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결국 CSO 덕분?”... 중대재해법 1년, 10대건설사 기소는 ‘0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시행 후 지난 1년간 건설업계에서 기소된 7명이 모두 중소건설의 최고경영자(CEO)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형 건설사의 경우 CEO는 물론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아직 한 명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조계에서는 안전관리에 대한 진짜 권한과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가 모호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CSO가 있더라도 실제 CEO가 권한을 온전히 넘겨줬다는 것이 완벽히 입증되지 않는 이상, CSO를 기소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게 법조계 중론이다.

조선비즈

건설 현장에 안전모와 장갑이 놓여 있다./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일 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까지 중대재해법 위반 피의자로 입건된 건수는 82건으로 이 가운데 총 11건이 기소됐다. 이 중 7건은 건설업 관련 사고다. 모두 중처법 적용 대상인 공사도급액 50억원을 살짝 넘긴 중소건설사의 CEO가 재판에 넘겨졌다.

중대재해법 2조 9호 가목에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명시됐다. 이처럼 개념과 대상이 모호해 누가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수범자(수사 대상)으로 특정돼야 할 것인지가 계속 논란거리였다.

10대 건설사는 중대재해법 시행 전후로 CSO직을 잇따라 신설했다. GS건설 등 7곳이 내부 또는 외부에서 새로 발탁했고, DL이앤씨 등 3곳은 기존 임원급 인사가 그대로 CSO를 겸직하고 있다.

CSO의 권한과 책임은 회사별로 대동소이하다. 삼성물산의 경우, CSO를 맡고 있는 안병철 부사장이 전사적인 안전·보건 정책 수립부터 이행까지 전담하고, 독립적인 인사·예산·평가 권한을 갖고 있다.

대우건설도 작년 초, 현대건설 품질관리실장 출신이자 중흥그룹을 거친 민준기 CSO 겸 안전품질본부장(전무)를 발탁했다. 현대건설과 GS건설도 각각 황준하 안전관리본부장 겸 CSO, 우무현 지속가능경영부문 대표(사장) 겸 CSO를 별도로 둔 상태다.

건설사들은 CSO 산하 안전 실무팀 인력도 증원했다. 삼성물산은 2021년말, 2개에 불과했던 실무팀을 7개팀으로 늘렸다. ‘중대재해 사고 0건’을 기록한 포스코건설은 올해부터 위험성평가섹션을 추가해 5그룹 3섹션 체제로 운영하고 있다.(이상 인원 비공개)

DL이앤씨는 CSO 신설 전 안전팀 인력이 57명(5팀)이었지만, 올해 1월 기준 83명(7팀)까지 확대했다. 5분기 연속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경각심이 조직 개편에도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산업개발은 작년 5월 33명에서 올 1월 56명으로 늘었다. 대우건설은 2021년말, 32명에서 작년말 45명으로 늘었다. SK에코플랜트도 같은 기간 26명에서 39명으로 늘었다.

이처럼 대형 건설사들이 지난 1년간 안전 관련 인력과 조직을 늘렸지만, 중대재해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2022년 1~4분기 중 건설사고 사망자’ 현황에 따르면 지난 1년간 10대 건설사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근로자는 20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아직 CEO는 물론 CSO의 기소 사례도 없는 상황이다.

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따지기가 어려워 생긴 일이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 이번에 기소된 CEO중에서는 조사 과정에서 “CSO를 선임했고 실질적 권한을 다 줬다”며 변소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수사기관은 증거들을 보고 ‘그럼에도 최종 결재는 결국 CEO가 다 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기소된 건들은 비교적 CSO가 형식적으로만 임명돼 있고 CEO 관여가 높아서 증거가 빨리 찾아진 곳들인 셈이다.

중처법 사건에 정통한 검찰 출신 법조인은 “CEO가 보고 받았거나 결제한 서류가 나와버리면 그 순간 CSO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게 된다. 예산 중 몇 억원 이상은 CEO에게 결제를 받아야 하는 내부 전결 위임 규정이 있는 기업도 있다”면서 “CSO가 CEO 관여 없이 스스로 독자적으로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다는게 입증이 되지 않는 한 (CSO) 기소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CEO를 기소하는 것이 쉽지도 않은 상황이다. 대형 건설사 CEO 입장에서 보면 CSO를 통해 ‘권한 분산’을 해놨기 때문에 수사기관 입장에서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만큼 수사 기간도 길어지고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도 늦어질 수 밖에 없다. CSO가 ‘CEO의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중대재해센터장은 “굵직한 건설사들 가운데 내부 보고 체계상 CSO에게만 보고하도록 한 곳이 많다”면서 “CSO는 면책형과 보좌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대형 건설사 대부분 면책형을 뒀다고 보면 된다. 회사별로, 또 건별로 보고체계와 대상이 각기 다르다. 일원화된 체계도 없고 중구난방”이라고 지적했다.

권순하 김앤장 법률사무소 EHS그룹장은 “대형 건설사들 대부분 CSO가 알아서 다 하도록, 일단 체계는 만들어둔 상황이다. 하지만 ‘CEO에게 보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말 현실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CEO 관여도가 높다는 증거들이 빠르게 찾아지는 작은 건설사들이 우선적으로 기소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조선비즈

그래픽=손민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호 기자(best222@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