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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뉴욕다이어리]드디어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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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드디어 뉴욕 맨해튼에 눈이 내렸다. 2월1일(현지시간) 뉴욕 현지 언론들은 일제히 "드디어(finally)" 관측 가능한 수준의 눈이 내렸다고 보도를 쏟아냈다. 더운 나라도 아닌데 눈이 내린 게 뭐가 대수냐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도 뉴욕시 5개 자치구 전체에서 눈을 볼 수 없었던, 역대급 ‘눈 가뭄’은 이날로 끝났다.

아시아경제

2월1일 오전 뉴욕 퀸즈지역에 눈이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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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국립기상청은 "기다림은 끝났다"며 이날 오전 6시 센트럴파크에 약 0.4인치의 눈이 쌓였다고 밝혔다. 폭스뉴스는 "뉴욕시에서 드디어 눈을 보게 됐다"며 "328일간의 눈 가뭄이 끝났다"고 전했다.

만약 며칠만 더 늦었다면 역대 최장 눈 가뭄(2020년, 332일) 기록을 깼을 것이다. 불과 며칠 전 뉴욕시는 ‘역대 가장 늦게 내린 첫눈’ 기록도 갈아치운 상태였다. 직전 기록은 50년 전인 1973년1월29일이었다. 당시 322일 만에 눈이 내렸었다. 하지만 올해는 이보다도 더 늦어졌다. 통상 뉴욕시에서는 크리스마스께인 12월 중순 첫눈이 내리곤 한다.

따뜻한 남부 루이지애나주 출신인 30대 직장인 히스 씨는 "출퇴근 길이 덜 추워 좋긴 했다"면서도 "뉴욕의 겨울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이 쌓인 센트럴파크로 언급되는데, 올해는 참 이상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 지역에 거주하는 유학생 한국인 엄찬영씨는 "학과 친구들과도 이렇게 눈이 늦게 오는 건 50년 만이라고 단체 채팅방에 사진을 올리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기상학자들은 최소 0.1인치 이상 눈이 와야 측정 가능한 강설량으로 본다.

이는 불과 1년 전 맨해튼과도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지난해 1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후회한 것은 더 따뜻한 신발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결국 눈에 젖지 않는, 두꺼운 방한 부츠부터 사러 갔던 기억이 또렷하다. 쌓아놓은 눈더미에 좀처럼 길을 걷기조차 어려운 탓이었다. 1월 말에는 적설량 12인치 예보에 "12cm가 아니냐"며 반신반의하다 집에서 꼼짝 못 하기도 했다.

뉴욕시에서 이번 겨울 장기간 눈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 탓이다. 올해 뉴욕의 1월은 1869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따뜻했다. 31일 내내 평균 기온을 훨씬 웃돌았다. 반면 비는 잦았다. 작년 12월부터 1월 중순까지 센트럴파크의 강수량은 평년 대비 1.70인치 웃돌았다. 뉴욕시뿐만이 아니라 필라델피아, 워싱턴, 볼티모어 등 동부 지역들이 대체로 눈 대신 비가 내리는, 예년보다 따뜻한 1월을 보냈다.

이를 두고 현지에서도 지구 온난화, 이상기온 때문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른다. NBC뉴욕은 올해 뉴욕의 눈 가뭄 배경으로 기후변화와 라니냐를 꼽았다. 마켓워치 역시 "장기간 눈이 내리지 않는 뉴욕시, 기습 폭설과 눈보라가 덮친 뉴욕주 북부 버펄로의 사례는 겨울 패턴을 바꾸는 주요 신호라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버펄로 기습 폭설과 같은 극단적 기상 이상 현상이 기후변화에 따라 더 잦아지거나 거세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히스 씨와 찬영 씨 역시 인터뷰 말미에서 "이런 현상이 다 기후변화 영향이 아니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2004년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재난영화 ‘투모로우’는 뉴욕시를 배경으로 한다. 유럽의 가뭄, 파키스탄 대홍수 등 최근 몇 년간 보도되는 기후 재난들을 보노라면,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이자 먼 미래의 일로 느껴졌던 기후 재앙이 사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눈이 오지 않는 뉴욕시를 단순히 일상적 기상현상으로 분류할 수 있느냐"는 현지 언론들의 경고를 그저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후 위기에 대한 골든타임은 흘러가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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