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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과거 궁핍함이 지금 행복의 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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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권승호 | 전주영생고 교사

“나는 행복합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했다. 불만 없음과 만족에서 왔음을 알았다. 그리고 불만 없음과 만족은 과거의 궁핍에서 왔음을 알게 됐다. 가진 게 많아서가 아니라.

음식이 맛없다는 이유로 짜증 난 적 없다. 배고팠던 과거 덕분이다. 먹을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남들의 맛 없다는 불평을 조미료 삼아 나는 맛있게 먹곤 한다. 춥다고 덥다고 잠자리가 불편하다고 짜증 낸 적도 없다. 습기 찬 냉방에서 웅크린 채 밤을 지새웠고 선풍기도 없이 더위랑 씨름했었던 과거 덕분이다. 아내가 승용차를 사용하겠다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시내버스를 타거나 걷는다. 자갈 깔린 신작로 20리 길도 눈비 맞으며 걸었는데 아스팔트 10리 길은 누워서 떡 먹기다. 책과 도시락 담긴 무거운 가방을 오른손 왼손에 바꿔 들면서 걸었는데 빈손으로 걷는 것이야 산책이고 운동이다.

똑같은 상황인데 누구는 미소 짓고 누구는 찌푸리는가? 만족스러워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고 불평불만 터뜨리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전자는 궁핍했던 과거가 있는 사람이고 후자는 궁핍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대다수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좋은 세상이여!”, “이보다 더 좋은 세상이 또 있겠는가?”라며 행복해하지만, 상당수 도시 젊은이들은 “왜 나만 부족할까?”, “왜 나는 돈 없고 권력 없는 부모님을 만났을까?”라며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이야기에 고개 끄덕이면 좋겠다. 젊은 날의 고통은 넘어졌을 때 일어서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부족함에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좋겠다. 젊은 날의 고생은 성공 실패와 관계없이 행복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까지 알면 참 좋겠다.

아들딸의 행복을 바라면서 미래 아들딸의 행복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의 잠깐 행복을 위해 미래의 길고 긴 행복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볼 일이다. 진정으로 맛있게 먹으려면 배고픈 상태를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잔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 어렸을 때 고통을 경험해야 한다. 오냐오냐. 애지중지, 금이야 옥이야,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가 버릴까는 훗날 불만 가득한 어른이나 넘어졌을 때 일어서지 못하는 실패자로 만들 수 있다.

춥고 배고픈 경험을 해본 사람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실패했을 때에도 오뚝이처럼 웃으며 다시 일어난다. 하지만 편안함이 몸에 밴 사람은 기쁜 일을 만나도 감사할 줄 모르고 조그마한 실패에도 절망하며 작은 불편함에도 짜증을 낸다. 어린 시절의 풍요로움은 불만족과 불행의 원천이 된다는 이야기다. 텔레비전에서 만나는 성공한 사람들이나 멋지게 사는 사람 가운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있지만 가난과 불행 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잠을 깊이 자고 싶다면 오랜 시간 몸을 고달프게 해야 하는 것처럼 미래에 행복을 맛보고 싶다면 지금, 고통을 경험해야 하지 않을까?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녀가 미래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금, 궁핍을 경험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같은 상황에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렸을 적 고생해 본 사람이고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사람은 어렸을 적 고생한 경험이 없었던 사람임을 오늘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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