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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노무현 따르겠다더니… 반대로만 가는 이재명 [서승욱 논설위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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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서승욱 논설위원




봉하마을서 돌아본 진영·지역대결

그곳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주말인 지난 11일 자동차로 다섯 시간을 달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주차 공간이 꽉 찰 정도로 방문객들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잠든 묘역에도, 마지막 순간에 올랐던 봉화산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퇴임 후 마지막 순간까지 생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집'을 문화해설사와 함께 돌아보려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손녀를 태우고 논길을 누볐던 고인의 자전거, 919권의 애독서가 서가를 채운 서재 겸 집무 공간, 손자의 그림 낙서가 벽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랑채를 둘러보며 생전의 그를 떠올렸다.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이란 이름이 붙은 노무현기념관에선 한 장면 한 장면이 드라마처럼 파란만장했던 인생·정치 역정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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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 6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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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계승하겠다는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징용 해법을 둘러싼 국민 여론이 극단으로 갈리고, 정치권의 갈등이 폭발하는 국면에서 봉하마을을 찾은 건 여야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떠올라서다. 검찰의 칼날이 자신을 조여 오는 결정적 순간마다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새해 첫날부터 봉하마을을 찾았고, 같은 달 10일 성남 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첫 출석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내란 세력들로부터 내란음모죄라는 없는 죄를 뒤집어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논두렁 시계 등의 모략으로 고통을 당했다. 이분들이 당한 일이 사법 리스크였느냐. 그것은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였고 검찰 쿠데타였다"고 주장했다. (※기자의 봉하마을 방문 뒤 불거진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회고록 논란엔 "검사왕국이 되자 부정한 정치검사가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고개를 내민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2월엔 노 전 대통령 묘역을 부여잡고 흐느끼며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은 노무현의 꿈이었고, 문재인의 꿈이고, 저 이재명의 영원한 꿈"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계승자임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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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생활했던 집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서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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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도 개혁안 제시한 노무현

과연 이재명의 정치 궤적은 그의 말처럼 노무현의 정치 궤적과 닿아있는가, 이재명은 노무현의 무엇을 계승하겠다는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기자의 봉하행을 재촉했다.

"그때 노무현 청와대에 출입했다면서 그것을 왜 기억 못 하냐. 취재를 대충했구먼.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무엇을 하러 했느냐. 한 달 뒤 국회 연설에서 무슨 주장을 했는지 찾아보라."

봉하마을 방문 나흘 전 사석에서 만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노무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서 이런 핀잔을 들었다. 과거 기사를 찾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노 전 대통령은 취임 한 달여 만인 2003년 4월 2일 첫 국회 연설에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정치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며 "이런 제안이 현실화되면 (2004년) 17대 총선의 과반수 정당이나 정치연합에 '내각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했다.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 또는 '소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 확대'가 그의 복안이었다.

위기를 대하는 판이한 방식

지역주의 극복은 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한 키워드이자 필생의 어젠다였다. '바보 노무현'이란 명예로운 별명도, 돌풍이 태풍으로 번지면서 이뤄낸 대선 승리도 험지 부산에서의 3번을 포함한 모두 4번의 낙선이 만든 역설이었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이 압권이었다. 1998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던 정치 1번지 종로 지역구를 버리고 또 부산으로 내려갔고, 또 떨어졌다.

훗날 그는 이 '무모한 도전'에 대해 "떨어지더라도 정치적으로 실패할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는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회고록『성공과 좌절』), "(지역주의 극복은)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다. 자기 희생과 헌신을 통해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했다"(자서전 『운명이다』)고 회고했다.

반면 이 대표는 다른 길을 걸었다. 지난해 그는 대선 패배 뒤 불과 두 달여 만에 낙선 가능성이 작은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서 당선했다. 지역구의 원래 주인은 대선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송영길이었다. 그래서 "국회에 들어와 사법 리스크 방탄복을 입으려는 것"이란 꼬리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선거에 안 나가든지, 나간다고 해도 (본인이 시장을 했던) 분당에 나가서 떨어졌다면 감동과 울림이 있었을 것"(유인태 전 총장)이란 비판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그의 인천 출마는 9개월 뒤 체포동의안 부결로 이어졌다. “정치적 실패가 인간적 실패는 아니다”라던 노 전 대통령과 반대로 이 대표는 인간적으로 비판받는 처지가 됐다.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아야"





위기 대응 방식에도 차이가 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을 면치 못했다. 결국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압박하는 당내 비판세력의 주장을 수용했다. 그리고 본인에게 유리할 게 없었던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도 받아들였다. 그 결단이 지지층 결집과 ‘노풍’ 재점화의 기폭제가 됐다.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그는 "민주당 후보라는 작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것은 떳떳한 선택이 아니었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20여 년 뒤 사법 리스크에 내몰린 이 대표는 당 대표 퇴진론과 마주하고 있다. 조기 퇴진론을 극구 부인하더니, 최근에야 '연말께 질서 있는 퇴진론'을 친이재명 진영이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총선 불과 4개월 전에 그만두겠다면 도대체 당이 그 전까지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느냐. 조기 퇴진론을 무마하기 위한 꼼수"라는 반발이 거세다.

노무현식 '내던지는 정치'와 이재명식 '지키는 정치'의 대비가 강렬하다. 선거제 개편과 대연정 구상 등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에 정열을 쏟았던 노 전 대통령, 통합형 정치 개혁과는 반대로 '개딸' 팬덤과 극단적 진영주의 등 '국민 분열'로 생존을 모색하는 이 대표의 모습이 대조적이란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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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봉하마을을 찾은 방문객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생활했던 집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서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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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체결, 이라크 파병





이런 차이는 정책 결정에도 투영된다. 노 전 대통령은 진보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자긍심이 누구보다 강했다. 하지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체결이나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 기지 건설, 징용 피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상 결정 등 진보 진영에서 반대했던 어젠다도 필요하다면 결단했다.

"정치에 참여하는 진보주의 사람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이 '정책은 과학적 검증을 통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허하게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돼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면 안 된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선동해 끌고 갈 수 있겠지만, 책임 있는 정답은 아니다"(『성공과 좌절』에서 한·미 FTA 반대론에 대해)는 신념이었다. 양곡관리법과 노란봉투법 등 자기 진영이 열광하는 법안을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이 대표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숨을 거두기 한 달 전 검찰 수사와 관련된 솔직한 심정을 참모들에게 토로했다. 봉하마을에서 열린 '사람 사는 세상' 홈페이지 개편 회의였다. "내가 피의자로서의 권리를 이야기하면 (홈페이지) 회원들은 정치적 대결 구도에서의 투쟁으로 생각하고 나를 보호하려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맞지 않는다. 나는 이미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들까지 우습게 만드는 셈이 된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인간적 고뇌를 토로하며 이 문제가 진영 간 투쟁의 맥락에서만 해석되는 걸 경계했다.

"진보든, 보수든 신뢰가 중요"





회고록 『성공과 좌절』엔 정치인을 평가하는 노 전 대통령 나름의 기준이 제시돼 있다. "정치에서 정말로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핵심 요소는 정체성이다. 그 사람이 진보주의냐, 보수주의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원칙을 아는 정치인이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냐다. 진보냐 보수냐 이전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진보도 있고, 보수도 있는 것이다."

검찰 수사에 대한 태도, 정치인으로서의 기본에 관한 이야기가 이 대표의 가슴 복판에 박히는 돌직구 같다.

서승욱 논설위원 ss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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