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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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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B 불똥땐 韓 더 빨리 무너진다? 세계 최고 '모바일뱅킹'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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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에 이어 대형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까지 흔들리면서 전세계로 파장이 확산하고 있다. 국내 금융권에도 '빨간 불'이 들어왔다. 대량의 투자 손실에 휘청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 은행과 달리 국내 은행들은 대출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해 와 당장 위험이 가시화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약한 고리'는 있다.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잠재 위험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 그리고 제2금융권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가능성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해외발 금융 불안이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에 대비해 잠재 위험 요인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 일단 국내 금융회사는 은행과 비은행권 모두 자산부채 구조가 SVB와 다를 뿐만 아니라, 자본비율과 유동성 비율도 양호하고 수익성도 괜찮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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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을 통해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 로고가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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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뇌관 부동산 PF 부실화 우려



다만 경기 침체와 금융 불안이 심화할 경우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저금리와 부동산 시장 호황에 일부 금융회사가 부동산 PF 대출을 늘려왔는데, 부동산 경기가 꺾이며 부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 16일 저축은행중앙회와 업계 관계자를 소집해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 등을 점검했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0조7000억원이다. 2020년 말(6조9000억원) 대비 3조8000억원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고위험 PF 사업장 대출 비중은 지난해 6월 기준 29.4%로 다른 업권 대비 높다. 이 비중은 은행이 7.9%이며 여신전문금융회사는 11%, 보험사와 증권사는 각각 17.4%, 24.2%다.

저축은행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2.8%로, 2021년 말(1.2%)에 비해 크게 올랐다. 증권사(8.16%)를 뺀 다른 업권에 비해 높다. 증권사의 경우 PF 대출 규모 자체가 작아 사업장 1~2곳만 부실이 발생해도 연체 비율이 크게 오르는 착시가 있는 만큼, 아직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 불안에 자금 경색과 경제 침체까지 더해지면 부동산 PF에 주로 투자한 저축은행에서 문제가 터져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저축은행 업계는 이런 걱정이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해 말 기준 업권 전체의 유동성 비율은 177.1%로, 감독규정에서 정한 100%를 77.1%포인트 초과했다”며 “안정적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어 예금 인출 등 유동성 수요에 충분해 대비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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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PF 대출 및 연체 잔액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금융감독원]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며 시장에선 비단 저축은행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 전체에서 부동산 PF를 중심으로 위험이 확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전국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7만5359호로 2012년 11월(7만6319호) 이후 10년 2개월 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집계한 비은행권 부동산 PF 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191조7000억원 규모로 2018년 말(94조5000억원)의 두 배가 넘는다. 연구원은 부동산 PF 위험노출액은 대출, 지급보증, 유동화증권 등을 합산한 것으로 지난해 말까지 더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저축은행ㆍ캐피탈사ㆍ증권ㆍ부동산신탁 등 업종 전망을 비우호적으로 제시했다.



고금리 여파도 본격화…슬금슬금 오르는 연체율



금융권 전반의 연체율 상승도 위험 신호다. 금리 인상에 따른 고물가 충격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가계와 기업의 상환 여력이 떨어져서다. 중저 신용자가 주로 이용하는 제2금융권 연체율에는 이미 경고등이 커졌다.

시중은행 연체율도 오름세다. 지난 1월 말 현재 국내은행 대출 연체율은 0.31%로 한 달 전(0.25%)보다 0.06%포인트 올랐다. 지난 2021년 5월(0.32%) 이후 20개월 만에 가장 높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금리에 경기 부진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이 겹치면서 기업과 가계대출이 동반 부실화할 수 있다”며 “대출 부실에 따른 연체율 증가가 금융권 전반의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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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대세된 모바일 뱅킹…순식간에 ‘뱅크런’ 가능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모바일뱅킹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위기 시 가장 빠른 속도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일어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모바일뱅킹 활용은 2015년 전체 은행 거래의 11.7%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39.7%로 높아졌다. 하루 평균 이용액은 2019년 6조원대에서 지난해 14조1758억원으로 불었다.

SVB사태에서 보듯 비대면으로 쉽게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편리함이 위험성을 증폭시켰다는 지적이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초기 뱅크런이 일어날 경우 금융당국이 인출 금지 명령 등 시장 조치를 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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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시장 안정책 연장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VB 파산과 CS 위기로 미국의 신용 스프레드(국고채와 회사채 간 금리 차이)가 급등할 때 한국의 신용 스프레드가 상대적으로 흔들리지 않은 데엔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행된 시장 안정화 대책의 효과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회사채ㆍ단기금융시장 경색에 대응하기 위해 금융업권 유동성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했다.

김은기 삼성증권 연구원은 “당장 이달 말 보험사의 퇴직연금 환매조건부채권(RP) 차입 한도 완화 조치 등의 종료가 예정돼 있다"며 “금융시장 불안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시장 안정화 조치의 연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도 안정화 대책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SVB 사태 등에도 국내 은행은 양호한 유동성과 충분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고, 관련 미 은행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도 크지 않아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금융시장의 변동성ㆍ불확실성 우려가 높아진 만큼 금융권의 건전성 제고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하남현‧임성빈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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