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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프랑스 젊은이들은 왜 연금개혁에 반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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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랑스 북부 도시 릴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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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개혁 반대”, “더 늦게 퇴직하는 것은 더 일찍 죽는 것”

프랑스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해 주요 노조가 2차 총파업 시위를 선언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파리 시내 거리에 피켓을 든 시민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교사, 일반 공무원, 엔지니어, 간호사, 판매원 등 참여한 시민들의 직업과 인종도 다양했다. 학생, 청소년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도 많았다.

이들이 파리 시내 주요 도로를 7시간 동안 행진하면서 시내의 자동차 교통은 사실상 중단됐다. 시위대에게 대로를 내준 차량이 몰리면서 좁은 뒷골목은 아수라장이 됐다. 몽파르나스타워 인근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을 빚으면서 최루탄이 발사되기도 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시위에는 전국 127만명이 참여했다. 노조가 집계한 인원은 280만명이다. 지난 19일 열린 1차 총파업 때보다도 참여 인원이 더 많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전역의 학교가 부분 휴교되고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한편 전력생산도 4.5% 감소했다.

연금 문제는 ‘세대 간 갈등’ 이슈라는 통념이 있지만 프랑스에서 열린 1,2차 시위에서는 모두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법정 퇴직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정부 방안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곧 퇴직을 앞둔 중장년층 노동자도, 대학생·청소년도 다르지 않았다. 시위대 속에는 ‘미래의 나와 부모님을 위해’라는 손팻말을 든 청소년들도 눈에 띄었다.

친구들과 함께 동부 지역 도시 디종에서 시위에 참가한 리세(7년제 중·고등학교 과정) 1학년 시몬 베이유는 (정부 방안대로라면) 10대 때 일을 시작한 아버지는 64세까지 일해야 한다며 “너무 늦은 퇴직”이라고 지역 공영라디오채널 프랑스3에 말했다.

파리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한 공무원 카리마(48)는 “15세, 18세 자녀들이 최근 ‘연금을 받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며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며 “나는 이런 현실에 매우 화가 났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고 BFM-TV에 말했다.

프랑스 툴루즈에 거주 중인 정치철학 연구자 박이대승은 “한국에서는 연금제도가 국가가 국민에게 강제하는 저축의 일종으로 이해되지만 연금제도의 본질은 ‘한 개인이 태어나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죽을지 관리하는 국가의 전략’이며 ‘삶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의 반대는 평생에 걸쳐 더 일해야 하는 삶의 모델에 대한 반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시민들의 연금제도에 대한 이해는 ‘돈’보다 ‘정년’에 맞춰져 있다. 한국 언론이 연금 문제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하는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이란 표현은 프랑스 연금개혁 논쟁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불안하게 더 일하게 만드는 개혁이 문제’라는 의견이 강조된다.

간호사 엘리안느(55)는 “간호와 간병은 매우 육체적인 힘을 쓰는 일이다. 64세가 되면 지금 하는 것처럼 매일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들어 올리는 일을 더 할 수 없다”며 “더구나 우리는 주말과 야간, 공휴일에도 일하며 직원이 부족해 더 이상 원할 때 휴가를 갈 수도 없다”고 BFM-TV에 따르면 말했다. 육체노동자에게 연금을 받기 위해 더 오래 일하는 삶의 모델 자체가 불공정하고 잔인하다는 것이다.

젊은층은 가뜩이나 노동시장 환경이 변하는 상황에서 이번 연금개혁안이 삶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연금개혁안에는 온전한 연금을 받기 위해 일해야 하는 기간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담고 있다.

미술사를 전공하며 도서관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마이아(23)는 “우리는 점점 더 긴 대학 과정을 요구받지만 커리어는 과거처럼 연속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석·박사 과정을 밟거나 계약직에 종사해 드문드문 일하면 64세가 돼도 연금가입기간인 43년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람들은 연금이 적어져 노후가 불안해지거나 연금을 받기 위해 신체적, 정신적 능력과 상관없이 억지로 더 일해야 한다는 점이 언론에서 지적된다.

특히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이 있을 가능성 큰 여성들이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이번 연금개혁에서 주된 쟁점이다. 프랑스 정부는 “퇴직연령 64세 기준은 타협할 수 없다”면서 연금개혁으로 여성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법안을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박은하 유럽 순회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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