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단독] 의원수 늘려도 좋고 안늘려도 OK…의원들, 법안 ‘양다리 걸치기’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레이더P]
김영배·김민철·이원욱 등 일부 의원
상충되는 법안에 발의자 이름 올려
미성년 피해자 영상물 증거채택에
‘허용’ ‘불가’ 모두 동의해준 의원도
발의 실적에만 목매 입법 효율 저하


매일경제

국회 본회의 2023.2.14 <한주형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내용이 서로 상충되는 법률안에 양다리를 걸치는 식으로 동의해주는 사례가 빈번해 법안처리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의원 실적으로 발의 건수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자 숙고 없이 동의를 남발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20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대표발의한 공직선거법 법률안은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현행 지역구 253석을 유지하는 대신, 비례대표를 기존 47명에서 30명 증원해 77석으로 늘리고 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에서 3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반면, 김종민 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법률안은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지역구 국회의원 150명, 비례대표 150명으로 하자는 내용으로 현행 의원 정수를 유지하는 안이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있어서 의원정수 확대 여부는 핵심 논점 중 하나인데 두 법률안은 서로 상충된다. 그런데 김영배·김민철·이원욱 의원(민주당)은 양쪽 법률안 모두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한 국회 관계자는 “의원정수 확대 여부는 선거법에서 국민정서와 관련된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며 “의원들이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식의 견해를 보이는 건 결론을 도출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선거제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선거제 개혁은 가뜩이나 지역구 등 상황에 따라 의원들 이견이 큰 사안이다. 개인 의원들 입장부터 확실히 정리돼야 논점을 정리해 진전시킬 수 있는데 여러 법안에 깊은 숙고 없이 동의하다보니 진전이 느리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영배 의원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큰 틀에서 보면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논의의 다양화를 위해 동의해준 것이지, 마구잡이로 동의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원욱 의원도 “선거법이 현행제도로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다양한 방안이 있을 수 있기에, 내용이 달라도 공동발의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다리식’ 법안 동의는 선거제 개혁 법률안 뿐만이 아니다. 김영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작년 4월 발의)은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한해 영상녹화물의 증거 능력을 제외시키고, 피고인과 대면 진술할 경우 중계시설 또는 가림시설 등을 통해 피해자를 보호하도록 했다. 반면, 양정숙 의원 법률안(작년 11월 발의)은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라도 피의자·피고인의 반대신문권이 보장되면 영상녹화물을 증거로 채택할 수 있도록 했다. 영상녹화물 증거능력 인정여부가 상충되는 법안이지만 민형배 의원(무소속)은 모두 동의했다.

또 이른바 ‘소년범’ 사건과 관련해 서영교 민주당 의원 법률안(작년 1월 발의)은 특정강력범죄를 1회 범한 소년범 초범도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했다. 반면, 이병훈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소년법 일부개정법률안(작년 5월 발의)은 특정강력범죄를 2회 이상 범한 경우에 한해 일반 형사사건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오영환·윤재갑 민주당 의원은 두 법률안에 모두 동의해줬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런 양다리식 법안 동의에 대해 ‘논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경고했다. “상충되는 법안에 이름을 올린다는 건 법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거나, 업적주의·성과주의에만 입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원들의 주요 실적중 하나인 의원입법은 10인 이상의 의원이 동의하면 검토 절차도 생략한 채 발의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같은 당 내에서 친한 동료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은 면밀한 검토없이 동의해주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상충된 법률안에 동의해주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는 없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제도로 막기는 어려울 것 같고, 의원들 스스로 신중하게 법안을 대표발의나 공동발의 해야 할 것”이라며 “순전히 의원의 몫”이라고 말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