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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고물가에 서민들 허리 휘는데… 대기업·금융기관 ‘성과급 잔치’ 눈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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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급 1500%·연봉의 50% 등

‘최대 실적’ 정유·가스기업 파격

난방비 폭등에 서민들은 박탈감

정치권 ‘횡재세 도입’ 목소리 커져

금융업계도 기본급 수백%씩 뿌려

“이자 장사로 배 불려” 비판 고조

고유가·고금리 등으로 일반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졌지만 일부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역대급 실적을 근거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해당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상황에 따라 실적이 유동적인 만큼 이번 성과급에만 초점이 맞춰져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난방비 폭등과 대중교통비 등 물가 인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서민들은 ‘그들만의 성과급’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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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불안정 등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면서 좋은 실적을 낸 정유, 가스 등 일부 업계의 성과급 수준은 기본급의 1000% 안팎에 이른다.

LS그룹 계열의 액화석유가스(LPG) 수입·유통업체 E1 직원들은 작년 말에 기본급 대비 150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E1은 지난해 LPG 제품 수요 증가에 따른 트레이딩 사업 호조 등에 힘입어 실적이 크게 향상됐다. E1의 지난해 1~3분기 누적 매출은 5조99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7% 늘었다. 영업이익은 1948억원으로 영업손실 187억원에서 흑자 전환했다.

지난해 고유가와 정제마진 강세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정유업계 성과급 역시 파격을 넘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수준이다. 현대오일뱅크는 모든 임직원에게 기본급의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는 성과급으로 기본급의 600%를 받았던 2021년보다 큰 폭으로 뛴 액수다.

지난해 1~3분기 영업이익 4조309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186%가량 증가한 GS칼텍스 역시 최근 임직원에게 기본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이들 정유·가스 기업의 역대급 성과급은 정치권의 ‘횡재세’ 논란을 낳았다.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난방비 급등 사태가 빚어졌으니 사업상 큰 이익을 본 이들 업체가 서민 에너지 지원에 소요되는 재원을 감당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정유업계 측은 원유를 직접 개발, 판매하는 외국 메이저 에너지 기업과 달리 100% 원유를 수입해서 정제 등 부가가치 창출로 이익을 내는 기업에 고유가 분담금을 지급하라는 것은 지나친 정치 논리라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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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로 이자 수익이 늘어난 금융업계도 성과급 논란의 대상이다.

하나은행의 경우 최근 임단협을 통해 이익연동 특별성과급으로 기본급의 약 350%를 책정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말 250%를 선지급했으며, 오는 4월 중 100%를 추가 지급한다.

신한은행은 앞서 경영성과급으로 기본급의 약 361%를, NH농협은행은 기본급의 400%를 각각 책정했다. KB국민은행은 기본급 280%에 특별격려금 340만원을 지급했다. 우리은행은 현재 임단협을 진행 중이다.

금융권 등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 전망치 평균은 총 16조5557억원으로, 2021년 대비 13.8%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최대 이익 규모다.

고금리로 가계와 기업이 빚 부담에 허덕이는 가운데 금융권만 이자 장사로 배를 불린다는 따가운 시선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지난달 16일 은행의 공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은행권이 주주환원 정책과 임직원 성과급 지급에 신경을 쓰는 것에 비해 사회공헌 노력이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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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조원이 넘는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카드사도 고금리 신용대출 장사를 통해 성과급 잔치를 열었다는 지적을 받는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사 중 지난해 12월31일 기준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삼성카드 연 17.70%, 신한카드 16.21% 등 10%대를 훌쩍 넘었다. 단기 카드대출인 현금서비스는 평균 금리가 법정 최고 금리(연 20%)와 큰 차이가 없었다.

서민들이 카드 고금리에 내몰린 사이 일부 카드사는 수천만원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았다. 삼성카드는 지난달 연봉의 50%를 성과급으로 받았고 신한카드와 롯데카드 등 주요 카드사도 지난해보다 많은 성과급을 받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가스요금 1년새 32% 치솟았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가스 등의 연료 물가가 1년 새 30% 넘게 치솟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특히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등유는 40% 가까이 폭등하면서 서민들의 연료비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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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한 한국전력공사 협력사에서 직원이 1월 전기요금 청구서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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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 지수는 135.75(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1.7% 올랐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4월(38.2%) 이후 24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전기, 가스 및 기타연료 물가는 소비자물가 지수를 지출 목적별로 분류했을 때 산출된다. 전기, 도시가스, 취사용 액화석유가스(LPG), 등유, 지역난방, 부탄가스 등 주로 가정에서 쓰는 연료들의 물가 동향을 보여준다.

연료 물가를 구체적으로 보면 전기료가 1년 전보다 29.5% 상승했다. 이는 1981년 1월(36.6%) 이후 42년 만의 최고치다. 도시가스는 36.2% 올라 지난해 10∼12월과 상승률이 같았다. 이를 제외하면 1998년 4월(51.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역난방비 상승률은 지난해 10∼12월과 같은 34.0%였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5년 이래 최고치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이 공공요금 인상으로 본격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물가도 고공행진을 펼치는 양상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4·7·10월에 이어 지난달에도 인상됐다. 도시가스 요금도 지난해 4·5·7·10월에 인상됐다.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서민 연료’ 등유는 1년 전보다 37.7% 상승했다. 지난달 강력 한파가 닥쳤던 만큼, 서민들의 실제 연료 물가 부담은 더욱 컸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필수 생계비로 꼽히는 전기요금과 가스요금, 대중교통 요금 등의 인상이 예고돼 체감 물가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특히 전기·가스요금 인상은 소상공인 등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물가 상승의 파급 효과를 키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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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쓰고 쿠폰 사고… 고물가에 ‘짠테크’ 열풍

“이달 관리비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지난해 1월과 비교해) 딱 2배 올랐더라고요. 올해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계부 쓰기 시작했어요.”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 하는 회사원 A(34)씨는 “금리가 크게 올라 전세대출 이자에 한 달 카드값이 빠지고 나면 마이너스가 될 지경”이라며 “e쿠폰이나 핫딜 등을 이용해 생활비를 줄여나가고 있다”고 했다.

고물가, 고금리에 난방비 폭탄까지 겹치면서 지출을 줄이기 위한 소비자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가계부로 소비를 기록하고 꼭 필요한 제품은 할인 상품과 쿠폰을 이용해 소비를 줄이는 ‘짠테크’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5일 G마켓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간 가계부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79% 증가했다. 지난해 MZ세대를 중심으로 하루에 0원을 쓴 가계부를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무지출 챌린지 인증’이 유행하면서 종이 가계부의 판매량도 덩달아 늘어났다.

정상가 대비 최대 ‘반값’에 치킨이나 피자, 외식 상품권을 살 수 있는 e쿠폰 판매량도 급증했다.

G마켓에서는 지난달 뷔페와 레스토랑, 외식 관련 e쿠폰은 전년보다 435% 판매가 늘었다. 11번가에서도 피자·치킨(86%), 레스토랑·뷔페(202%), 베이커리·도넛(25%) 쿠폰이 지난해보다 잘 나갔다.

업계 관계자는 “e쿠폰의 경우 당근마켓이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도 사고팔기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쿠폰 사용인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에서도 타임세일이나 구독쿠폰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이마트24에서는 마감이 임박한 상품을 할인해 판매하는 라스트오더 서비스의 1월 이용 건수가 전달 대비 45% 급증했다. 같은 기간 도시락 할인 구독 쿠폰 이용 건수도 20% 증가했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초저가 상품 브랜드 ‘굿민’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이 3분기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범수·이강진 기자, 세종=안용성 기자, 박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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