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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하지말라’가 365개, ‘하라’가 248개… 십계명을 삶에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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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경전 토라와 탈무드

조선일보

히브리 성경 도입부 처음 다섯 권인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는 모세가 저술했다는 전승에 따라 ‘모세오경’이라 하며, 유대인들은 토라라 부른다. 유대인에게 토라 공부는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이자 평생 공부해야 할 거룩한 대상이다. 지난 2014년 8월 랍비 아브라함 이삭 쿡(1865~1935)의 예루살렘 생가에서 열린 토라 헌정식에서 참석자들이 두루마리에 적힌 토라의 구절을 보며 감격스러워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레우벤 리블린 당시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스라엘 정부 공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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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있다. 바로 ‘구약성경(히브리 성경)’이다. 구약성경은 ‘토라(율법서)’를 비롯해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구약성경은 책 한 권이 아니라 여러 책을 모아놓은 것이다. 당신 백성에게 개입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율법서 형태로, 때로는 역사서 형태로, 때로는 교훈적 가르침을 통해서, 때로는 예언자의 입을 통해서 기록되었다. 역사가들은 구약성경이 기원전 1200년경에 시작되어 800년 이상에 걸쳐 기록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히브리 성경 도입부 처음 다섯 권이 모세오경이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 다섯 두루마리라 ‘오경’이라 하며, 모세가 저술했다는 전승에 따라 ‘모세오경’이라 한다. 유대인들은 이 모세오경을 ‘토라’라 부른다. 이 ‘토라’가 유대인들의 경전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오경 이외의 예언서나 성문서는 토라를 보조하는 ‘보조 경전’으로 보고 있다. 토라의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예언서’이고 말씀을 삶 속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게 ‘성문서’다.

유대인에게 토라는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토라는 성서 가운데서도 계시의 핵심이다. 계시(revelation)란 “숨겨져 있는 것을 나타내 보여준다”는 뜻이다. 유대인은 합리성을 중시함에도 계시가 합리성보다 우선한다고 믿고 있다. 유대인들의 토라 연구는 그들이 하느님의 계시에 참여하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핵심적인 수단이다. 유대인에게 토라는 지난 과거가 아니라 영원히 현존하는 신비스러운 차원의 이야기다. 따라서 유대인에게 토라 공부는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이자 평생 공부해야 할 거룩한 대상이다. 탈무드에는 토라 연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을 지탱하는 세 가지 기둥이 있다. 첫째는 토라요, 둘째는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요, 셋째는 자선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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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토라를 읽을 때 거룩한 경전에 손을 대지 않기 위해 ‘야드’라고 불리는 도구를 사용한다. /artust


토라에는 창조 이야기를 시작으로 출애굽과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유대인 역사와 하느님에게 받은 십계명을 비롯해 유대 민족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계율이 상세히 적혀 있다. 토라에 실린 계율은 613가지다. 이 가운데 “하지 말라”가 365가지로 1년의 날 수와 같고 “하라”가 248가지로 인간의 뼈와 모든 장기의 수다. 이는 다시 말해 우리가 1년 내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지체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토라는 특별하게 규제하는 것이 없으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허락되어 있다. 율법은 ‘이런저런 일은 하라’고 적혀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런저런 일은 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다. 규제를 최소화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시스템’이다.

유대교에선 토라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래서 유대 회당의 중요한 특징은 예루살렘을 향해 법궤가 놓여 있고, 그 궤 안에는 양피지에 히브리어로 쓰인 ‘모세오경’ 두루마리가 있다. 안식일 아침 예배는 회중이 일어나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드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 뒤 두루마리는 회당 좌석 사이를 돌아간다. 그리고 토라가 낭독된다. 읽기가 끝나면 성경 두루마리는 다시 회중석을 도는데, 이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성경이나 숄의 끝으로 두루마리 성경에 댄 후에 그 숄 끝에 키스한다. 이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외와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토라에 대한 유대인들의 신앙은 놀랍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토라는 대부분 손으로 쓴 토라다. 특히 회당에서 읽히는 토라는 반드시 손으로 쓴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토라를 옮겨 쓰는 과정이 복잡하다. 토라의 내용 중에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반드시 쓰기를 멈추고 목욕한다. 몸과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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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는 해외 거주 유대인들에게도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미국 뉴욕에 있는 한 유대교 회당에서 열린 연례 토라 완독 기념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경전 구절이 적힌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서 있다. /템플 브나이 토라 오브 완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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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에게는 두 가지 율법이 있었다. 하나는 글로 쓴 ‘성문 율법’이요 또 다른 하나는 말로 전해져 내려온 ‘구전 율법’이다. 둘 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가르침이다. 예를 들어 성전을 지으라는 말씀은 ‘성문 율법’인 토라에 기록되어 있고 성전을 짓는 구체적 방법은 ‘구전 율법’에서 설명하고 있다.

