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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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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으로 변신한 배우 황석정 “괴물만 연기하다 끝날까 두려웠어요”[복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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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인으로 변신한 25년 차 배우 황석정이 경기 양주시에 있는 ‘미스황팜’에서 자신이 키우는 식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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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황석정(52)에게는 공식처럼 따라오는 수식어가 있습니다. ‘신 스틸러’ ‘개성파 배우’ ‘비범한 외모’…. 주목받아야 기회가 찾아오는 배우에겐 더없이 좋은 특징입니다. 데뷔작인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2008년)에서 강렬한 노숙자 연기로 시선을 잡았고 영화, 드라마, 연극을 오가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에겐 한때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합니다.

독특한 캐릭터가 내뱉는 특이한 대사는 쉬웠지만 ‘하늘이 예쁘다’ ‘바다가 푸르다’ ‘사랑한다’ 같은 일상적인 표현은 어려웠습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신 스틸러 역을 제안받고도 눈에 띄지 않는 조연을 자처한 적도 있습니다. 스타 아닌 배우로 살고 싶어 했던 선택이었습니다.

그렇게 배우로 10년째 살아가던 중,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로 전성기를 찍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족의 부양을 홀로 담당하게 되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애인과 이별했습니다. 밀려드는 고통으로 과호흡이 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그의 숨통을 틔워 줬던 건 다름 아닌 식물이었다고 합니다. 마당에 장미를 키우고 뒷산에 나무를 심으며 상처는 천천히 아물었습니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웃을 수 있게 됐습니다.

지난달 27일 경기 양주시에 있는 ‘미스황팜’에서 농업인이 된 배우 황석정을 만났습니다. 스타 아닌 배우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https://youtu.be/BdQ_rRNHpJM)와 식물을 키우며 상처를 치유하고 사람들과 교감하게 된 이야기(https://youtu.be/sZl3L_81CUc)를 나눴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에서 배우이자 농업인 황석정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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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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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배우를 꿈꿨던 건 아니었습니다. 색소폰 연주자 아버지, 성악을 전공했던 어머니를 둔 덕분에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피리를 전공했던 그는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해 한때 음악인의 길을 걷습니다.

―처음부터 배우가 하고 싶으셨던 건 아니네요.

“어릴 때는 연극을 볼 기회가 없었어요.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공부만 시키는 분위기였죠. ‘우리가 청춘을 이렇게 허비할 수 없다’며 각 반에 한 명씩 모여 무작정 연극을 연습했어요. 대본도 없는 얼기설기한 연극이었는데 새벽 여섯 시에 모여 한두 달 연습했죠. 축제 때 처음 무대에 섰어요. 흥분한 아이들이 박수치면서 환호하더라고요. 그 환호성이 잊혀지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절 보고 그렇게 좋아할 줄 몰랐거든요.”

―무대 위의 감각을 그때 처음 느끼신 거네요.

“나라는 존재가 타인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대학생이 된 후엔 ‘서울대 총연극회’에 들어갔어요. 인간적인 고뇌, 갈등이 담긴 연극을 원했는데 제가 89학번이거든요. 그때 사회 분위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회성이 강한 연극이 많았죠. 제가 원하는 연극이 아니었기에 총연극회는 얼마 못 하고 나왔어요.”

―이후 들어간 극단이 ‘한양 레퍼토리’라고요.

“창단 직전 공연을 봤는데 유오성, 권해효 선배가 나오는 거예요. ‘내가 바라던 예술 세계가 바로 저기에 있구나’ 생각했어요. 극단에서 설경구 선배님, 안내상 선배님, 이정은 언니를 만났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배우가 되겠단 꿈은 없었어요. 인간의 고뇌를 담은 예술 자체에 흥미가 있었죠.”

―그런데 어떤 계기로 배우가 되신 건가요.

“포스터 돌리고 극장 청소하는 허드렛일을 했어요. 근데 설경구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너는 꼭 연기를 해라’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연기하는 걸 본 적도 없으신 데도요. 그 말이 강하게 각인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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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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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배우 수업’을 받게 됩니다. 한 번은 독백 수업이었습니다. 준비한 연기를 선보이자 ‘한양 레퍼토리’를 창단한 최형인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너는 왜 이렇게 한(恨)이 많니. 아무래도 배우를 해야 할 것 같다.”

―용기가 생겼을 것 같아요.

“교수님이 제게 큰 배역도 주셨어요. 주인공이었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어요. 리허설까지 했는데 공연 15일 전에 하차 통보를 받았어요. ‘미안하지만 우리 극단을 위해 네가 물러나야 되겠다’고요.”

