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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경비원 사망한 대치동 아파트…‘감시직’ 승인 취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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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경비노동자 노동실태 전반 근로감독

휴게시설 미설치로 감시직 승인 취소 가능성

계약서 내용 일부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도

경향신문

관리책임자로부터 ‘갑질’을 당했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사망한 경비노동자가 일했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지난 3월 20일 동료 경비노동자들이 관리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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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근무를 마치고 경비복만 벗으면 사람처럼 대접받는데, 경비복을 입으면 사람 아닌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경비노동자 이광현씨)

경비노동자의 현실을 꿰뚫는 말이다. 한국사회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경비노동자를 바라본, 부정할 수 없는 시각이기도 하다.

최근 70대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일터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숨지기 전 남긴 호소문에서 ‘갑질’ 피해를 언급했다. 이를 계기로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전반적인 노동 환경과 처우 등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투명인간’, ‘ 파리목숨’, ‘임계장’(임시 계약직 노인장) 등으로 수식되는 경비노동자의 실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20년 5월 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언·폭행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당시에도 경비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 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됐다. 정부와 국회는 대책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에선 “1도 변한 게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주간경향 1507호 표지 이야기). 경비노동자 문제는 누군가 사망하면 반짝 주목을 받았다가 시간이 흐르면 공론장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이런 행태가 반복돼왔다.

‘직장 내 괴롭힘’ 적용 어려워


이번엔 다를까. 고용노동부는 이번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갑질 의혹뿐 아니라 이곳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노동실태 전반을 근로감독하겠다고 나섰다. 근로감독 결과가 나오면 필요한 조치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4일 오전 8시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노동자 박모씨(74)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는 사망 1시간 전쯤 ‘주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동료 경비노동자들에게 휴대전화로 전송했다. 박씨가 자필로 작성한 뒤 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호소문에는 “관리소장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그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호소문은 유서가 됐다.

박씨는 2013년부터 이 아파트에서 일했다. 2019년에는 업무 능력을 인정받아 경비반장으로 승진했다. 이곳 경비조직은 업무를 총괄하는 경비대장, 근무조 를 관리하는 경비반장, 일반 경비원 등의 구조를 갖춘다. 경비 인력은 총 77명이다. 경비대장을 제외하고 A·B조가 각각 24시간 맞교대로 근무를 선다. 경비원은 2차 간접고용 형태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전체 관리 업무를 위탁관리업체에 맡기고, 관리업체는 다시 경비업무를 경비용역업체에 하도급 줬다.

지난해 12월 새로운 관리소장이 부임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경비업무 외의 업무지시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관리소장이 박씨 등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동료 경비노동자의 말이다. “관리소장이 주재하는 조회에 원래 경비대장이 들어갔다. 경비대장이 한 달 정도 들어간 이후 못하겠다고 했다. 대신 박씨 등 반장들이 조회에 참석했다. 그런데 관리소장이 군대처럼 복명복창을 시켰다고 한다. 목소리가 작다고 구박하기도 했다. 또 박씨가 반장인 근무조의 신입 경비원이 화재경보기를 오작동하는 등 실수를 했다. 이를 빌미로 관리소장이 지난 2월 박씨에게 책임지고 반장직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러다 3월 8일에 박씨를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시켰다. 박씨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거다.”

박씨 사망 이후 동료 경비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70여명이 지난 3월 20일 아파트 앞에서 관리소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경비노동자들이 이렇게 단체행동을 하는 건 보기 드문 장면이다. 이들은 “박씨를 죽음으로 내몰고 모든 경비원을 고용불안에 떨게 하는 관리소장을 해임하라”고 주장했다. 입주민들에게서 관리소장 사퇴를 위한 서명도 받았다. 관리소장은 그러나 갑질 의혹 등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사무소 측은 “구체적인 갑질이 나온 게 없지 않나. 말로만 그러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박씨의 사망을 둘러싼 사실관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도 움직였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지난 3월 17일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이번 근로감독은 ‘수시감독’이다. 이는 종합계획에 따라 시행하는 ‘정기감독’에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언론보도 등을 통해 노동관계 법령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때 진행한다. 근로감독은 일주일 동안 이뤄지며 필요하면 연장할 수 있다. 근로감독관은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의 지위를 갖는다.

노동부가 우선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건 박씨의 사망 원인으로 지목된 갑질 의혹이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다만 박씨의 사례에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만 적용 가능하다. 박씨가 근로계약을 맺은 사용자는 경비용역업체이지, 관리소장이 아니다. 노동부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있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 관계자는 “법률상 직장 내 괴롭힘을 적용할 수 없더라도 조직문화 개선을 위한 권고 등 행정지도를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런 빈틈을 이유로 경비노동자 등 하도급 노동자의 갑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용자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노동부가 ‘특별감독’이 아닌 수시감독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별감독의 시행 요건 중에는 ‘폭언, 폭행, 직장 내 성희롱, 괴롭힘 등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업장’이 있는데, 이번 사건엔 직장 내 괴롭힘이 적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별감독은 3년 동안 사업장에서 이뤄진 노동관계 법령 관련 사항을 대상으로 하지만 수시감독은 1년 치만 가능하다.

