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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美 “뭘 도와줄까” 땅·전기 혜택… 한국은 “뭘 내놓을건가” 기업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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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TSMC 경쟁력 비교] [6] 반도체 공장 속도전… 한국 ‘3가지 걸림돌’

조선일보

美 TSMC 공장 찾아간 바이든 - 지난해 12월 6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TSMC 파운드리 신공장을 방문한 조 바이든(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마크리우(왼쪽) TSMC 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공장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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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각종 규제에 시달리느니 차라리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온다. 각종 인허가 지연으로 투자 타이밍을 놓칠 우려가 큰 데다, 해외 각국이 제공하는 대규모 보조금 덕에 해외에서 공장을 운영해도 인건비 등 비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TSMC는 지난해부터 올해 말까지 반도체 공장 11개를 동시다발적으로 착공하며 삼성과 ‘투자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기술이 앞서고, 점유율이 높은 1등 업체가 절반 이상의 이익을 독식하는 산업”이라며 “인프라 지원이 6개월 늦어지면 경쟁력은 6개월 늦어지는 게 아니라 아예 못 따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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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국토에서 대기업, 수도권 따지다 경쟁력 잃어”

반도체 업계에선 한국의 고질적 문제점을 세 가지로 꼽는다. 먼저 뿌리 깊이 박힌 ‘대기업 특혜’ 인식이다. 당장 반도체 인허가권을 쥔 공무원들이 “왜 돈 잘 버는 삼성, SK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느냐”는 논리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아무리 획기적인 규제 완화를 이야기해도, 현장에선 소용이 없다”며 “국가 명운이 걸린 사업이지만, 정부도 국회도 모두 ‘대기업-중소기업 논리’로 싸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또 하나는 완고한 ‘수도권 규제’다. 반도체 업계는 고급 인력들이 경기도 평택(삼성전자)·이천(SK하이닉스)도 출퇴근이 멀다고 꺼려, 최대한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공장을 짓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국토 균형 발전 논리 때문에 수도권에 공장 하나 지으려면 수년이 걸리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반도체 인력 공급을 위한 수도권 대학 정원 확대가 번번이 무산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회사는 지난 10년 새 서너 배 커졌는데, 정작 대학 이공계 졸업생은 반 토막이 나버렸다”며 “중국의 성(省), 미국의 한 주(州)보다 작은 나라에서 이렇게 수도권, 지방을 따져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역 간 이권 다툼’도 발목을 잡는다. 반도체 공장 건설로 수혜를 보는 지자체는 괜찮지만 과실을 못 누리는 이웃 지자체들이 전력, 용수 등 인허가권을 무기로 쥐고 “송전선을 지하화하라” “용수를 끊겠다” “주민 복지 시설 지어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잦다. 최근 반도체 업계가 송전선 건설 명목으로 정부에 총 1000억원의 예산을 이례적으로 요청한 것도 이런 절박한 상황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실 돈이 필요하다기보다 정부가 나서줘야 사업 진도가 빨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美 인건비 비싸지만, 보조금 받으면 경쟁력 있어”

세계 각국은 각종 ‘보조금 선물’을 안기며, 적극적으로 국내 반도체 기업 공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 2021년 미국에 170억달러(약 21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를 하겠다고 밝힌 뒤 ‘러브콜’을 보내온 텍사스주, 애리조나주, 뉴욕주와 인센티브 협상을 벌이며 공장 부지를 골랐다.

최종 부지로 선정된 미 텍사스주 소도시 테일러시(市) 측은 첫 10년간 재산세 92.5% 환급을 비롯해 유지·운영세 감면 혜택 등 총 6억6800만달러(약 8250억원)에 달하는 ‘당근’을 제시해 결국 삼성을 유치했다. 토지는 물론 안정적인 전력, 용수 공급도 계약서에 담겼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수익자 부담 원칙’이라며 전력, 용수 등 모든 걸 기업에 맡기고, 거꾸로 ‘뭘 해줄 거냐’고 묻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라며 “미국은 공사 현장 근로자부터 엔지니어까지 인건비가 한국보다 높지만, 이런 인센티브를 감안하면 현지에 공장을 짓고도 경쟁력이 확보되기 때문에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박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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