구전으로 전승되어 내려온 해설을 곁들인 ‘구전 율법’은 아무리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선대의 구전 설명을 그대로 후대에 전하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교사 역할을 담당했던 랍비들도 시대에 따라 저마다 조금씩 해석 방법이 달랐다. 그 때문에 심지어 해석 방법이 크게 32가지로 분류되기도 했다. 아무리 ‘구전 율법’이 좋다고는 하나 기억력의 한계에 부닥쳤다.

기원전 6세기 에스라에 의해 ‘구전 율법’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후 기록 작업은 후대에 계속 이어졌다. 서기 210년경 랍비 ‘유다 하 나지’는 그간 선배 랍비들이 모아 온 ‘구전 율법’ 편찬에 착수해 6부(농업, 축제, 결혼, 민법과 형법, 제물, 제식) 63편 520장으로 완성했다. 이로써 탈무드의 전신 ‘미쉬나’가 탄생했다. 미쉬나는 오늘날 이스라엘 국법의 뿌리일 정도로 유대인들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유대교는 이를 통해 신앙만이 아니라 생활의 도리도 함께 가르친다. 이때를 계기로 랍비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의 기본 틀이 세워진다. 랍비란 ‘나의 선생님’이란 뜻이다.

그런데 미쉬나는 원론적 내용만 담고 있어,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랍비들은 미쉬나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토론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당시 랍비들은 의사, 상인, 무역상 등 보통 유대인들과 똑같은 직업을 갖고 생활고의 중압감을 안고 살아가면서 율법을 생활에 어떻게 접목해 해석해야 할지를 연구했다. 300여 년 동안의 해석을 모은 것이 ‘게마라’다. 이렇게 미쉬나와 그 해석서 게마라를 한데 합친 것이 탈무드다. 흔히 유대 민족을 ‘책의 백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시기에서 찾아진다. 7권짜리 대백과사전 같은 탈무드를 하루 한 페이지씩 공부하면 7년이 지나야 전질을 겨우 읽을 수 있다. 분량도 많지만 내용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율법을 연구하는 일은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대를 이어 가며 부지런히 경전을 읽는 것이다.

이렇게 탈무드는 원로 랍비들이 후손을 깨우쳐 주기 위해 기원전 500년부터 1000년 동안 현인들의 말과 글을 모아놓은 지혜서이다. 탈무드는 히브리어로 ‘위대한 연구’라는 의미다. 구전 토라 곧 미쉬나가 발전한 탈무드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적 지침과 민족적 동질성을 지켜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유대인들의 삶에는 미리 정해진 답이 없다. 상황에 따라 스스로 답을 찾아 나가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탈무드에 기록된 수많은 토론은 바른길을 찾기 위한 훈련의 흔적이다. 탈무드는 책이라기보다는 삶의 바른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해야 옳다.

구약을 경전으로 삼는 세 종교

유대교 성경 ‘타나크(TANAKH)’는 ‘율법서(Torah), 예언서(Neviim), 성문서(Ketubim)’로 구성되어 총 24권이다. 타나크는 이 세 분류명의 첫 글자를 떼 합성한 이름이다. 유대교는 히브리 원문이 남아 있지 않으면 경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구약성경보다 권수가 적다.

오늘날 구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다. 유대교는 구약만을 성서로 인정한다. 반면 기독교는 구약과 예수 이후의 복음서인 ‘신약’을 함께 성서로 믿는다. 이슬람은 여기에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가 쓴 코란이 보태진다. 코란의 내용을 살펴보면 율법은 모세가, 복음은 예수가 선포했으되 진정한 예언자는 무함마드이고 그의 계시를 최종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렇듯 세 종교의 뿌리가 구약이다.

기독교에서는 그들의 새로운 복음을 신약이라 부르고 유대교의 타나크를 구약이라고 부른다. 유대교는 구약이란 말을 싫어한다. 신성모독적인 개념으로 여긴다. 그래서 구약 대신 ‘히브리 성경’이란 말을 선호한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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