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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르포]울진 산양 서식지 가보니···산불 피해지역에 산양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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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설치했던 2개의 무인 카메라 기록을 추려보면, 1월 한 달간 7일, 총 104개의 산양 기록이 남아 있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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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는 전날 내린 눈이 산자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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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 해발 고도 약 700m. 키가 20m에 달하는 소나무가 즐비한 이곳에는 전날 내린 눈이 7㎝까지 쌓여 있었다. 차로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내려 걷기 시작하자 기자의 휴대전화가 조용해졌다. 데이터 통신이 더뎌지면서 각종 메신저의 알림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도를 따라 1시간 30분 정도 더 이동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멸종위기 야생생물 ‘산양’의 서식지가 나타났다.

지난 1일, 봄철 산불 조심 기간(2월 1일~5월 15일)이 시작됐다. 지난해 3월 경북 울진에서 났던 산불에 훼손된 지역 중 4300㏊(약 26.4%, 축구장 6000개 정도 면적)가 산양 서식지와 겹쳤다. 산양이 주로 먹는 초본류, 관목류의 잎이 많이 불에 탔다.

산불이 나고 1년이 지난 지금, 산양은 잘살고 있을까. 기자가 지난달 30일 녹색연합과 함께 찾은 울진 산불 피해지 인근 서식지에는 산양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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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도화동산이 산불 피해로 지난해 3월 2일 그을려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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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산불 이후 지난해 3월 22일 경북 울진군 도화동산에 잿더미 위로 고라니 발자국이 찍혀 있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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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진 바위틈이 있는 산지에서 주로 사는 산양의 흔적을 관찰하는 지점까지 가기 위해서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가 산을 오르고 있다. 때로는 산양처럼 ‘네발’로 움직여야 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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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 따라 ‘네발’로 올라간 능선에는 산불로 도망친 산양들 화장실


경사진 바위에 주로 사는 산양의 흔적을 찾으려면 산양처럼 ‘네 발’로 움직여야 했다. 능선을 따라 올라가자, 양쪽으로 골짜기가 훤히 보이는 지역이 나타났다. 산양이 ‘화장실’로 이용하기 좋은 지형이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우리가)이동한 능선은 산양의 이동 통로일 것”이라며 “깎아지른 절벽에서 등을 기댈 수 있고, 사람처럼 가장 편하게 배설 활동을 할 수 있는 장소에 주로 산양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산양은 한 자리에 계속 배설을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능선 꼭대기쯤에서 쌓인 눈 사이로 커피콩같이 생긴 산양 똥 일부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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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사이를 나뭇가지를 이용해 털어내면 수많은 ‘커피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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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조사에서 발견된 산양의 흔적은 총 10개 지점이었다. ‘커피콩’이 100~200개 정도 소규모로 모여 있는 곳을 시작으로, 폭이 총 3m 정도 되는 영역에 1000개 이상의 똥이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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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조사에서 발견된 산양의 흔적은 총 10개였다. ‘커피콩’이 100~200개 정도 소규모로 모여 있는 곳을 시작으로, 폭이 총 3m 정도 되는 영역에 1000개 이상의 똥이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녹색연합이 이 지역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 2대에는 올 1월 한 달간 7일, 총 104개의 산양 기록이 남아 있었다. 지난달 28일 산양이 화장실을 이용하는 장면도 카메라에 담겼다. 각종 조류, 쥐, 오소리, 멧돼지, 청설모, 다람쥐, 담비, 노루, 너구리, 삵 등도 모습을 보였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기존 산양 서식지에 산불 피해가 발생한 이후 이 지역에서 산양 관찰 빈도가 늘어났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과거에는 산양 흔적이 잘 발견되지 않아서 (카메라를)설치하지 않았던 지역이었는데, 작년부터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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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가 지난달 30일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교체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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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이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 모니터링 지점에서 지난달 12일 배설하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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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설치했던 2개의 무인 카메라 기록을 추려보면, 1월 한 달간 7일, 총 104개의 산양 기록이 남아 있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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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 일대에 설치했던 2개의 무인 카메라 기록을 추려보면, 1월 한 달간 7일, 총 104개의 산양 기록이 남아 있었다. 녹색연합 제공


