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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칩톡]반도체 전략 '하세월'…비판 쏟아진 英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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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올해로 유럽연합(EU)과 결별한 지 만 3년이 된 영국이 반도체 전략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는 반도체지원법 초안을 제출, 현재 의회 검토를 받고 있지만, 영국은 보리스 존슨 전 내각의 실각 이후 아직 반도체 전략을 공개하지 못해 비판이 쏟아진다. 리시 수낵 현 영국 총리는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있는 대만에 반도체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들어 조만간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반도체 전략을 공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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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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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여름 발표 준비했으나 내각 붕괴로 연기"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로 2021년 일본 르네사스에 인수된 다이얼로그 반도체의 잘랄 바게르리 전 최고경영자(CEO) 등 영국 반도체 업계 주요 인사 30명은 지난달 수낵 총리에게 서한을 보냈다. 이들은 "업계가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 전략을 2년 이상 기다렸지만, 정부가 매달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이를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줄어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반도체 시장에서 영국의 입지가 위기 상황에 놓였다며 조기에 전략을 준비해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반도체 업계가 목소리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에도 업계 수장들이 보조금 등 정부의 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11월에는 영국 산업위원회 소속 하원의원들이 영국의 공급망 유지를 위해 정부가 빨리 전략을 내놔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고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영국의 반도체 업계와 의회까지 나서서 이렇게 움직인 이유는 정부가 지난해 가을까지 내놓겠다고 했던 반도체 전략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최근 2년간 정치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존슨 전 총리가 2021년 코로나19에 따른 모임 금지 기간에 총리실에서 파티를 벌인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민심을 잃은 이후 지난해 참모 줄사퇴를 겪고 10월 실각을 하면서 1년가량 의회와 정부가 큰 변화를 맞아야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소식통을 인용한 기사에서 "당초 지난해 상반기 중 크리스 필프 전 디지털 장관과 관료들이 (반도체 전략 마련을) 마치고 여름에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존슨 내각의 붕괴로 (발표가) 연기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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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코유럽은 전략 준비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영국이 내부의 소통 단절과 정부의 혼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는 자립도를 키우기 위한 주요 국가들의 패권 경쟁에서 영국을 뒤처지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를 준비하는 영국 정부 내 부처가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인데 부처 규모가 작고 전략을 준비하는 인사들의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고도 언급했다.
◆ 대만 의존도 낮추자…"인센티브 등 준비"
영국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대만 등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바란다. 수낵 총리는 전략안 초안에서 반도체 강국인 대만이 중국에 침공당할 가능성이 있고 이로 인해 영국 경제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영국은 지난해 중국 자본이 사실상 보유한 네덜란드 반도체 업체 넥스페리아가 영국 반도체 공장인 뉴포트 웨이퍼 팹을 인수하는 거래를 두고 ‘국가 안보 우려가 있다’면서 보유 지분을 대부분 매각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영국은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이나 대만처럼 핵심 플레이어로 평가되진 않는다. 다만 화합물 반도체 부문처럼 강점을 보이는 반도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는 방안을 영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달 말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아직 재무부와 최종 합의가 이뤄지진 않았으나 수십억 파운드 규모로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이 안에는 반도체 업체에 공적 자금을 활용한 인센티브 지급과 화합물반도체 성장을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수낵 내각의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부 장관은 다음 달 15일로 예정된 예산안 발표 시점에 맞춰 전략안을 공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폴리티코는 설명했다.
◆ EU는 반도체지원법 제출…獨 등 투자 유치 활발
영국과는 달리 EU는 코로나19 초기 공급망 위기가 발생했을 때부터 반도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난해 2월 반도체지원법을 제안, 12월 초안을 유럽의회에 제출하는 등 관련 정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EU 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430억유로(약 57조5000억원)를 투자하는 법으로, 2030년까지 EU의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시장 점유율을 현재 9%에서 20%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의회의 심사를 거쳐 통과하면 시행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의 주요 국가들도 EU의 지원금 외에 자국 보조금을 마련하는 등 반도체 산업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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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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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 중 선두에 있는 건 바로 독일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한 행사에 참석해 독일이 유럽 내 최대 반도체 생산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는 다른 지역에 의존하지 않음으로써 EU의 평화에 도움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무역투자청(GTAI)이 지난해 12월 내놓은 ‘독일의 반도체 산업’ 자료에 따르면 독일 내 생산되는 반도체 3개 중 1개가 독일에서 만들어진다.

독일은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 미국 인텔, 대만 TSMC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3월 향후 10년간 유럽 지역에 800억유로를 투자하고 그중 170억유로를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이 독일 투자 계획을 돌연 보류한다는 보도가 지난해 말 나오기도 했으나 아직 독일 정부와 보조금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 유럽 첫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해 말 외신들이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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