―하차 이유가 뭐였나요?

“연기를 못 했으니까요.(웃음) 에너지는 충만했지만 준비된 건 하나도 없었죠. 연기에는 독백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몸짓도 있고 상대 배우와 같이 호흡도 해야 하고…. 연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거예요. 잔뜩 신났다가 인생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아이 같았죠.”

배우로서 처음 경험한 ‘거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보단 배움을 택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십 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의 신입생으로 입학한 것입니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연기 학교의 신입생이 됐는데요.

“학교생활은 정말 즐거웠지만 연기 수업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부족함을 많이 느꼈거든요. 신화(神話) 속 캐릭터나 개성 강한 역할은 곧잘 했는데 ‘평범한 역할’은 아예 못했어요. 사랑, 아름다움, 슬픔 같은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는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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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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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표현하는 연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엄마가 굉장히 엄격하셨어요. 대학 졸업 때까지 엄마와 나눈 대화가 거의 없을 정도예요. 그러다 보니 표현이 서툴렀어요. ‘사랑해’ ‘하늘이 파랗다’ ‘꽃이 예쁘다’ 같은 말을 26살이 될 때까지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딱딱한 사람이 표현을 하려니 오죽했겠어요. ‘로미오와 줄리엣’에선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대사를 말하기도 전에 쓰러진 적도 있어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던 거예요.”
배우로 살아남아야 했는데 그걸(평범한 역할 연기) 못하면 할 수 있는 역이 별로 없었어요. 계속 괴물만 연기하다가 끝나게 될까 두려웠거든요.

―배우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저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하지? 왜 그런 표정을 짓지? 그 과정에서 ‘교감(交感)의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내가 ‘예쁘다’고 표현을 해야 상대도 ‘예쁘다’는 걸 인지하고 즐거워하잖아요. 거기에서 행복이 오게 되더라고요.”

타인과 교감할 때 행복을 느끼신 건가요?

“표현을 해야만 대상이 실재하고 그 공기, 그 정서로 가득 찬다는 걸 느꼈어요. 표현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해주었고 교감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표현과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라는 걸 남들보다 늦게 깨달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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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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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배우는 일도 쉽지 않았지만 실제 무대에 서기까지 고초도 겪었습니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 ‘날 보러 와요’ 때 이야깁니다. 처음 그는 ‘남씨 부인’에 캐스팅됩니다. 남편이 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경찰서에 끌려와 넋두리를 늘어놓는 역할로, 110분간 단 한 번 등장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신 스틸러’ 배역입니다.

―‘남씨 부인’ 말고 ‘박기자’ 역을 달라고 요청하셨다고요.

“‘박기자’는 극 중 여자 주인공이에요. 매력적인 여성 배우들이 맡았던 역이죠. 제가 하도 애원해서 연출님이 허락해주셨어요. 남씨 부인과 박기자, 1인 2역을 하게 됐죠. 근데 제작자, 배우 할 거 없이 원성이 빗발쳤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같이 생긴 여성 배우가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많지 않았거든요. 결국 무대에 서긴 했지만 상처를 많이 받았죠.”

―황석정 씨 외모가 ‘박기자’스럽지 않았다는 건가요?

“그런 셈이었죠. 학생 때는 교수님께도 ‘너 매체(영화, 드라마)엔 나가기 힘들 거야’ ‘그런 얼굴로 연기하기 어려울 거야’ 같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데뷔 후 10년 넘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죠. 시청자 게시판에 ‘저렇게 생긴 여자가 나와서 못 보겠다’ ‘토하겠다’는 글도 올라왔어요.”

―그럴 때마다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무례한 말들과 함께 살아온 거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전 이렇게 생각해요. 세상엔 여러 외모와 성격을 가진 여자들이 살아가잖아요. 여러 생김이 있고 여러 매력이 있는데 왜 배우만은 똑같은 테두리에 들어야 하나요? 다양한 나이, 생김새, 성격을 가진 여성의 삶을 더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할 거란 확신이 있어요.”

―상처가 많았을 텐데 꿋꿋하게 버티신 거네요.

“먼저 나 같은 사람이 (대중에게) 익숙해지면 그게 다리가 돼서 다른 여성 배우들도 더 편하게 나이, 생김새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살았어요. 개성적인 외모의 여성 배우들에게 디딤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참고 또 참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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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유튜브 ‘복수자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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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배우가 된 2015년 무렵 그는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정반대였다고 합니다. 빛이 드리우지 않는 구덩이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큰 인기를 얻었던 시기였는데 왜 불행하셨나요?

