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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최유식의 온차이나] 중국 배터리업계의 ‘시진핑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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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 “배터리 기업 해외 진출 신중해야” 언급하자 중 당국 세계 1위 배터리 기업 CATL 유럽 진출 제동

”민영 기업 압박 넘어 경영 전략까지 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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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 업계가 요즘 좌불안석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3월6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에 참석해 배터리 업계의 묻지마식 확장과 투자에 대해 경고를 한 탓이죠.

시 주석 집권기 중국 민영기업들은 동네북 신세입니다. 지난 3년간은 알리바바, 텐센트, 징둥 등 IT분야 플랫폼 기업들이 대대적인 조사를 받고 천문학적인 벌금을 냈죠. 2월 중순에는 중국 투자은행계의 거물인 차이나 르네상스 바오판(包凡) 회장이 갑자기 실종됐습니다. 차이나 르네상스는 2월26일 “바오 회장이 국가 기관의 조사에 협력하고 있다”며 당국에 체포됐음을 공식 확인했죠.

이런 과정을 지켜봤으니 이제 불똥이 배터리 업계로 튈 것으로 보는 겁니다. 황제가 직접 좌표를 찍었으니 당정 기관들이 가만히 있지 않겠죠.

◇공개석상서 훈계 들은 CATL 회장

중국 관영매체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정협회의에 참석해 경제계 인사들의 의견과 건의를 청취했습니다.

세계 1위 자동차용 배터리 업체인 CATL(寧德時代)의 쩡위췬(曾毓群·55) 회장도 정협위원으로 이 회의에 참석해 의견을 냈다고 해요. 쩡 회장은 “CATL이 작년 세계 시장점유율 37%로 6년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고 보고하면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핵심 전략 광물 확보를 위한 정부의 금융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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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은 3월6일 열린 정협 회의에서 참석해 중국민주건국회(민건), 중화전국공산업연합회(공산련) 소속 경제계 인사들의 의견과 건의를 들었다. /중국정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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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를 들은 시 주석은 “신흥산업은 불꽃처럼 솟아오르는데, 즐거움도 있지만 걱정도 있다”며 답을 시작했어요. 그는 “우리가 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권에 있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기세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면서 “우르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가 결국엔 뿔뿔이 흩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제 경쟁에 참여할 때는 시장은 얼마나 큰지, 어떤 위협이 있는지를 살피는 종합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면서 “안정적이고 신중하게 산업 발전이 이뤄지도록 하고 산업 발전과 안보의 관계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했어요. 민영기업 압박을 넘어 이제 경영 전략까지 통제하고 간섭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해외 진출 경계하는 이유

시 주석의 발언은 공급 과잉을 우려한 측면이 있어요. 중국은 2차전지 업체가 3만3200개에 이르고 작년 한 해에는 940개가 새로 생겼습니다. 작년 2차 전지 생산량은 2021년에 비해 130%가 늘었어요. 올해부터 전기차 구매 보조금이 전면 폐지돼 전기차 수요는 주춤하는데, 이런 속도로 생산량이 늘면 조만간 공급 과잉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경계한 것이란 분석이 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여요. 전기차 붐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앞다퉈 미국과 유럽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총투자액이 200억 달러가 넘는 10여건의 해외투자계획이 발표됐죠. 이렇게 나간 해외 공장이 미중 경쟁 과정에서 화웨이처럼 서방의 볼모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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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L은 연구개발 능력과 제조 기술이 뛰어난 세계 최대 자동차용 배터리 업체죠. 작년 세계 시장 점유율은 37%로 압도적인 1위였고, 중국 시장 점유율도 50%나 됩니다. 다만, 중국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게 이 회사의 약점이에요.

중국을 제외하고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 기업의 경쟁력도 만만하지가 않아요. 올 1월 기준 중국을 제외한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LG에너지솔루션이 24.2%로 1위, CATL이 24.1%로 2위, 파나소닉이 22.1%로 3위입니다(SNE리서치).

◇“세계시장 커지는데...” 초조한 CATL

CATL은 올 1월 연산 8GWh(기가와트시) 규모인 독일 튀링겐 공장 가동에 들어갔고, 작년 하반기에는 헝가리에 80억 달러를 투자해 연산 100 GWh 규모의 유럽 최대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어요. 올 2월에는 포드와 협력해 미국 미시간주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도 내놨습니다.

중국을 넘어 세계무대에서 한·일 배터리 업체와 본격 경쟁을 하겠다는 뜻인데, 시 주석의 경고 한마디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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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월 준공돼 가동에 들어간 CATL의 독일 튀링겐 공장. 이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는 BMW 등에 공급된다. /CA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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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L은 올해 해외주식예탁증서(GDR)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스위스 증시에 상장해 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이었습니다. 헝가리 공장 건설에 들어가는 80억 달러 중 일부를 이 돈으로 충당하겠다는 거죠.

원래는 올 1월 중국 증권감독당국의 승인이 나오면 5월쯤 상장할 계획이었는데, 당국이 승인을 미뤄 상장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시 주석의 경고가 나오자마자 중국 감독 당국이 움직인 거죠. CATL의 한 고위간부는 외신 인터뷰에서 “정부가 제동을 건다고 업계 내 CATL의 위상이 달라지진 않는다”면서도 “전방위로 압박을 받는 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미국 진출도 미지수

포드와 협력해 건설하려는 미국 공장 프로젝트도 걸림돌이 적잖아요.

미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인 마코 루비오 의원은 합의가 발표되자마자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니퍼 그랜홈 에너지부 장관 등에 서한을 보내 “외국인투자심사위원회(CFIUS)를 열어 포드와 CATL 간 협력 계약을 심의해 달라”고 요청했어요. 이 공장이 중국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세계무대 진출은커녕 내우외환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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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세계신에너지차대회에서 연설하는 CATL 쩡위췬 회장. /CA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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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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