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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싱가포르도 가세… ‘루나·테라 사태’ 권도형 4국 쟁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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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이어 신병 인도 요청

조선일보

몬테네그로 법원으로 압송되는 권도형 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한 혐의로 체포된 권도형(오른쪽) 테라폼랩스 대표가 24일(현지 시각) 경찰에 의해 법원으로 압송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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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상 화폐 루나·테라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에게 50조원 이상 피해를 준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의 신병 확보가 다국적 쟁탈전으로 확전하고 있다. 권 대표의 국적은 한국이지만, 디지털 자산인 가상 화폐 속성이 국경을 넘나드는 ‘무국적’이고 피해자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보니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범죄가 계속 늘어날 조짐이 보이자,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이 가상 화폐 전담 수사국을 신설하는 등 수사 패러다임도 바뀔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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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씨가 최근 남동유럽 몬테네그로에서 공문서(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된 가운데, 권씨를 수사하거나 기소한 국가는 최소 4곳으로 늘어났다. 애초 한국과 미국이 각각 권씨를 기소한 데 이어, 싱가포르와 몬테네그로도 권씨의 처벌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24일 몬테네그로에 권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고, 미국도 비슷한 시기 관련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를 발행·유통하는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도 권씨의 신병 확보전에 가세한 상황이다. 싱가포르에선 투자자들이 권씨를 산발적으로 고소하고 있어 현지 사법 당국이 수사하고 있다.

아울러 권씨를 곧 다른 나라로 넘길 듯했던 몬테네그로 법원마저 자국에서 먼저 재판을 하겠다고 나섰다. 권씨는 23일 몬테네그로 국제공항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으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행(行) 비행기에 오르려다 체포됐는데, 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한 뒤 해외 인도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몬테네그로 법원 관계자는 AFP통신에 “권씨는 몬테네그로 하급법원에서 공문서 위조 및 불법 입국 혐의와 관련한 재판을 받고 난 다음 상급법원에서 범죄인 인도 요청과 관련한 심리를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몬테네그로 법원은 일단 권씨의 구금 기간을 최장 30일로 연장했다. 현지 법률에 따른 피의자 구금 기간은 최장 72시간인데, 권씨가 도주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있어서 이를 연장했다고 법원은 밝혔다. 미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해 “몬테네그로 및 각국의 수사 상황에 따라 권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절차에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했다.

어디로 송환될지에 대해 현지 법원이 당사자의 의사를 우선 고려한다면, 권씨가 경제 범죄에 수백 년씩 실형을 선고하는 미국보다는 한국행을 희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약 72조원어치 피해가 발생했던 다단계 금융 사기 ‘폰지’ 사건의 주범 버나드 메이도프의 경우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감옥에서 세상을 떴다. 한국은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약 40년에 머물고 있다.

세계 15위 가상 화폐 ‘트론’ 창시자 저스틴 선이 지난 22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고소됐고, 가상 화폐 거래소 FTX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가 사기·돈세탁으로 기소되는 등 가상 화폐 관련 사건이 잇따르자 인터폴도 관련 조직을 확대하며 대처에 나서고 있다. 가상 화폐는 국경이 없어 범죄가 발생하면 글로벌 사건으로 번지기 쉽고, 범죄 조직의 돈세탁에도 악용되기 십상이어서 각국 정부엔 골칫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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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가상화폐거래소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30)가 2023년 1월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연방지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뱅크먼-프리드는 이날 30여 분간 진행된 공판에서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변호인을 통해 무죄 주장을 전달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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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폴은 권씨에 대한 적색 수배가 발령된 직후였던 지난해 10월 가상 화폐 관련 범죄 단속을 강화하기 위해 전담 수사 팀을 싱가포르에 구성했다. 자유롭게 각국을 넘나드는 가상 화폐 특성상 관련 범죄가 발생하면 당사국 간의 협력이 가장 중요한데, 이를 중재할 장치가 부재하고 국가별 사법기관의 관련 지식 및 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보완이 시급하다는 취지에서였다. 유로폴(유럽연합 경찰 기구)도 지난 1월 가상 화폐로 사기 행각을 벌인 4국(불가리아·키프로스·독일·세르비아) 연합 사이버 범죄 집단을 검거하는 등 수사 반경을 넓히고 있다.

오는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개최되는 주요 7국(G7) 정상 회의에서도 가상 화폐 이용자 보호를 위한 각국의 법 정비 논의와 그 성과를 공동선언에 반영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26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세계 가상 화폐 이용자가 늘어나는데 각국 규제는 느슨해 피해가 발생하면 글로벌 금융시장까지 뒤흔들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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