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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닭발' 권하는 이집트 정부... 중산층마저 "지옥이 됐다"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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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물가상승률 32%... 먹거리는 2~3배 ↑
정부 "단백질 많고 저렴한 닭발 섭취를" 홍보
민생은 뒷전... 대규모 도시 건설에만 혈안 중
"경제난, 제2의 '아랍의 봄' 촉발할 수도" 우려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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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닭발까지 먹어야 한단 말입니까."

최악의 경제난에 신음하는 이집트에서 때아닌 '닭발 논쟁'과 함께 분출하는 절규의 목소리다. 물가 폭등으로 '식탁 위 고기'는 꿈도 못 꿀 상황인데, 정부가 그동안 음식 취급조차 못 받았던 닭발을 먹으라며 대국민 홍보에 나선 탓이다. 중산층마저 '지옥 같은 생활고'를 토로할 만큼 경제가 망가졌는데도 정부가 이렇다 할 민생 안정 대책을 내놓지 못하자, 대중의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5년 반 만에 물가상승 최고... 정부 대책은 '닭발' 홍보


19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이집트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닭고기 대신 '닭발'을 섭취하라고 권했다가 거센 역풍에 직면했다. 지난해 12월 이집트 국립영양연구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단백질이 풍부하고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며 대대적인 닭발 홍보에 나섰다.

문제는 이집트 사람들이 닭발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식재료라기보단 동물 부속물의 일종으로 여겨 기껏해야 고양이나 개의 먹이로 쓴다. 그래서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고물가와 화폐가치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는 국민들로선 또 하나의 상처를 입은 셈이 됐다. 60대 여성 웨다드는 BBC에 "고기는 한 달에 한 번 먹거나, 아예 사지 않는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BBC는 "정부의 '닭발 홍보'는 가뜩이나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지난 1월 이집트 카이로 인근 기자 지역의 한 시장에서 주민들이 먹거리를 구입하려 하고 있다. 현재 이집트 국민들은 치솟는 물가와 화폐가치 하락으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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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구제금융 단골... "대중 분노 폭발할 것"


이집트의 경제 사정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약 32%로, 5년 반 만에 최고 기록을 썼다. 달러당 이집트파운드는 1년 새 통화가치가 절반 넘게 추락했다. 특히 먹거리 물가는 몇 달 새 2~3배씩 가파르게 치솟았다. 식용유나 치즈는 아예 사치품이 됐을 정도다. 지난 6년간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린 것만 네 차례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 같은 위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세계 밀 수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두 국가 간 전쟁으로 '세계 2위 밀 수입국' 이집트는 곡물난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의 5%를 책임져 왔던 관광업의 붕괴 여파도 컸다. 매달 5,000이집트파운드(약 21만 원)를 연금으로 받던 '중산층'마저 "먹고살기 힘들다"고 토로하는 이유다.

정부의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도 확산하고 있다. 민생은 뒷전인 정부가 대규모 도시 건설 등 국가 사업 확장에만 열을 올린 결과, 부채가 늘어나는 등 경제난이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엑소더스'로 민간투자도 급감했다. 이집트의 국가 부채는 전체 경제 규모의 90%에 육박한다.

대중의 분노는 폭발 직전이다. 2011년 "빵과 자유, 평등"을 부르짖으며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의 30년 독재를 종식시킨 아랍권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미 CNN방송은 "인구 1억1,000만 명으로 아랍 최대국가인 이집트의 절반 이상이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 처했다"며 "기본적 식량까지 위협받고 있어 불안은 더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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