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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한일 관계개선에 필요한 두가지 … 日 '역사공부'와 韓 '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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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역사는 지울 수 없고 남는다는 것을 일본인들이 마음에 둬야 한다. 위안부 합의 파기 때처럼 한국 입장이 갑자기, 급격하게 달라지면 일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일본에는 역사 의식의 중요성을, 한국에는 정권에 따라 양국 관계에 대한 입장이나 합의 등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급격히 달라지지 않고 일관성을 갖고 유지된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뜻을 전한 셈이다.

동아시아 및 외교 문제에 많은 경력을 갖고 있는 후쿠다 전 총리를 최근 도쿄 롯폰기의 사무실에서 만나 한일관계, 북한, 중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대해 의견을 구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최근 한일관계에 대해 '신뢰가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응원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한일관개 개선에) 전향적이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그런 자세를 응원하고 있다"며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 본다"고 설명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지난해 11월 한일정상회담 이후 관계 개선을 위해 교류·대화가 활발해진 것과 관련해서 "대화를 할 수 없으면 신뢰가 생기지 않고 외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며 "신뢰관계가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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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해결책을 두고 양국 외교당국이 협상 중이다.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그는 "현재 양국 외교당국이 해결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싶다"며 구체적 발언을 거듭 삼가면서도 "한시라도 빨리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지금같이 혼란한 국제사회에 안정감을 주는 큰 '한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후쿠다 전 총리는 일본이 가져야 할 자세로 '역사 의식'을 지적했다. 그는 "작은 문제나 감정적인 충돌 등은 시간이 지나면 점점 작아지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역사는 남는 것"이라며 "과거의 역사는 지우개로 지울 수 없고, 남는 것이라는 점을 일본인 전체가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역사를 무시하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나의 마음가짐"이라고 덧붙였다.

후쿠다 전 총리는 역사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고 방점을 찍었다. 그는 "감정적으로 되는 것은 진실을 모른 채 단편적인 정보만 갖고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 역사나 세계 속의 한일관계에 대해 별로 공부하고 있지 않다고 보이는데, 공부를 해야 한다"며 "일본, 한국 모두 좀 더 객관적 입장에서 진실을 생각해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역사 문제 등을 감정적으로 대하고 이런 것들이 안보를 비롯해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덧붙였다.

중·일 관계에도 정통한 후쿠다 전 총리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의 협의 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역사에 대해 서로 문제의식을 갖고 양측(중·일)에서 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10년가량 토론한 적이 있다"며 "이런 모델을 한일에도 적용해 역사 문제를 서로 검토할 수 있다"고 전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한국이 정권에 따라 한일관계에 대한 입장이 갑자기, 크게 달라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그는 "(한일관계에서) 한국이 갑자기 확 바뀌어 버리면 일본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되는데, 유감스럽게도 위안부 합의 파기처럼 그런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며 "이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가져가야 되는 건지 모르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한일은 '위안부 합의'를 맺었고, 이후 문재인 정부는 이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합의와 관련된 '화해치유재단'은 해산됐다. 일본은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 파기라며 반발해왔다.

그는 일본이 한일관계를 일부러 나쁘게 만들 이유는 없다며 최근 몇 년 새 양국 불신의 시작을 '위안부 합의 파기'로 꼽았다. 그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외무상 시절 한국과 협상한 위안부 합의는 양국 관계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어떻게 하면 서로 납득하는 상황으로 가까이 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만든 것이라고 본다"며 "일본 입장에서는 위안부 합의 파기로 인해 합의를 만들어낸 노력과 성의가 무시됐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이게 양국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후쿠다 전 총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 정권 시절의 한일관계에 대해 "여러 사안에 대해 부정적이니, 일본 입장에서는 대화가 어렵다는 인상이 있었고 이게 결국 (양국 관계를) 냉각시켰다"며 "물론 문재인 대통령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만, 고생해 정리한 것들을 부정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아쉽다"고 회상했다.

2019년 일본이 꺼내 들었던 수출규제 문제에 대해 후쿠다 전 총리는 정치·외교에 휘둘리지 않는 경제협력·교역은 '지혜'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미국과 중국도 지금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대부분의 교역은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고 이게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지혜"라며 "(한일의 교역도) 그런 것(수출규제나 정치적 문제 등)에 좌우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한일이 옥신각신하며 갈등할 시점이 아니고 미래지향적인 큰 문제들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말한다. 그는 "기후변화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인류와 관련한 문제들에도 눈길을 줘야 할 때이고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일관계를 비롯해 여러 사안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위해 정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극단적인 혐한·반일 감정 등에 대해서도 지도자·정치인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 해결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장남 △1936년 일본 도쿄 출생 △와세다대 경제학과 △석유회사 '마루젠석유'(현 코스모에너지) 근무 △중의원 비서, 총리 비서관 △1990년 중의원 선거 당선 후 7선 △모리 요시로 정권 관방장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관방장관 △제91대 총리(2007년 9월~2008년 9월)

[도쿄 김규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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