산불이 났던 곳에서도 발견된 산양 흔적


지난달 31일 국립생태원이 울진 금강송면 두천리 일대에 설치된 산양 급이대(먹이를 주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에 인근을 조사했을 때도 곳곳에서 3개 이상의 산양 배설물 흔적이 발견됐다. 두천리 일대는 산불로 밑동이 탄 나무, 사람 무릎에서 가슴 정도 높이만큼 탄 나무가 섞여 있다. 산양이 주로 먹는 관목·초본류는 대부분 탔다. 급이대가 설치돼 있던 이 지역에는 산불이 진화된 다음 날에도 산양들이 먹이를 먹으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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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두천리 산양 먹이급이대 인근에서 발견된 산양 배설물.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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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일 녹색연합이 열었던 ‘잘, 산양?’ 기념회에서 발표했던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의 야생동물 서식지 조사’를 보면, 산불피해지 안에서 산양은 지난해 4월 초부터 관찰되기 시작해, 같은 해 7월부터는 출현 빈도가 증가했고, 8~9월에는 평년 정도로 출현 횟수가 회복됐다.

산불 이후 발견된 폐사체도 평년과 유사한 수준이다. 산불로 서식지의 먹이가 사라졌지만, 두 달 후인 5월쯤부터는 초본류가 돋아났고, 일부 관목에서도 잎이 나며 산양에게 큰 영향은 주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더해 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국립생태원, 울진군 등은 협의체를 꾸려 1~2주에 한 번꼴로 총 500㎏의 먹이를 서식지 내 설치된 급이대에 공급하고 있다. 우동걸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선임연구원은 “겨울철에 체력이 많이 소진된 상태에서 산불로 먹이 부족이 심화했는데, 일시적으로 먹이 부족을 해소해주는 역할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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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군 두천리 산양 먹이급이대.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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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9일 경북 울진에 국립생태원이 산양의 먹이를 주기 위해 설치했던 시설 인근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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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산양에게 해만 줄까


산양에게 ‘눈’은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겨울철에 눈이 와야 건조가 해소되며 산불로 서식지가 파괴될 가능성이 작아진다. 하지만 폭설은 산양에게 치명적이다. 2010년에는 울진·삼척 지역에서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며 산양 23마리가 굶어 죽었다. 우 선임연구원은 “겨울에는 기온이 낮아 에너지 소모도 많은데 폭설이 오면 산양은 다리가 짧아 이동하기 힘들고, 눈 안에 있는 먹이도 잘 찾지 못해서 약한 개체부터 죽는 경우가 많다”며 “적절한 강설은 필요하지만, 폭설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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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는 지난해 연말, 울진 금강송면 삼근2리 일대에서 10년 이상 산 산양 암컷을 구조했다. 이 산양은 다리를 다친 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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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빙판을 오르다 다친 산양이 구조된 적 있다. 한국산양보호협회 울진지회는 지난해 연말, 울진 금강송면 삼근2리 일대에서 10년 이상 산 산양 암컷을 구조했다. 구조 당시 암컷은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상태로, 왼쪽 다리는 과거부터 다친 상태였고, 빙판 위를 오르려다 오른쪽 다리마저 다친 것으로 추측됐다. 하지만 구조된 산양은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김상미 산양보호협회 울진지부 사무국장은 “당시 산양을 구조한 후 국립생태원의 담당 수의사가 휴직 중이어서 치료를 할 수 있는 병원을 시민단체에서 직접 찾아야 했다”며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에 대한 지자체, 정부의 보호기관이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산양, 잘 산양? 울진 산불 피해지 지난해 산양 조사 결과는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301041600001



☞ [르포]죽음으로 넓게 덮인 산···울진 산불 피해 현장을 가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32406000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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