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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수요동물원] 어느 박쥐의 고백 “못생겨서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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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못난 짐승’ 망치머리박쥐

과일 주식으로 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박쥐

’에볼라’ 감염병 의심받고, 사냥당하는 등 수난도

기괴한 생김새는 노래 멋지게 부르기 위한 수컷의 필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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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참 이기적인 종자입니다. 수천 수만년을 거친 문명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미적 기준을 감히 다른 종류의 동물에 들이밀고 ‘우왕 귀여워’ ‘오오 멋있는데’ ‘헐 X라 못생겼네’ 따위의 품평을 해대죠. 그 통념에 따라 못생겼다고 분류된 동물들에게는 썩 유쾌하지만은 않은 관심이 쏠립니다. 외모로 평가받는 너저분한 세태가 극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은 그 범주에 속하는 가련하고 미안한 짐승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박쥐’로 유명한 존재인데요. 영어 이름은 ‘망치머리박쥐(hammer-headed bat)이고, 말머리박쥐 혹은 말상과일먹이박쥐 등의 이름을 가진 녀석입니다.

조선일보

/per se flicker 사람에게 붙들린 망치머리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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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괴물이!” 식의 해외토픽 기사가 나올 때 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박쥐는 대서양과 면한 서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 대륙 중심부까지 분포해있습니다. ‘말머리~’ ‘말상’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비정상적으로 길다란 주둥이와 너덜너덜한 얼굴의 주름이 특징입니다. 박쥐라는 종이 원래 인간의 눈에 익숙치 않은 범상치않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이 녀석은 더욱 유별난 편입니다. 북아메리카에 사는 세계 최대의 사슴 말코손바닥사슴의 얼굴짝을 떼어다 그대로 갖다붙인 듯 해요. 박쥐 치곤 상당한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그렁그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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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Olsen 독특한 생김새를 한 망치머리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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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쥐의 생김새가 유달라보이는 것은 박쥐의 양대 문파 중 초식파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박쥐는 어떤 먹이를 먹느냐에따라 크게 육식파와 초식파로 나뉩니다. 육식파는 주로 초음파를 발사하고 반사하며 곤충이나 물고기 등을 사냥합니다. 얼굴 자체가 레이더 역할을 해야하다보니 그에 맞게 얼굴의 특정 부분이 커다랗게 도드라지거나 유달리 쭈글쭈글 하죠. 반면 초식파는 급하게 사냥을 할 필요가 없이 여유롭게 과일나무를 향해서 날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다보니 날개달린 것만 빼면 생긴게 개나 여우와 흡사해요. 이 종류를 ‘날아다니는 여우’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덩치는 초식파가 육식파를 압도합니다. 초식파의 일원인 망치머리박쥐도 두 날개를 편 길이가 무려 80㎝에 이르죠. 아프리카 박쥐 중 최대종으로 알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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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Olsen 독특한 생김새를 한 망치머리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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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날아다니는 여우족’ 중에서도 망치머리박쥐의 생김새는 마치 육식족처럼 쭈글쭈글하게 생긴게 초음파를 삐리리리 낼 것만 같아요. 그런데 이 기이한 외모는 암컷보다도 수컷에게서 두드러집니다. 실제로 암컷의 얼굴은 매우 ‘단아(?)’한 편이어서 여우를 닮은 초식 박쥐들 사이에서 두드러지지는 않는 편이에요. 이렇게 암수의 생김새가 두드러진 종류로는 코끼리물범이나 연어가 있죠. 코끼리물범의 부풀어오른 코는 수컷의 전매특허이고, 연어 역시 번식철 수컷은 몸이 더욱 부풀어오르고 주둥이도 더 심하게 구부러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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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South Florida 1906년 그린 망치머리박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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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못생긴 박쥐’라는 별명을 갖게끔 해준 망치머리박쥐 수컷의 생김새는 사실은 이들의 구애 습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기이한 생김새가 단지 수컷으로서의 매력만 돋보이게 하려는 건 아닙니다. 사실 암컷을 유혹하는 수컷의 필살기는 목소리입니다. 망치머리박쥐의 짝짓기는 거대한 오디션 프로그램입니다. 수십·수백 마리가 나뭇가지 등에 몰려앉아있습니다.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밤시간에 맞춰 각자 자신만의 낭랑한 곡조를 뽑습니다. 그 음색으로 암컷을 유혹하는 것이죠. 암컷들은 가장 매력적으로 와닿는 수컷에게 이끌립니다. 오디션 심사위원처럼 점수를 매기고 그와 커플을 이루죠. 대개 한마리의 수컷이 여러 암컷에게 자신의 씨를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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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merican Museum Congo Expedition Collection 1917년 그린 망치머리박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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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겼다는 통념과 어울리지 않게 참 낭만적으로 살아가지 않나요? 열대 과일을 먹으며 이곳저곳에 똥과 함께 뿌려지는 씨앗은 숲을 더욱 건강하게 가꿔줄 것입니다. 중매쟁이이면서도 정원사인 셈이죠.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우람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이 박쥐는, 그러나 삶의 터전이 인간에 노출되면서, 세상의 여러 많은 동물들처럼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열대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에게 눈엣가시가 되었는가 하면, 이 자체가 먹거리로 인식되면서 사냥당해 시장에서 밀거래되기도 했죠. 일각에선 아프리카에서 창궐했던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 노릇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면서, 종 자체가 박멸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왔어요.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비현실적인 외모가 오히려 바깥 세상에 알려지면서, 생태학자들을 중심으로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종의 앞날에 청신호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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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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