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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검정고무신' 작가의 눈물 "기영이를 형에게 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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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기영이 기철이, 우리 가족을 더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에 만났던 2007년의 인연은 인연이 아니라 악연이 되어서, 형의 영혼까지 갈아먹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故 이우영 작가 동생 이우진 작가 발언 일부

저작권 분쟁 속에 세상을 떠난 '검정고무신' 원작자 고(故) 이우영 작가의 유가족과 '이우영사건대책위원회'가 주식회사 형설앤(이하 형설)의 사과 및 불공정 계약으로 강탈된 '검정고무신'의 저작권 반환 등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27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진혁(형설 대표)과 형설은 이우영 작가가 자식보다 소중하다고 말한 캐릭터의 저작권을 부당하게 갈취하고 작가의 생명같은 창작까지 가로막아 작가의 삶을 부정했다"라며 "납치당한 기영이와 그의 친구들, 가족들을 유가족의 품에 돌려보내 달라"고 호소했다.

검정고무신 사업만 77개인데 … "원작자는 15년 동안 1200만 원, 막노동으로 버텨"

기영이, 기철이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로 유명한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원저작자 이우영 작가는 지난 4년간 형설 측과 저작권 분쟁을 이어오던 끝에 지난 11일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작가진에 검정고무신 사업화를 제안한 형설은 사업권 설정 계약서에 '검정고무신과 관련된 작품 활동 및 2차 사업에 대한 모든 계약 권리를 형설에 양도'하는 조항을 기입하는 등 불공정계약을 통해 원작에 대한 저작권을 점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설은 이후 '(이 작가가) 형설을 통하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으니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며 이 작가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그렇게 긴 저작권 분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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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고무신' 공동 원작자이자 고(故) 이우영 작가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가 지난 27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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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 소속 김성수 변호사는 이날 기자와의 질의응답에서 "계약 이후 작가님은 계약의 문제점과 불공정하고 (수익배분 등에 있어서의) 불분명한 부분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계약을 다시 하자는 호소를 계속해왔다"라며 "형설은 이에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그 과정 중에 작가님이 작품 활동을 하자 소송을 걸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계약서를 통해 검정고무신의 사업권을 확보한 형설은 "사업화를 통한 정산내역 등" 비용에 관한 사항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쳤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계약 기간 동안 검정고무신과 관련된 사업화 사례만 77개"에 달했지만 "이 작가가 사업화의 명목으로 형설로부터 받은 금액은 지난 15년을 통틀어 1200여만 원"에 불과했다.

검정고무신의 공동작가이자 이 작가의 동생인 이우진 작가의 딸 이선민 씨는 27일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게시 글에서 이우진 작가가 "빼앗긴 저작권으로 아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 막노동 일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혼자 싸우다가 멀리 떠난 형 … 후배, 제자들 창작활동 보호해야"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이우진 작가는 "형이 마지막으로 걸었던 부재중 전화"를 받지 못했다며 죄책감을 표하면서도 고인의 마지막 뜻이 "아마도 형이 마무리하지 못한 이 분쟁을 해결하고, 후배와 제자들의 창작활동을 보호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하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라고 말했다.

헌법 제22조 2항은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만화계 등 실제 예술현장에선 저작권 및 노동 강도 등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게 이날 대책위 측의 지적이다. 예술인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재의 풍토에선 '제2의 이우영 사건'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은 이날 많은 작가들이 "과도한 노동, 불법공유로 인한 허탈함, 불공정한 계약이라는 힘든 환경 속에" 놓여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의 타의로 죽어가는 제2, 제3의 이우영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 1월 발표한 '웹툰작가들의 정신건강 및 신체건강과 불안정 노동수준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웹툰작가의 28.7%가 우울증 진단을 받고 17.3%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등 심각한 정신건강 악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조사에서 절반 이상의 작가들(64.4%)은 "근무시간이 적당하지 않다"고 답했으며 주당 근무 일수는 5.7일,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51시간으로 나타났다. 높은 업무강도의 주된 이유로는 △회당 그려야 하는 컷수의 부담 △짧은 연재주간과 함께 △플랫폼과 제작사의 압박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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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에 참여한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정의당 류호정 의원(왼쪽),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오른쪽) ⓒ프레시안(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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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이날 △과도한 업무강도 △작가에게 불리한 수익구조 △계약을 통안 작품 저작권의 강탈 △작가에 대한 사상검증 등을 만화·웹툰계의 대표적인 불공정 관행으로 제시하며 "정부와 국회는 문화예술계의 공정한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이제라도 직무유기를 그만두고 (입법 등을 통해) 이우영 작가에게 빚을 갚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엔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이 지난 2020년,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2022년 각각 공동발의한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이 문체부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고 계류 중에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김 의원과 유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 등 여야 3인은 "제작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제도적) 노력은 산업발전에 대한 저해요인 아니"라며 "창작자의 정당한 권리 보장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 다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 향방은? … 대책위 "법적, 법 외적 노력 다할 것"

현재 여전히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검정고무신 저작권 분쟁은 답보 상태에 있다.

이우영 작가의 사후 형설과 작가진 간의 불공정 계약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보상금 문제 등 이 작가의 피해·명예 회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지만, 김 변호사는 "형설 측이 구체적 정산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보상금이나 정당한 대가의 청구는 현재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했다.

대책위는 "이 작가의 피해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으로든 법 외적으로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대책위 구성의 핵심 목표를 크게 △검정고무신 저작권의 온전한 반환 △이 작가에 대한 추모사업 진행 △창작자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제도개선 세 가지로 꼽았다.

신 회장은 장진혁 형설 대표와 형설 측에 △고 이우영 작가의 죽음에 대해 사과할 것 △검정고무신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유가족에게 반환할 것 △원작자 이우영, 이우진에 대해 진행 중인 2건의 민사소송을 취하할 것을 구체적인 요구사항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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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공동제작자인 이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도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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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대책위는 관계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도 "본 건에 대해 엄중히 조사하고, 향후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수 있는 근원적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문체부는 웹툰 작가, 플랫폼 회사, 제작사(CP) 등으로 구성된 웹툰상생협의체와의 협의로 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웹툰작가노동조합 등 현장 단체들은 협약문의 핵심인 표준계약서에 △플랫폼·제작사·창작자 간 삼자계약서 등 저작권 보호를 위한 내용이 부재하며 △계약자 간 ‘합의’에 따라 불공정 계약이 성립될 수 있다는 점 △정산정보 공개 의무를 모호하게 언급한 점 등을 들어 해당 계약서가 “작가들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일방적인 계약서”라고 비판했다.

[한예섭 기자(ghin2800@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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