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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드러눕고 욕하고 집도 몰라… 코로나 잠잠해지자 다시 쏟아지는 취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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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거리 주취신고 1년새 76% 껑충

조선일보

지난달 20일 오후 8시, 만취한 30대 여성이 서울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 안 의자에 엎드려 있다.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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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술 취해서 쓰러진 사람 좀 내보내주세요!”

지난달 30일 오후 10시쯤 서울 영등포구 한 편의점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영등포경찰서 중앙지구대 소속 경찰들이 출동해 술에 잔뜩 취한 중년 남성을 편의점에서 지구대로 옮겨왔다. 신원을 조회하니 울산 사람이었다. “아내분 성함이나 연락처 알려주시겠어요?”란 경찰 질문에 그는 “어…052…”라며 말도 제대로 못했다. 남성의 주머니엔 휴대폰도 없었다. 결국 경찰은 그 후 약 3시간 넘게 처음 신고가 들어온 편의점 근처 숙박업소를 돌며 이 남성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가 머무는 호텔을 찾아내 그를 방에 데려다 준 건 새벽 1시 30분쯤이었다.

대부분 실내 공공장소에서도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는 등 코로나 엔데믹(Endemic·풍토병화) 국면이 본격화하자 전국 곳곳의 지구대에서 술에 취한 사람을 뜻하는 취객(醉客)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신고가 쏟아지는 와중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이 취한 시민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술에 취한 시민이 거리에서 사망하는 사고 등도 잇따라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1일 서울경찰청이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서울 지역 취객 관련 신고 건수는 3만8210건으로 전년 대비 16% 늘었다. 젊은 층이 많이 몰리는 홍대 일대를 관리하는 마포구 홍익지구대에는 작년 한 해 총 736건 신고가 접수돼 전년(419건) 대비 76%나 늘었다. 건대 인근을 관리하는 광진경찰서 화양지구대에도 같은 기간 신고가 46% 늘었다.

실제 본지가 지난달 20일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 30분까지 약 12시간 동안 화양지구대에서 야간 근무를 함께 서보니 취객 관련 신고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후 8시쯤 한 30대 여성이 만취한 상태로 경찰의 부축을 받으며 지구대에 들어왔다. 경찰 7명이 그에게 다가가 파란 라텍스 장갑을 낀 채 바닥에 갈색 3단 접이식 매트릭스와 신문지를 깔았다. 여성이 토하려 하자 비닐봉지 씌운 바구니도 갖다대고 여성 경찰은 그의 머리카락도 묶어줬다. 1시간 뒤엔 이 여성을 순찰차로 집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이날 머문 약 12시간 동안 화양지구대에는 42건의 신고가 들어왔는데, 이 중 27건이 취객 관련 신고였다.

그러나 경찰의 부적절 대처 사례도 최근 잇따르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경찰이 시민 보호를 소홀히 한다”는 비판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구대나 파출소 등 최일선 경찰의 기강이 해이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달 19일 서울 동대문경찰서 휘경파출소 소속 경찰관 2명이 술 취한 사람이 길에 누워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당시 취객과 대화가 제대로 안 되자 별다른 조치 없이 6분 만에 자리를 뜨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취객이 혼자 골목으로 걸어가 길에 누워 있다가 승합차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났다. 지난달 30일에는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이 한파 속에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집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자리를 떠났는데,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1일 휘경파출소를 찾아 현장 의견을 듣고 취재진을 만나 “경찰청장으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2일 조지호 경찰청 차장 주재로 전국 17개 시도경찰청 담당자 등과 대책 회의도 연다.

반면 일선 경찰 사이에선 “취객을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게 정말 경찰관의 일이냐”는 불만도 나온다. 길에서 자는 취객을 깨우다가 욕설을 듣거나 모욕을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취객과 관련해 경찰이 얼마나 개입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게 참 어렵다”면서 “주말이나 연말연시 등에는 취객이 워낙 많은데, 요청이 들어오는 대로 다 돌보다 자칫 중요한 사건에 대응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박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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