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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모두가 ‘전기차’로 갈 때, 브라질만 ‘바이오연료’ 외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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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GREEN] 브라질의 특이한 에너지 전환


한겨레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북서쪽으로 약 570km 떨어진 바우파라이주 농장에서 사탕수수를 수확하고 있다. 브라질에선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로 자동차를 운행한다. 브라질은 세계 최대 사탕수수 생산국이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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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제 전기자동차를 미래형 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추세다. 그런데 바이오에탄올과 바이오디젤로 전기보다 더 친환경적인 연료를 개발했다는 주장이 브라질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공업단지 안에 자리잡은 공장. 밤색 타일이 깔린 이 공장에서 버스 제조업체 엘레트라가 교통계의 일대 변혁을 꾀하고 있다. 초록빛 형광 로고가 벽에서 바닥으로 비치고, 로비에는 친환경 미래를 광고하는 소책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이 기업이 “전기버스 시장의 리더”라는 소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밀레나 호마누 사장은 공장을 안내하면서 “우리 회사는 전기 엔진으로 운행되는 버스를 연간 1800대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브라질의 열악한 교통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 버스라는 점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는 브라질에서 이만큼 튼튼한 버스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은 자사뿐이라면서, 이 차가 열대우림 지역 국가에 적합하다는 말도 덧붙인다. 구멍이 파인 도로에서도 안전하게 달리는 바퀴가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상한 점이 있다. 방문객들은 회사를 구경하는 동안 그 이유를 금세 알아낼 수 있다. 차체나 엔진 룸 주변에서 나사 고정 작업을 하는 노동자 몇 명만 눈에 뜨일 뿐, 공장 전체가 으스스할 만큼 비어 있다. 호마누는 “요즘 작업량이 우리 회사가 감당할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는 말로 현 상황을 인정한다.

전기버스 사업은 이곳에서 안전한 사업이 아니다. 전기버스를 주문한 도시가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수도 상파울루가 현재 운행 중인 1만4500대 버스 중 일부를 앞으로 몇 년 안에 전기버스로 대체할 계획을 세워놓기는 했다. 하지만 수백만 인구의 이 대도시에서 현재 운행되는 전기버스는 18대뿐이다.

바이오에탄올이 유종의 27%


브라질에서는 교통 전환이 전세계 여느 도시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물론 여기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확실하다. 다만 독일이나 중국, 미국에서처럼 모든 차량을 전기화하는 방법이 대세가 아니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브라질은 나름의 계획, 기이하게 들릴 만큼 특별한 계획을 수립해놓았다. 거대한 규모의 농업으로 이 기후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소형차는 휘발유와 함께 알코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바이오연료를 사용할 수 있도록 엔진이 만들졌다. 버스와 화물차량은 콩이나 피마자 씨, 또는 야자 열매에서 추출한 바이오디젤로, 자가용은 옥수수나 사탕수수에서 나온 바이오에탄올로 운행한다.

사탕수수는 전세계를 통틀어 브라질에서 가장 많이 자라는 식물이다. 농부들은 오스트리아 국토 크기와 맞먹는 너른 땅에서 놀랄 만치 효과적으로 이 식물을 심고 거름을 주고 추수한다.

식물성 기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생각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시작은 독재정권 시절이던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닥쳤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석유 수입 가격이 갑자기 상승하자 당시 정권을 잡았던 군 장성들은 브라질의 사탕수수 생산 비용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자체 조달 연료의 생산량이 점차 늘었다.

1979년 브라질에서는 피아트(Fiat) 147 차종이 시장에 나왔다. 바이오연료만 주유하는 최초의 자동차였다. 이후 브라질 내 주유소에서 파는 기름이 점점 바이오에탄올로 대체됐고, 현재는 그 비율이 27%에 이른다. 2003년에는 폴크스바겐이 에탄올과 휘발유를 때에 따라 바꿔 가며 주유할 수 있는 소형차 골(Gol) 1.6 토털플렉스(Total Flex)를 시장에 선보였다. 현재 운행하는 자동차 중 다수는 이런 형태로 기름을 넣는다.

