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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진다...내 예금은 안전할까? [뉴스 쉽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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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의 파장이 여러 국가로 확산하고 있어요. 지난 10일 파산 소식이 알려진 후 연일 경제 뉴스에 등장하는 중이라 이제 SVB라는 이름이 익숙하게 느껴지실 분들도 많을 듯한데요. 사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에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좀 놀랍긴 하지만 당장 한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라는 전망이 우세했어요. 워낙 특수한 사례이기도 했고, 미국 정부가 발 빠르게 사태 진화에 나섰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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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은행/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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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며칠 뒤에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한 소식이 전해졌어요. 스위스 2대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CS)도 파산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거죠. CS는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은행들을 꼽아봐’라고 하면 무조건 포함되는 은행이에요. 과거 2008년에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했는데요. 이때 주요 20개국(G20)이 ‘우리 다시는 금융 위기를 겪지 말자’라며 금융안정위원회(FSB)란 곳을 만들었죠. 여기서 매년 ‘세계 금융 시스템에 중요한 은행’을 30개씩 선정하는데, CS는 꾸준하게 이름을 올려왔어요. 달리 말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망하면 큰일 나는 은행’ 중 하나라는 거예요.

CS는 지난해부터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잇단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기록했거든요. 지난해 말부터는 위기설이 퍼지며 일부 고객들이 이 은행에 맡겨놨던 돈을 찾아가기 시작했고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이번 SVB 파산 사태였어요. ‘CS도 망하는 거 아니야?’라며 더 많은 고객들이 돈을 빼내게 된 거죠.

앞서 파산한 SVB와 달리 CS가 파산하면 그 파장은 훨씬 커요. 일단 CS는 규모가 SVB의 3배에 달하고, 세계 곳곳에 다양한 회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죠. CS가 직접 투자하거나 돈을 빌려준 회사들이 많고, 반대로 이 은행에 투자한 금융회사들도 적지 않아요. CS 혼자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 은행과 거래하던 많은 회사들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는 구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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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간) 크레디트스위스 뉴욕 지점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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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정부의 눈물 나는 노력
다행히도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어요. 스위스 최대 은행인 UBS가 파산 위기에 처한 CS를 인수하기로 한 건데요. ‘굳이 파산 위기에 처한 회사를 인수하고 싶지 않다’라는 입장이었던 UBS를 설득하기 위해 스위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섰어요. ‘저렇게 까지 해도 되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했죠. 스위스 정부가 약속한 혜택은 다음과 같아요.

①돈 걱정은 하지 마

스위스 정부는 CS를 인수하는 UBS에 최대 141조원에 달하는 돈을 대출해주기로 약속했어요. 또 이 은행을 인수했다가 손실을 보면 최대 12조 7000억원까지 정부가 보상해주기로 했죠.

②빚도 덜어줄게

스위스 정부는 CS가 갚아야 할 빚 중 일부를 탕감해줬어요. 그 금액만 22조원이 넘는다고 해요. 이정도 금액을 탕감해준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죠.

③복잡한 절차? 건너뛰어

스위스에선 기업이 다른 회사를 인수할 때 기업의 주인인 주주들이 해당 거래를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요. 주주들이 모이는 총회를 열어야 하죠. 하지만 스위스 정부는 이번에만 특별히 이 절차를 생략하는 방안까지 제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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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최대 은행 UBS가 19일(현지시간) 경쟁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를 발표한 기자회견 이후 악셀 레만 CS 회장(왼쪽 첫 번째)과 콜름 켈러허 UBS 회장(왼쪽 두 번째)이 악수하고 있다/사진=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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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파격적인 혜택 덕에 UBS는 지난 19일에 CS 인수를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 파산 위기설이 제기된 지 약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이에요.

‘글로벌 은행 위기’ 해치웠나...?
CS 파산을 막으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은행에 대한 우려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하는 중이에요. 물론 대형 은행들이야 괜찮겠지만, 규모가 작은 중소형 은행들부터 차례대로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죠.

멀쩡해 보이던 은행들이 망하는 걸 모두가 목격했잖아요. 아무래도 더 안전한 곳에 돈을 맡기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예금 이자를 조금 덜 준다고 해도 일단 규모도 크고 자금 사정도 탄탄해서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은행으로 돈을 옮기고 싶을 거고요.

