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단독]40년된 5% 대금꺾기에 피멍드는 자동차 부품 대리점···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6대 보험사 공정위 제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차량 정비 자료사진. 경향DB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모비스 부품 대리점 24곳이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6개 대형 손해보험사로부터 수십년간 ‘부품 대금 꺾기’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당했다며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이들 보험사들이 부품 가격을 일괄적으로 5% 이상 차감 지급하는 ‘갑질’을 일삼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현대모비스 부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박진수(가명)씨는 16년째 보험사로부터 청구한 부품값보다 적은 대금을 받고 있다. 평균 5%, 많게는 7% 이상 깎인 금액이다. 인건비와 운임비를 감안하면 손해보는 장사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정비업체는 사고 차량이 들어오면 부품 대리점에서 부품을 가져다 수리한다. 부품 대리점은 정비업체에 납품한 부품 값을 보험사에 청구하고 보험사가 확인 후 부품 대리점에 지급한다. 부품 대리점이 부품을 공급하는 곳은 정비업체지만, 실제 대금은 보험사에서 받는 구조다.

보험사는 부품 대리점이 산정한 금액을 그대로 지급하지 않는다. 먼저 대리점이 청구한 부품가격을 현대모비스가 정한 권장소비자격으로 낮춰 잡는 1차 감액을 한다. 권장가로 감액하는 이른바 ‘손해사정’을 하고 그 금액에서 또 다시 5% 가량을 깎는다. 해당 업계에서 ‘5% 꺾기’라고 불리는 오랜 관행이다.

예컨대 지난해 4월 박 씨는 리어 범퍼 로어를 포함한 부품을 정비공장에 보내고 33만5020원의 부품 대금을 청구했다. 보험사는 손해사정을 거쳐 부품값을 28만6200원으로 감액했고, 다시 삭감율 5%를 적용해 27만1890원을 최종 부품가격으로 정했다. 박 씨가 보험사로부터 받은 최종 금액은 29만8100원(부가세 10% 합산)이다. 박 씨는 “아무런 협의없이 보험사가 정한 기준대로 부품 값을 깎고 일방적으로 지급한다”며 “인건비와 배송비, 보관 비용을 감안하면 사실상 남는게 없다”고 했다.

삭감 기준도 자의적이다. 2019년 중소기업중앙회가 부품 대리점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지역에 따라 삭감율을 차등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충남·인천은 3~5%, 제주는 0%, 수도권 등 그 외 지역은 5~7%이다.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정비업체에 납품하는 부품에 대해서는 감액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가 운영하는 정비업체는 통상 현대모비스가 직접 자동차 부품을 공급한다. 대기업은 권장가격 그대로 지급하고 중소업체에만 차별적으로 차감을 해온 셈이다.

부품 대리점의 보험 관련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80%에 달한다. 부품 업계에서는 보험사의 차감 지급으로 대리점 유통 마진의 3분의 1 이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한다. 대리점의 영업이익율은 4% 수준이다. 견디다 못한 일부 대리점이 개별적으로 보험사에 여러 차례 시정을 촉구하는 내용 증명을 보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공정거래조정원에 분쟁신고를 했지만 보험사가 조정을 거부해 절차가 종료됐다.

이번에 공정위 제소에 나선 대리점은 24곳이지만 전국의 현대모비스 부품 대리점 1100여곳이 같은 처지에 있다. 보험사 말고는 사실상 대체거래선없기 때문에 대리점에게 보험사는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갑’이다. 40년전인 1980년대 자리잡은 5% 꺾기 관행이 이제껏 근절되지 않은 이유다. 대리점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서 자동차 부품 대리점은 거래도 매출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어서 싸워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이 신고한 6개 손해보험사는 삼성화재, 현대해상, DB손보, KB손보, 악사손보, 한화손보다.

해당 보험사들은 5% 차감지급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부품 대리점들이 대금 지급 지연을 피하기 위해 보험사에게 현금거래를 제시하면서 정착한 할인 거래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이미 2009년에 공정위가 유사한 사건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법원 판례도 있다”며 “법원에서 인정했듯 부당한 거래로 불 수 없다”고 말했다.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심건섭 공정거래전문 변호사는 “5% 감액 행위가 장기간 지속된 관행이라고 해서 합법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보험사의 감액 행위는 변화된 시장 환경과 시대 정신에 따라 재판단 돼야한다”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 나는 뉴스를 얼마나 똑똑하게 볼까? NBTI 테스트
▶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 10시간 동안의 타임라인 공개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