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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필수의료 확충' 발표날…"이럴 거면 공공병원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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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예산 축소에 전문의·동문 등 반발 이어져
삼성家 수천 억 기부에도 290병상 깎아…"1천 병상 이상 반드시 필요"
"NMC 이대로 방치할 거면 민간병원 중심으로 감염병대응체계 만들라"
'예산삭감 철회' 온라인 서명운동 예고…"1만 모이는 대로 대통령실 전달"
노컷뉴스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 등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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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며 대책을 내놓은 31일, 한쪽에서는 "이럴 거면 공공병원을 없애라"며 당국을 겨냥하는 모순된 상황이 벌어졌다.

공공의료의 중심 축인 국립중앙의료원(NMC) 신축·이전 예산이 삭감된 데 반발한 전문의들은 정부가 온전한 투자 없이 말로만 공공의료 확충을 논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립중앙의료원총동문회와 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이 당초 정부가 약속했던 내용에서 크게 후퇴한 것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예산 삭감계획을 철회하고, 중앙의료원을 제대로 세워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이달 초 보건복지부·질병관리청·중앙의료원이 요청한 원안보다 290병상이 깎인 '760병상'을 NMC 예산안으로 결정해 통보했다.

모(母)병원 800병상을 포함해 총 1050병상으로 재탄생할 예정이었던 중앙의료원은 △본원 526병상 △중앙감염병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으로 사업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지난 1958년 북유럽 3국의 지원으로 지어진 중앙의료원은 노후화된 시설로 공공병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신축 논의는 2000년대 초반 본격화됐지만 번번이 지연됐다.

지난해 삼성그룹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7천억(건립 예산은 5천억)을 기부하며 이전 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재부는 원안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과잉 의료공급이 발생한다는 논리로 예산 감축에 나섰다.

코로나19 유행 3년간 대응 최전선에 있었던 의료원 입장에서는 기껏 경영난을 감수하며 환자들을 받아냈더니, 이제 와 정부가 '시장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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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최안나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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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료원 총동문회 조필자 회장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텅 비웠던 병상이 어느 정도 채워질 무렵, 다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기존 환자들을 또 내보내고 병원을 비우며 코로나 환자를 받아야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기재부가 (예산) 축소 이유로 중앙의료원의 낮은 병상이용률(2016~2019년 평균 약 70% 수준)을 근거로 든 것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며 "민간병원으로 가기 어려운 취약계층 환자들까지 억지로 내보내며 (감염병 대응을 위해) 일반환자 진료를 위축시킨 정부가 이를 근거로 투자를 제한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의 의료기술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고, 의료 접근성 또한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이같은 우수함은 민간 의료기관들의 발전으로 이룬 것"이라며 "그 결과, 지난 메르스와 코로나19 사태 때 우리는 미충족 필수의료의 부실함을 뼈아프게 경험했다"고 지적했다.

전 국민의 약 60%가 확진된 코로나19 유행이 커질 때마다 가장 먼저 '없는 병상'을 쥐어짜내야 했던 중앙의료원의 열악한 상황을 든 것이다. 민간 상급병원에 병상이 쏠려있는 구조 상 당국은 대유행으로 병상 대란이 현실화되면 행정명령으로 동원령을 내려야 했다.

조 회장은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미충족 필수의료를 이끌 국립중앙의료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총 1천 병상(모병원 800병상)의 규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번에도 중앙의료원을 제대로 만들지 않을 바엔 차라리 문을 닫고 민간 의료기관 중심으로 감염병 대응체계를 만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질 낮은 국가 병원은 국민들의 세금을 좀먹고 취약계층에게 해가 되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라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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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보건복지부가 공공정책수가 도입 등을 골자로 한 필수의료 대책을 발표한 것을 두고는 중앙의료원 관련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점을 짚었다. 전문의협의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최안나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은 취재진에 "중앙의료원을 이 수준으로 만들어놓고 필수의료가 (과연) 괜찮겠는지 꼭 한 번 (정부에) 물어봐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병원이 세워진) 1950년대에 비해 의료가 얼마나 발전했나. 저희 병원에 없는 기계도 수두룩하다"며 "국가 병원이라는 이름을 보고 젊은 선생님들이 꿈을 갖고 들어왔다가 운영상황을 보고 퇴사하는 상황이다. 작년에도 (의료진) 17명이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시설이 낙후되고 급여가 적어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사명감만으로, 유능한 의료진이 찾아오길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문의협의회 이소희 회장도 "정부에서 필수의료 (확충)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좋다. 그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빈자리는 항상 있다"며 NMC는 또 다른 팬데믹(pandemic) 속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최후의 보루임을 강조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최안나 센터장은 민간병원 입원을 거부당한 확진 임신부들을 받았던 경험도 털어놨다. 최 센터장은 "코로나가 심해지면 (산모가) 조산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저희 병원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다"며 "정말 위험한 환자는 저희가 받지도 못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당장 오는 3월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의료원 신축·이전 사업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는 절박감도 내비쳤다. 최 센터장은 "이제라도 국민들과 정부, 국회에서 문제를 들여다 봐주시고 길을 잡아주시길 바란다"며 "이게(회견이) 끝나면 저희는 바로 또 진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NMC 전문의협의회 등은 기재부의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범국민 온라인 서명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협의회 측은 "일단 (서명인) 1만 명이 모이면 대통령실에 즉시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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