이런 분위기가 확산하면 중소형 은행들은 아주 곤란한 상황을 마주하게 돼요. 보통 은행들은 고객들이 맡긴 예금 중에 최소한의 돈만 남겨놔요. 돈을 굴려서 이익을 남겨야 하니까요. 돈이 필요한 이들에게 대출해주면서 이자를 받죠. 그런데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맡겨놨던 예금을 찾아간다고 하면 중소형 은행들은 급하게 돈을 구해야 해요. 돈을 못 구하면 SVB나 CS처럼 되는 거고요.

남 얘기가 아니었네?
이런 우려는 다른 나라들의 얘기가 아니에요. 요즘 우리나라 저축은행이 비슷한 위험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죠. 저축은행은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의 일반은행들보단 규모가 작지만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금이나 대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들이에요. 신용도가 낮아 일반 은행에선 대출받지 못하는 고객들에게도 돈을 빌려주죠. 물론 신용도가 낮은 고객들이니 일반적으론 더 많은 이자를 요구하지만요.

그런데 국내 저축은행이 대출해준 돈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요. 특히 이들이 건설회사 등에 빌려줬던 돈이 불안하다는데요. 건설사들은 아파트 단지를 새로 지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니까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들의 돈을 빌려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새 아파트 단지를 지었는데 팔리지 않아 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은 크게 따지지 않고 돈을 잘 빌려줬어요. 저축은행은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라며 부동산 사업과 관련된 대출을 크게 늘려왔죠. 국내 저축은행들이 이런 식으로 제공한 대출 등의 규모가 2020년 말에 비해 지난해 9월에 50% 이상 증가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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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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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면서 집을 지어도 팔리질 않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어요. 지난 1월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7만 5000가구를 넘어섰죠. 한 달 만에 10% 이상 늘어났고, 10년 2개월 만에 가장 큰 규모가 된 거래요. 아파트가 팔리지 않으면 저축은행이 건설사에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고요.

부동산 회사들뿐 아니라 개인을 상대로 대출해준 돈도 불안해요. 최근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고 제때 갚기 어려운 개인이 늘어나는 추세거든요. 지난 23일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말 2.7%였던 고위험 가구의 비중이 지난달엔 5%까지 높아졌어요. 고위험 가구는 버는 돈의 40% 이상을 빚 갚는 데 쓰고, 자산을 다 팔아도 대출을 못 갚는 ‘돈을 갚지 못할 위험이 큰 가구’를 의미해요. 특히 저축은행은 고위험 가구에 대출해준 비중이 26.6%로 일반 은행(7.2%)보다 높죠.

은행이 건설회사나 개인에게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하는데, 은행에 예금을 맡긴 고객들이 갑자기 돈을 찾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하는 거예요.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지만...
일단 각국 정부와 국회는 은행 고객들의 불안을 잠재울 각종 방안을 내놓는 중이에요. 미국 정부는 SVB에 돈을 맡긴 고객들이 무조건 예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죠. 지난 21일에는 “다른 소규모 은행들도 비슷한 위험에 노출된다면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라며 다른 은행에 문제가 생겨도 예금을 전액 보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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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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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은행에 돈을 맡긴 예금자들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에서 제기됐어요. 현재 국내에선 은행 등이 파산해 고객에게 예금을 지급할 수 없는 경우 ‘예금보험공사’란 곳에서 최대 5000만원까지 대신 돈을 지급하는데요. 이 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높이는 법안이 발의될 예정이죠.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한 비판도 나와요. 은행이 망할 때마다 정부가 일일이 보장해주면 은행들이 경영을 해이하게 할 거란 주장이죠. ‘어차피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가 도와줄 텐데 편한 대로 하자’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니까요. 예금 고객들도 은행이 탄탄한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이자를 많이 주는 곳으로 몰릴 테고요.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을 구제하는 비용은 결국 다른 국민들이 분담할 가능성이 크죠.

비판에 부담을 느꼈는지 일단 미국 정부는 하루 만에 한 발 물러섰어요. 지난 22일 미국 정부는 “모든 은행의 예금을 보호한다는 건 아니다”라며 앞선 발언에 선을 그었죠.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모습에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인데요. 당분간 은행에 대한 걱정스러운 시선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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