감시직 승인 취소될까


노동부는 이곳 경비노동자의 노동 실태 전반도 감독하고 있다. 이들은 24시간 맞교대로 일하면서 급여는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이렇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가능한 이유는 ‘감시·단속직’의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감시·단속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상한, 휴게, 수당 등 주요 조항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대표적인 감시직이 바로 경비노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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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의 경비초소 모습. 앞서 이 아파트에서 일하던 경비노동자가 관리책임자의 ‘갑질’ 의혹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사망했다. / 정희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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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가 일하는 아파트도 과거 노동부로부터 감시직 승인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현재 감시직 승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승인 기준은 심신의 피로가 근로기준법을 적용해야 할 정도인지 여부다. 또 2021년 10월부터 휴게시설 설치와 휴게시간 보장 등의 조건이 신설됐다. 사업장에는 별도의 휴게시설을 마련하는 게 원칙이다. 휴게시설에는 적정한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냉난방 시설을 갖춰야 하고, 유해물질이나 소음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야간에 수면 등을 취할 때 몸을 눕힐 수 있는 충분한 공간도 확보해야 한다. 다만 충분한 휴게 공간과 시설이 마련된 경우에는 별도의 장소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는 경비노동자가 ‘쉴 수 있는’ 변변한 휴게실이 없다. 지하에 휴게실 같은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쉴 환경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비노동자 A씨는 “이곳은 석면이 떨어지고 쾨쾨한 냄새가 나서 쉴 수가 없다. 말만 휴게실”이라고 말했다. 경비노동자 B씨도 “지하에 창고 같은 공간에서 식사만 한다. 여긴 휴게실이 아니다”라며 “휴게시간에는 그냥 경비초소에서 쉰다”고 했다.

또 “야간에도 초소에서 잔다”고 B씨는 말했다. 실제 비좁은 초소에는 작은 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폭도 좁고 길이도 짧은 편이다. 고시원처럼 침대 끝부분은 책상 아래 놓여 있다. 휴게시설 미설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해당한다.

감시직 승인이 취소되면 경비노동자들은 주 40시간(최대 52시간), 유급주휴일, 연장·휴일 근로수당 등을 받을 수 있어 임금이 대폭 상승한다. 다만 입주민 입장에선 관리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반작용으로 경비원 인원 감축 등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는 뜻이다.

경비노동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남우근 한국비정규센터 정책연구위원의 말이다. “감시직이 취소되면 인력을 줄이는 등 문제 해결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어 조심스럽기는 하다. 그렇다고 문제를 덮을 순 없다. 노동부가 감시직 요건을 엄격하게 판단해 취소해야 할 사안이면 취소해야 한다. 인건비가 오르지 않거나 인상 폭을 최소화하도록 야간근무 등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근무체계를 개편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제 서울시가 설립한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021~2022년 두 차례 근무체계 개편 무료 컨설팅을 진행했다. 경비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임금을 유지하면서, 입주민은 관리비 상승의 부담도 덜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노동부는 2021년 8월부터 비슷한 취지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도 이르면 4월부터 사업 진행에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근로감독을 통해 감시직 승인 요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이 때문에 승인의 유효기간을 설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8월 감단직 승인을 3년마다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부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이상한 자술서·동의서


박씨가 일한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경비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4명에게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이들이 오랫동안 계약을 연장해 왔다면 ‘계약갱신기대권’이 인정될 여지도 있다. 부당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동부는 근로감독에서 이 부분도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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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등이 지난 3월 17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경비노동자를 상대로 한 ‘갑질’과 초단기 근로계약 근절 등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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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노동자들은 또 올해부터 3개월 단위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초단기 쪼개기’ 계약이다. 이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경비노동자가 갑질과 열악한 처우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쉽게 해고될 수 있어 문제 제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계약 종료 전 일괄적으로 사표를 받고도 있다.

경비노동자와 경비용역업체가 체결한 근로계약서에는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는 내용도 포함됐다. 퇴직금을 2개월 이내에 지급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조항이다.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상 14일 이내에 정산을 완료해야 한다. 또 근무를 교대할 때 앞선 근무자가 30분 동안 근무복을 벗지 않고 인계받는 근무자와 함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무임금 노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30분 동안 연장 근로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계약서에 첨부된 자술서와 동의서도 문제로 꼽힌다. 아파트에서 일하다가 다른 업무를 하게 됐을 때 경비용역업체에 통보하지 않으면 업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또 휴게시간을 침해당했을 때도 미리 얘기하지 않으면 경비용역업체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문구도 있다. 이는 사용자의 책임인 경비노동자의 합법 업무와 휴게시간 등의 준수를 경비노동자에게 떠넘기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은 같은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노동 실태도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했다. 지난 3월 9일 이곳에서 근무하는 70대 청소노동자가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사망 전날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해고를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남우근 위원은 “이 아파트가 특별한 게 아니다. 다른 아파트단지에서도 위법하거나 부당한 노무관리 방식이 만연해 있다”라며 “이제 와서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한다고 하는데, 이런 불법적 상황들에 대해선 이미 근로감독을 시행했어야 했고 잘못된 부분은 제도를 개선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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