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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숨진 엄마와 탯줄 연결된 아기 구조… ‘희망의 끈’ 놓을 수 없다 [튀르키예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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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10시간 만에 구출 ‘감동’

건물더미마다 “살려 달라” 비명

국제사회 제재로 직접 원조 막혀

22시간 작업 끝에 구조된 여성

잔해 속 동생 보호하는 소녀도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8일(현지시간) 오후 2시 기준 현재 1만1200명을 넘어서는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한파가 이어지는 데다 여진이 구조 작업 중인 구조대를 덮치기도 하면서 구조 작업이 더디지만, 들려오는 기적적인 생환 소식은 희망의 끈을 붙잡게 한다.

AP통신은 구조대원들이 진앙에서 멀지 않은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의 붕괴된 아파트 건물 잔해 아래에서 세 살짜리 소년 아리프 칸을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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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남동부 카라만마라슈의 지진 잔해 속에서 이스탄불 소방대원이 한 소년을 구조하고 있다. 타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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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하체가 콘크리트와 뒤틀린 철근에 갇힌 상황에서 구조대원들은 추가 붕괴를 피하려 최대한 조심스럽게 파편을 잘라냈고,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담요를 덮어주었다.

소년의 아버지인 에르투그룰 키시는 아들이 구조돼 구급차에 실리자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다. 튀르키예 현지 TV는 이 구조 장면을 방송하면서 “현재 카라만마라슈에서의 희망의 이름은 ‘아리프 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로부터 몇 시간 뒤에는 튀르키예 아디야만에서 10세 소녀 베툴 에디스가 구조됐다. 구조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고 에디스의 할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되는 손녀에게 입맞춤했다. 튀르키예 아나돌루통신은 전날 샨르우르파 지역의 무너진 건물 아래서 22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한 여성이 구조됐다고 전했다. 아나돌루통신이 공개한 영상에서 이 여성은 구조 전까지 상체가 콘크리트 더미에 깔린 상태였다. 구조대는 산소와 수액을 투여해 긴 시간 동안 여성이 체력을 잃지 않도록 힘썼고, 크레인을 동원해 구출에 성공했다. 감동적인 생환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현지 기자 주허 알모사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잔해에 깔린 채 동생을 보호하고 있는 소녀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는 한 소녀가 동생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깔린 상태에서도 잔해를 떠받치고 있었다. 알모사는 이들이 17시간 동안 잔해에 깔렸었다며, 구조자가 도착하자 소녀가 “이 잔해 속에서 저와 동생을 꺼내 달라. 그러면 저는 당신의 노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 것으로 전해졌고, 알모사는 “이들은 시리아 북부에서 안전하게 의료 지원을 받고 있다”며 구출 이후의 사진을 추가로 게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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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 여린 팔로… 동생 지킨 소녀 구조 규모 7.8의 강진이 강타한 시리아에서 한 소녀가 7일(현지시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채 한 팔로는 동생을 보호하며 구조 요청을 하고 있다. 17시간 만에 구조된 소녀와 동생은 무사히 의료센터로 옮겨져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허 알모사 트위터 캡처


알모사는 ‘노예’라는 단어에 반감을 가지는 네티즌들에게 “아랍 문화에서 이 표현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감사를 표하는 형태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전날 시리아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신생아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알레포주 어린이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하니 마루프는 AP에 “진데리스에서 구조된 신생 여아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편”이라고 밝혔다.

이 신생아는 튀르키예 국경 인근의 작은 도시 진데리스의 5층짜리 주거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구조됐다. 지진이 발생한 지 10시간 만이었고, 발견 당시 아기의 탯줄은 이미 숨진 어머니와 이어진 상태였다. 마루프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신생아의 등에 타박상이 있었고,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졌지만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은 뒤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기의 가족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기의 친척인 칼릴 알 수와디는 AFP통신에 “우리는 먼지를 치우고 탯줄이 붙어 있는 아기를 발견해 잘라낸 다음 병원으로 데려갔다”며 “아기는 직계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했다. 아기의 아버지와 형제들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변을 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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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강진 피해 현장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신생 여아가 7일(현지시간) 알레포주(州) 아프린 어린이병원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아프린=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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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헬멧’으로 불리는 시리아 민방위대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 어린이를 구하는 영상을 올렸다. 하얀 헬멧 측은 “우리는 여전히 잔해 밑에 갇힌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을 듣는다”며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존 장비와 물자는 이 재난에 대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며 후원을 요청했다.

시리아의 경우 구호물자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목까지 이번 강진 여파로 막혀 피해 규모 확대와 장기화가 우려된다. 미 뉴욕타임스(NYT)와 AFP에 따르면 유엔은 “국제사회가 시리아로 구호물자를 수송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국경지대 바브 알하와 주변 도로가 전날 튀르키예 지진으로 파손되면서 물자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이자 주요 국가들과 우호적인 외교 관계에 있어 각국으로부터 인도주의적 지원을 받는 튀르키예와 달리,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 아래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는 시리아는 많은 국가 정부로부터 직접 원조를 받지 못한다.

결국 시리아는 이날 유럽연합(EU)에 지원을 요청했다. 야네스 레나르치치 EU 인도적 지원·위기관리 담당 집행위원은 “공식 요청을 받음에 따라 회원국들에 의약품과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생존자는 헤쳐나가야 할 어두운 미래가 걱정이다. 어린 자녀 두 명과 함께 튀르키예의 공항 라운지로 대피해 밤을 지새운 자히데 수투는 AFP에 “건물들이 무너지는 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내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절망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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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긴급구호단(KDRT) 소속 군 장병들이 8일(현지시간) 튀르키예 가지안텝 공항에 도착한 우리 군 다목적수송기에서 내리고 있다. 대한민국 긴급구호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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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강진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금세기 최악의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N방송은 지진 사망자 수가 7200명으로 집계된 시점에서 이 지진이 인명 피해 기준으로 지난 20년간 전 세계 최악의 지진 10번째에 근접했다고 전했다.

급파된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KDRT)는 이날 오전 6시57분 튀르키예 남동부 가지안테프 국제공항에 도착해 활동을 시작했다. 구호대는 튀르키예 측 요청에 따라 탐색구조팀 위주로 꾸려졌으며, 피해가 가장 큰 하타이주 일대에서 활동한다. 한국 140여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는 튀르키예에 1차로 400만달러(약 50억원)를 지원키로 했으며, 향후 총 지원 규모가 1000만달러에 를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튀르키예에 50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이우중·홍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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