‘로봇 벌레’의 작동 모습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 연구진이 딱정벌레목에 속한 곤충인 ‘방아벌레’를 공학적으로 재현한 소형 로봇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이 로봇을 향후 복잡한 기계 안을 뛰어다니며 고장 부위를 발견하고, 재난 현장에서 잔해를 뛰어넘으며 사람 등을 찾는 일에 활용할 계획이다.

경향신문

미국과 영국 연구진이 로봇 벌레가 작동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연속 촬영했다. 화살의 시위처럼 당겨져 있던 기계장치가 일순간 바닥을 내리치자 로봇 벌레의 몸통 전체가 공중으로 날아간다. 최종 점프 높이는 90㎝에 이르렀다. 일리노이대 제공


■ ‘딸깍’ 솟구치는 이상한 벌레

미국 일리노이대와 텍사스대, 영국 버밍엄대와 옥스퍼드대 소속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지난 23일(미국 현지시간) 엄청난 탄성력을 발휘해 공중으로 점프할 수 있는 로봇 벌레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진이 로봇을 개발할 때 모델로 삼은 건 방아벌레다. 방아벌레는 한국에 100여종, 전 세계에는 9000여종이 분포한다. 식물이 있는 곳에선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방아벌레는 다른 곤충에게는 보기 드문 비상한 능력이 있다. 가공할 만한 점프력이다. 다 자라면 몸 길이가 약 2㎝인데, 이보다 무려 20배를 더 뛸 수 있다. 주로 몸통이 뒤집혀 배가 하늘을 보고 있을 때 점프한다.

다리를 사용하지 않고도 몸속 기관을 이용한 탄력으로 순식간에 튀어오르는 것이다.

방아발레는 이런 점프력을 천적과 맞닥뜨려 도망갈 때 사용한다.

아무리 발이 빠른 천적이어도 수직으로 재빠르게 솟구치는 방아벌레를 추격하는 건 쉽지 않다.

■ 몸통 구조 인공적으로 재현

연구진이 이런 방아벌레의 특징을 가져와 만든 로봇 벌레는 중량이 1.6g, 몸 길이는 2㎝다. 실제 방아벌레와 덩치가 비슷하다.

그런데 점프 높이가 무려 90㎝다. 몸 길이의 45배다. 방아벌레보다 점프 능력이 2배 이상이다. 만약 이런 점프 능력이 사람에게도 있다면 키 170㎝의 인간이 77m 공중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셈이다. 아파트 25층 높이다.

강력한 점프력의 비결은 로봇의 독특한 몸통 내부에 있다. 활 시위 모양의 작은 기계장치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탄성력을 만든다. 탄성력으로 화살을 날려보내는 게 아니라 땅을 내리친다.

인간의 근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마치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뒤 손바닥으로 바닥을 강하게 내리쳐 몸을 공중 부양하는 것 같은 작동 원리다.

로봇 벌레의 이런 내부 구조는 진짜 살아 있는 방아벌레의 신체를 참고해 만들었다. 방아벌레는 몸통 흉곽 안에 태엽처럼 돌돌 말리는 근육을 갖고 있는데, 이를 일순간에 푸는 방식으로 탄성력을 뿜어낸다. 점프하는 순간에 방아벌레의 몸속에서는 ‘딸깍’ 소리가 난다. 방아벌레의 영어 이름이 ‘클릭 비틀(click beetle)’인 이유다.

제트엔진 등 복잡한 장비 파고들어
고장 난 부분 촬영…수리 최소화
건물 붕괴 등 재난 상황에 투입
잔해 넘나들며 생존자 파악 가능

■ 제트엔진 수리·인명구조 활용

이 로봇 벌레는 어디에 쓰일까. 연구진은 제트엔진 같은 복잡한 장비 속에 로봇 벌레를 투입해 고장 부위를 알아내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거대하고 복잡한 장비일수록 정확한 고장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선 여러 부품을 하나하나 들어내는 분해가 필요하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소요된다. 카메라를 부착한 로봇 벌레가 제트엔진이나 발전기 터빈의 좁은 틈으로 파고들어 각 부품의 작동 상태를 촬영한다면 그런 번거로운 작업을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이런 거대한 장비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로봇 벌레가 기어 올라가기 어려운 큰 부품이 많다. 이런 부품을 이동 과정에서 만나면 훌쩍 뛰어넘는 능력을 로봇 벌레는 발휘할 것으로 연구진은 보고 있다.

건물 붕괴로 인한 재난 현장에 투입할 수도 있다. 무너진 기둥과 벽이 만든 잔해 속으로 기어 들어가 장애물을 뛰어넘어가며 매몰자의 위치를 알아내는 것이다. 단기간에 걷어낼 수 없는 콘크리트 잔해는 매몰자의 위치 파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인데, 이를 극복할 방안을 로봇 벌레가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을 이끈 사메 타우픽 일리노이대 교수는 공식자료를 통해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지 알기 위해 땅 위에서 자세한 사진을 찍는 데 이번 로봇이 사용될 수도 있다”며 “무인기와 함께 농장 관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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