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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여적] 아, 임보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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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생전의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가 2013년 5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는 모습이다. 서성일 기자


우리가 기독교와 성소수자 문제에서 오해하는 게 있다. 기독교인 다수가 성소수자 혐오에 동참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조사는 혐오가 과잉대표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구원이 개신교인 1000명에게 물어 지난해 2월 내놓은 ‘제20대 대선정국과 한국교회’ 보고서를 보면 개신교인 42.4%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 반면 31.5%가 반대했다. 1년 반 전 조사에서 찬성 42.1%, 반대 38.2%였던 것과 비교하면 반대가 줄고 판단 유보가 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혐오가 정치판을 지배해왔다. 차별금지법은 장애, 나이, 인종, 성별 등뿐만 아니라 성적지향, 성정체성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법인데, 15년 넘게 입법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정치권이 기독교인 표를 의식해 일부 목사들과 강고한 동맹을 맺고 입법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임보라 섬돌향린교회 목사(1968~2023)의 갑작스러운 부고에 많은 시민이 슬퍼하고 있다. 임 목사는 2007년 차별금지법 제정 무산 후 교회 내 성소수자 운동에 참여해 ‘성소수자의 벗’으로 불렸다. 임 목사는 “‘그냥 그대로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좋아. 너도 하느님의 모습이잖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저 또한 살기 좋은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한 교인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비난받으며 죽으려던 중 목사님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임 목사는 2014년 15회 퀴어문화축제를 ‘혐오의 세력화’가 현실화되기 시작한 때로 보았다. 축복 기도 현장에서 혐오 발화를 접했다. 그는 의연했다. ‘성서에 금지돼 있다’며 여성 목사 안수에 반대하던 교회였지만, 1995년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까지 방침을 바꾼 것처럼 성소수자 문제도 결국 바뀔 것으로 봤다. 하지만 종교인도 감정과 두려움이 있는 인간이다. 책 <곁에 서다>에 실린 임 목사 강연에 이런 부분이 있다. “마음 한편으론 목사가 교회 안에만 있어도 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 사실 아픔의 현장에 있다 보면 그 아픔에 공감하면서 깊은 고통에 같이 시달리게 됩니다.” 임 목사 소천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다시금 묻는다. 언제까지 차별금지법을 막을 것인가.

손제민 논설위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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