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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남성은 지도자, 여성은 봉사자… 교리는 평등한데 현실은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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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복연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 인터뷰
"여성 차별, 종교 문제 아닌 가부장제 문제
부처 모친 마야 왕비의 위대함은 가르치지 않아"
종교와 젠더연구소·아카데미 할미
3~10월 '다시 태어나는 여성영성, 새판짜기’ 온라인 강좌
한국일보

옥복연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이 서울 중구 장충동 연구소에서 여성의 눈으로 보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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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이나 원장급 직위들은 모두 비구(남성 스님)만 맡도록 돼 있습니다. 여성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그런 자리에 갈 수 없지요. 불교만 이런가 싶었는데 여러 종교의 여성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 보니 여성이 차별받는 상황이 모두 비슷한 거예요. 이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문제인 것이죠.” (옥복연 종교와 젠더연구소 소장)

국내 주요 종교 전문가들이 모여서 ‘여성의 눈’으로 종교별 교리와 문화를 돌아보는 강좌가 열린다. 여성의 목소리가 종교계에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여성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한편, 나아가 종파를 뛰어넘는 여성 종교인 사이의 연대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이다.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와 젠더연구소’와 ‘아카데미 할미’는 3월부터 10월까지 ‘다시 태어나는 여성영성, 새판짜기’ 온라인 강좌를 연다. 모두 17강으로 이뤄진 강좌에서는 개신교, 불교, 원불교, 유교, 천주교, 천도교 등 국내 주요 종교의 전문가들이 연단에 선다. 최우혁 서강대 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관점에서 그리스도교를 돌아보는가 하면, 페미니즘 전문 출판사 이프북스의 유숙열 대표가 페미니즘 관점에서 웅녀와 이브, 판도라 신화를 해석하는 식이다.

최근 서울 중구 장충동 ‘종교와 젠더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옥복연 연구소 소장은 “기독교, 불교를 막론하고 어떤 종교 단체에서도 여성들은 봉사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지도자는 남성들이 맡는다”며 “특히 불교에서는 여성 비구니는 물론 여성 재가자의 위치가 가장 낮은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구니들은 절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스님들이 여성 재가자를 하대하는 풍경은 젊은 여성들이 불교를 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옥 소장은 각 종교의 교리 자체는 평등하지만 남성들이 주로 그것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서사, 역할이 축소되고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옥 소장은 “부처를 낳은 마야 왕비는 사재를 털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등 위대한 인물이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가르치는 스님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스님들은 부처의 비구 10대 제자를 매일처럼 이야기하지만 뛰어난 비구니들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종교인이 성차별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깨달음이나 신과 멀어지는 행동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옥 소장은 “남자들이 이야기하면 여자들은 자기주장 없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며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에서 유래한 경험과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교계의 가부장적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젊은 신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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