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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나는 일제 장총 '빵야', '진짜 이야기'를 한 번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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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대, 연극 볼 이유 보여주는 작품

일제강점기, 4·3사건, 한국전쟁 겪어온 '빵야'

편성에 번번이 실패하는 드라마작가 '나나'

아픔·고통 치유하는 '진짜 이야기의 힘' 그려

재치있는 대사·연출…배우들 열연도 압권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영상 콘텐츠가 차고 넘치는 넷플릭스 시대, 연극을 왜 봐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최근 무대에 오른 연극 ‘빵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무대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진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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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엠비제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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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40대 여성 드라마작가 ‘나나’의 이야기로 막을 연다. 나나는 드라마 편성에 번번이 실패하는 한물간 작가. 나나가 쓴 작품 또한 주변에서 ‘은하수가 똥 싸는 이야기’ ‘시냇물이 뻐끔뻐끔하는 이야기’ 등의 평가를 들을 뿐이다. 그런 나나에게 오랜만에 작가로서의 촉이 찾아온다. 우연히 한 영화 소품 창고에서 오래된 장총을 만나면서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사와 계약에 성공한 나나는 드라마 편성을 목표로 장총이 주인공인 드라마 집필에 나선다.

나나의 이야기와 함께 장총 ‘빵야’의 이야기가 연극의 또 다른 한 축을 차지한다. ‘빵야’는 나나가 드라마를 위해 장총을 의인화한 캐릭터. 1945년 2월 인천 조병창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마지막 주력 소총으로 제작됐다. 소품 창고에서 먼지가 쌓은 채 침묵하고 있었던 빵야는 나나의 끈질긴 요청 끝에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공연 시간 170분에 달하는 대작이다. 그러나 극작가 김은성이 쓴 재치 넘치는 대사와 잘 짜인 이야기, 여기에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하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공연은 지루할 틈 없이 흘러간다. 음악과 안무의 적극적인 활용에선 뮤지컬 작업을 꾸준히 해온 연출가 김태형, 음악감독 민찬홍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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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엠비제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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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빵야의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소 예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것은 나나의 서사다. 제작사 대표와 티격태격하며 한 편의 드라마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유쾌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작품이 관객에 던지는 메시지 또한 나나를 통해 드러난다. 마침내 완성된 나나의 드라마 대본이 ‘대중성’을 이유로 편집되고 재단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나나가 진심을 다해 쓴 이야기가 재단되는 모습을 통해 연극은 이 시대에 ‘진짜 이야기’는 무엇인지 질문한다.

빵야는 좌절해 있는 나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이같이 말한다. “이야기 하나를 힘들게 쓰면 힘든 사람 하나가 잠시 쉬게 될지도 몰라, 이야기 하나를 아프게 쓰면 아픈 사람 하나가 조금은 덜 아프게 될지도 몰라.” 그리고 “정성껏 만든 이야기는 서서히 퍼져 나간다”는 격려도 잊지 않는다. ‘빵야’는 진짜 이야기에는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연극이 그러한 힘이 있음을 역설한다. 연극의 감동을 오랜만에 느끼게 하는 수작이다.

배우 이진희, 정운선이 나나 역, 하성광, 문태유가 빵야 역을 맡았다. 배우 오대석, 이상은, 김세환, 최정우, 김지혜, 진초록, 송영미가 일인다역으로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작품이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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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빵야’의 한 장면. (사진=엠비제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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