“당시의 저는 너무 피곤하고 너무 가난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와 가족들을 혼자 부양했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남자와 이별했어요. 사는 게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았어요. 과호흡까지 오더라고요. 정말 죽을 것 같았던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다 장밋가시에 찔렸어요. 손에서 피가 확 나는데…. 분명 아파야 하는데 너무 시원하고 위로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내 고통을 누군가는 알아주길 바랐는데 그게 장미였어요.”

장미에게서 뜻하지 않는 위로를 받은 그는 마당에 장미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마당 한 가득 수백 그루의 장미를 키우면서 마음이 치유되는 걸 경험했던 그는 본격적으로 식물을 가꾸기로 합니다. 지인 소개로 경기 양주 야산에 버려진 땅을 구입했습니다. 촬영 끝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산으로 올라가 나무를 심었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산에 나무를 심을 생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지인이 산에 식물을 심고 사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그걸 보면서 ‘아 맞아. 나도 저런 거 좋아하지?’ 란 생각이 들었죠. 산 중턱 버려진 땅에 어린 묘목을 사다 심었어요. 3년 넘게 넝쿨 제거하고 벌레도 잡아주고 물도 주고 하다 보니 나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8년을 살았어요.”

―배우와 병행했는데 지친 적은 없었나요?

“힘들지만 지치진 않았어요. 식물이 주는 즐거움은 고통을 상쇄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매년 반복되니까 식물의 모습도 똑같을 것 같죠? 식물도 성숙해요. 매년 변하고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줘요. 너무 아름다워요. 원래 취미로 그림 그렸는데 (식물 키우면서) 그만뒀어요. 아무리 열심히 그려도 식물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지 못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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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그는 ‘농업인 황석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8년 간 산행을 다녔던 경기 양주 인근에 부지 420평을 매입해 지금은 1만 3천 그루의 식물을 키우고 있습니다. 수국, 안개나무 등 심긴 품종도 다양합니다. 농장엔 ‘미스황팜’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습니다.

―‘미스황팜’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1년 전에 오래된 비닐하우스를 구입했어요. 쥐도 많았고 (비닐이) 찢어진 데도 많았어요. 한 달 넘게 직접 치우고 수리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태어나 이렇게 노동을 열심히 해본 건 처음이었어요.(웃음) 직접 비닐도 갈고 오래된 구조물도 철거하고 물 공급하는 호스도 설치했어요. 비용도 많이 들었지만 노동력이 정말 많이 들어갔어요.”

―주로 어떤 품종을 키우시나요?

“좋아하는 품종을 키워요. 전 꽃을 좋아해요. 향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다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환경이에요. 농장이 경기 북부에 있잖아요. 추위에 강해야 해요. 추위에도 강하면서 향기 나는 식물을 주로 키우죠. 대표적으로 수국이에요. 활짝 피어있는 수국을 보고 사람들이 너무 행복해하고 위로를 받으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수국이 더 좋아졌어요.”

―‘농업인’으로 전업하신 건가요?

“당연히 본업은 배우죠.(웃음) 다른 욕심이 있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식물 옆에서 살고 싶을 뿐이에요. 농장 옆에 조그마한 농막에서 살고 싶어요. 큰 집은 필요 없어요. 삼삼오오 둘러앉아 대본 읽을 수 있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친구들 오면 마당에서 고기도 구워주고요. 농장에서 연극이나 연주회 같은 공연도 할 거예요. 작년에 지인들끼리 모여 작은 연주회를 열었는데 다들 너무 행복해하시더라고요.”

식물을 키우게 된 건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 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다음 달 4일 개막하는 연극 ‘분장실’에 출연하게 되면서 연극 연습만으로도 바쁜 나날이지만 일주일 세 번은 농장에 들러 식물들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햇빛이 쨍하면 가림막을 치고 습기가 차면 환기를 시키고 병균이 자랄까 마른 잎을 떼어줍니다.

―농업인 황석정의 꿈은 무엇인가요.

“전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행복해지더라고요. 위안을 주는 것들과 더불어 살고 싶어요. 우리 모두 너무 불안정하잖아요. 삶이란 내일 당장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평온하길 바라요. 저 역시 고요하고 평화롭고 싶어요.”

―배우로서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은 있으신가요.

“진짜 사랑하는 역, 진짜 사랑받는 역을 해보고 싶어요. 커플 연기를 해본 적은 있었는데 코믹한 관계이다 보니 충분히 사랑하는 건 못 해봤어요. 티격태격하는 부부 말고 진짜 사랑하는 안정적인 관계. 그게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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