웰링그톤 다마세누는 “이렇게 된 건 어쩌면 브라질이 전기차 생산 개발에 좀 태만했던 탓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브라질에서는 전통적인 내연기관과 구동장치에만 늘 신경을 써왔다.” 다마세누는 상파울루 남부에 있는 상베르나르두 두 캄푸 지역 금속노조에서 자동차산업 부문을 담당하는 전문가다. 이곳에는 버스 제작업체인 엘레트라 외에도 폴크스바겐, 다임러가 공장을 두고 있다.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브라질 경제의 중심 지역이다.

다마세누는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2.5%와 120만 개 일자리가 자동차산업에 걸려 있다고 추산한다. 이 나라의 전직 대통령이자 2023년 1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한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1970년대 이 지역에서 노동운동 지도자로 경력을 쌓았다. 다마세누는 과거의 이 연결고리가 브라질의 자동차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물론 우리는 노조원이므로 전기 기술 도입에 회의적”이라고 다시 입을 연 다마세누는 “이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브라질에서 생산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완제품 상태로 중국에서 수입되는 고가의 배터리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는 전기자동차에 의구심을 갖고 있다. “브라질은 큰 나라다. 국토 전체를 아우르도록 전기 공급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이 들겠는가?”

이 질문의 답은 이렇다. 일단 기본시설만 갖추는 데 3500억달러(약 455조원)가 필요하다. 이는 브라질 국립에너지연구소(EPE)가 산출한 액수로, 브라질 한 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과 맞먹는 금액이다. 다마세누는 그렇게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정치가가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구나 도입 초반에는 부유층과 중산층만 전기자동차를 사용할 뿐, 빈곤층은 여전히 상당 기간 기존 내연기관차를 몰 것이다.

이런 이유로 브라질에서 전기자동차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자동차 시장은 2곳뿐이다. 시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승합차와 버스, 바로 엘레트라가 만드는 차량들이다. 현재 브라질의 대형차 생산 회사 대부분이 이 용도의 차량 모델을 선보였고, 테스트 프로젝트도 한두 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다.

정부도 전기차 생산을 지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시장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중국산 전기버스에 고가의 관세를 부과하는 게 바로 그런 예다. 폴크스바겐의 라틴아메리카 지부장이었던 파블루 지 시는 “라틴아메리카는 바이오연료를 기반으로 한 기술적 해법을 개발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한겨레

바우파라이주에 있는 사탕수수 가공업체 다마타(Da Mata)의 공장.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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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에탄올 하이브리드


전기차를 향한 브라질 정부의 적대성은 언뜻 보기에 매우 의아스러운 현상이다. 브라질에는 전기가 풍부할 뿐 아니라, 전기는 친환경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닌가. 브라질 전기의 85%는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생산된다. 수력발전이 큰 몫을 차지하고, 몇 년 전부터는 태양광과 풍력도 비중이 늘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 환경 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다른 연구소들이다. 그중 하나인 사탕수수연구소(CTC, Centro de Tecnologia Canavieira)는 상파울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연구소에 따르면, 전기보다 바이오연료를 사용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게 훨씬 더 친환경적이다. 휘발유를 사용하는 자동차 한 대가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운행거리 1㎞당 약 155g에 이른다. 여기에 바이오연료를 27% 섞어 사용하면 배기가스는 131g으로 줄어들고, 에탄올만으로 운행할 경우 85g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녹색전기가 많이 개발된 덕분에 전기차는 환경기술을 이용해 이보다 좀더 나은 결과를 보인다(1㎞당 이산화탄소 배출량 35g). 그런데 에탄올 구동장치와 배터리를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배기가스 29g으로 최상의 성적을 낸다. 일본 도요타는 자사의 코롤라(Corolla)와 코롤라 크로스(Corolla Cross) 브랜드로 이미 이 방향의 차종을 내놓았다. 다만 CTC와 사탕수수 산업은 아주 가까운 사이이므로, 이 연구소의 평가자료는 조심스럽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한편, 자동차산업 쪽에서도 CTC가 발표한 수치를 열심히 퍼뜨린다. 브라질의 교통전환은 농업과 손을 맞잡고 진행된다고 모두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 계획이 내포한 단점은 말하기를 꺼린다. 이를테면 원료 재배에 방대한 토지가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연료를 위한 사탕수수나 옥수수, 콩 등의 경작은 식량 내지 사료 생산과 경쟁관계에 있다.

