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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英 경찰, 축구장 97명 압사 ‘힐즈버러 참사’ 34년만에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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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89년 4월 15일 영국 프로축구 FA컵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의 준결승전이 열린 셰필드 힐즈버러 축구경기장에서 원정 응원에 나선 리버풀 팬들이 1층 관람석으로 과도하게 밀려 들어오는 관중의 압박을 못 견디고 위층으로 탈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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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국 축구 경기장에서 97명이 압사한 ‘힐즈버러 참사’에 대해 영국 경찰이 사고 발생 34년 만에 “경찰의 실패가 비극의 주요 원인”이라며 공식 사과했다. 사고 발생 초기, 책임을 관중에게 돌렸던 경찰은 잘못을 인정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 윤리 규정 강화를 약속했다. 진상을 밝히기 위한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사건 발생 23년 만인 2012년 조사에서 경찰의 잘못이 확인됐고, 그로부터 11년 만에 공식 사과가 이뤄진 것이다. 다만 유족들은 경찰 사과가 너무 늦었다며 “극도로 실망했다”고 비판했다.

● “참사 당시 경찰이 크게 실패” 인정

영국 경찰청장협의회(NPCC)와 경찰대학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공동 성명과 영상을 통해 “경찰이 힐즈버러 참사 때 크게 실패했다(profoundly failed).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경찰 실패가 비극의 주요 원인이며 이후 (피해자) 가족들 삶을 계속 황폐하게 했다”면서 “지도력이 가장 필요했을 때 경찰은 유족들을 무감각하게 대했고, 조정 및 감독 능력에서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수엘라 브레이버먼 영국 내무장관은 경찰의 뒤늦은 사과에 대해 “힐즈버러 참사와 관련된 모든 형사소송에 영향을 줄 위험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보도했다. 힐즈버러 참사 관련 재판은 2021년 5월 마무리됐다. 하지만 유족 단체 대변인은 “극도로 실망스럽다”고 밝혔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힐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영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 힐즈버러 축구장으로 수용인원을 초과한 관중이 몰려들며 97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친 사고다. 뒤늦게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온 사람들에 이미 관람석에 있던 관객들이 밀려나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 직후 경찰은 원정 응원을 온 훌리건(과격 팬) 난동 탓이라고 원인을 발표해 피해자들은 ‘사고 주범’이란 오명을 썼다.

하지만 사고 발생 약 9개월 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효과적인 (관중) 통제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후 희생자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재조사가 진행됐다. 2012년 경찰 고위 간부들이 사고 당일 경기장 출구를 열라고 무리하게 지시한 정황과 경찰 진술서 164건이 변조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6년 법원이 “힐즈버러 참사 책임은 경찰에 있다”고 판결하며 피해자 및 생존자의 명예가 회복됐다. 검찰은 사고 당시 경찰서장을 비롯해 경찰 간부들을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했지만 증거 부족 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유족들은 “터무니없는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 “실책 있다면 변호하지 않겠다” 서명

NPCC와 경찰대학은 이날 56쪽 분량의 ‘힐즈버러 가족 보고서에 대한 경찰 대응’이란 보고서도 내고 경찰 윤리 규정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진실을 말할 의무’가 핵심 주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2017년 유족들은 정부에 경찰관과 공직자가 진상조사에 전적으로 협조하도록 하는 ‘진실을 말할 의무’ 법제화를 요구했다.

앤디 마쉬 영국경찰협회 회장은 “잉글랜드와 웨일즈 모든 경찰은 참사 유족을 위한 헌장에 서명했다”며 “이 헌장에는 참사 진상조사에 솔직하게 임하고 실책이 있다면 ‘변호될 수 없는 것은 변호하려 하지 않을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윤리 규정은 다음 주 발표될 예정이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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