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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21세기 무속’ 논란에 대하여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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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무속’은 한국 전통신앙인 무교를 ‘미신’으로 취급해 격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다. 무속의 역사를 굳이 따지자면 단군신화 속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상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 2대 왕 남해 차차웅’인데, ‘차차웅’이라는 호칭 자체가 ‘무당’을 뜻한다고 한다. 무속은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를 거치며 불교·도교·풍수지리사상 등과 결합해 때론 지배자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때론 민심을 사로잡는 도구로 이용됐다.

하지만 성리학적 유교 이념이 자리 잡은 조선시대 이후 무속은 탄압을 받았다. 조선시대 무당은 8대 천민 중 하나로 취급됐고, 3년마다 한번씩 작성하는 명부를 근거로 세금(무세)도 내야 했다. 1915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포교규칙’을 내려 일본 신도·불교·기독교만 종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유사단체’로 규정해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해방 후 미 군정기에도 ‘미신타파운동’이 벌어졌고, 1970년대엔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동네 서낭당·마을굿 등은 구폐로 낙인찍혀 점차 사라졌다.

이렇게 ‘혹세무민’이란 오명과 ‘미신타파’라는 탄압에도 무속은 여전히 우리 삶 곳곳에 남아 있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는 것, 이사 날짜를 잡을 때 ‘손 없는 날’을 고르는 것, 결혼하기 전에 ‘궁합’을 보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무당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가 존재하는데, 각 회원 수 30만명을 자랑한다. ‘길흉화복’을 점치고 ‘무병장수’를 비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교’라는 점이 21세기에도 무속이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일 터다.

최근 대선 기간 내내 윤석열 대통령 주변을 시끄럽게 했던 ‘무속 논란’이 또다시 제기됐다. ‘대통령의 멘토’ 논란이 일었던 무속인 천공이 작년 3월 대통령 관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서울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다녀갔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관저가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바뀌어 낙점된 것과 연관이 있다는 추측이 무성하다.

대통령이라도 개인의 운명을 무속에 맡기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해당할 터다. 하지만 전근대적 제정일치 사회가 아니고서야 ‘국가의 중대사’까지 무속에 의지할 일인가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비선실세 최순실의 ‘오방낭’ ‘영세교’가 자동 연상된다면 기우일까.

유선희 산업팀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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