브라질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어마어마한 면적의 초지와 휴경지가 즐비하다. 따라서 경작지를 따로 넓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난 몇십 년간 농업기업들은 사람의 발길이 전혀 닿지 않았던 자연, 이를테면 늪이라든가 판타나우(Pantanal·파라과이강 유역의 세계에서 가장 큰 습지), 열대우림까지 경작 지역을 확대했다. 때로는 이런 위협이 아주 직접적으로 행사되기도 한다. 2019년에는 환경문제에 민감하지 않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정부가 이런 지역 내에서 사탕수수 경작을 자유화한 일도 있었다.

브라질 정부가 자국 농업 기반의 교통 전환을 중심으로 수출경제를 확대하는 것까지 고려하면서 우림지역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2023년 1월1일 다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룰라 다시우바는 첫 번째 임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이미 ‘에탄올 외교’를 추진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모두에 에탄올을 비롯한 바이오연료 수출과 기술협력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현재 여기에 관심 갖는 나라는 인도이고, 에너지 보유국에서 수입에 많이 의존하는 한국도 이에 속한다.

한겨레

브라질 쿠이아바에서 주유소 직원이 자동차에 에탄올을 채우고 있다. 브라질의 소형차들은 휘발유와 함께 알코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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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로켓용 바이오연료


상파울루의 자우 마을에서 농업경영을 하는 농부 에두아르두 호망은 어쨌든 이러한 개발은 잘하는 일이라고 반색한다. “우리는 다섯 가족으로 구성된 한 조합”이라며 말을 이어간다. “한 가족당 약 250㏊씩 땅을 사용할 수 있다.” 호망과 그의 이웃들은 브라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주요 농업 지역에서 살고 있다. 상파울루에서 북서쪽으로 약 세 시간 반을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사탕수수와 옥수수의 진초록색으로 뒤덮인 광대한 밭이 이어진다.

호망은 농부답게 말할 줄 안다. 그는 이곳에서도 잘 번식하고 일찍이 상도 받은 커피를 칭찬하고, 모종과 수확용 기계에 관해, 기차는 물론 선박까지 포함해 이 지역에서 교통경제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 이야기한다. 해충 방제를 위한 드론이며 토양의 질을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막힘없다.

그런데 몇 분 지나면 그에게서 농부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다. 농부라기보다 오히려 에너지경제에 박식한 괴짜 같다. 호망은 기술개발과 연료 가공에 관한 모든 실험에 열성적이다. 바이오알코올, 바이오메탄, 바이오가스 등이 모두 관심 대상이다. 그가 사는 지역에서는 바이오케로신(Biokerosene, 제트 연료)도 생산하는데, 이 연료는 아줄(Azul)항공사 비행기에서 시험을 거친 바 있다.

브라질에서는 교통 에너지 전환 확대가 동시에 농업의 혁신 프로젝트다. 에탄올 연료와 수소 배터리를 결합하는 작업이 하이브리드 차량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다. 트럭과 버스는 기존 바이오디젤보다 엔진에서 문제를 훨씬 적게 일으키는 HVO(Hydro-treated Vegetable Oil·수소화 식물성 오일)-바이오디젤을 사용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폴크스바겐도 이 교통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다음번 주유할 때 에탄올을 얼마큼 섞을까요?”라고 승용차 주인에게 물어보는 앱부터 차세대 하이테크 엔진 개발까지 브라질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얼마 전 이 기업은 상파울루에 에탄올 개발센터를 새로 열었다.

이곳은 상상력이 무한히 펼쳐지는 공간이다. 독일 항공우주센터는 이미 브라질우주청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바이오알코올을 로켓연료로 사용하는 연구다.

토마스 피셔만 Thomas Fischmann <차이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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