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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환자 간호에 남녀차이 없어요” 남자 간호사들의 편견을 깨는 병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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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곳곳 고군분투 이야기 담은

책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출간

수익금 전액 어린이병원 등 기부

“남자 간호사 다양한 역할 알리고파”

경향신문

남자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를 출간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들. (왼쪽부터) 장명철, 박준용, 이수근, 박상곤, 김진수, 엄군태, 유세웅, 유중윤씨.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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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무슨 간호사냐’는 핀잔도 들었다. ‘남자는 꼼꼼하지 못하다’는 편견도 받았다. 강도 높은 노동환경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버텼다. 환자에게는 따뜻한 간호사로, 후배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어서였다.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 남자 간호사들 이야기다.

이들은 최근 응급실부터 장기이식센터, 수술실, 어린이병원 등 병원 곳곳에서 고군분투해온 이야기를 담아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를 출간했다. 책 수익금은 전액 간호국과 어린이병원에 기부하기로 했다. 책은 출간 한달여 만에 2쇄를 찍었다.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업무가 바빠 이름 정도만 알고 지냈던 이들이 뭉친 계기는 김진수씨(31·수술간호팀 마취회복파트)의 제안 덕분이었다. 김씨는 2021년 연말 병원 내 남자 간호사들 단톡방에 ‘책을 함께 쓸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을 공유했다.

김씨는 당시 남자 간호사로서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알리기 위해 전국 간호대 등에서 강연을 하고 관련 서적을 출간했다. 그의 제안에 단톡방에 있던 간호사 280여명 중 13명이 손을 들었다.

공동저자인 간호사 14명 중 8명을 지난 23일 병원에서 만났다. 김씨는 “남자 간호사가 늘고 있지만 같은 병원에서도 교류가 적어 서로 어떠한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며 “남자 간호사의 다양한 역할을 알리고 동료들과 간호대 학생들에게는 정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책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수근씨(29·중환자간호팀 소아중환자파트)는 서른이 되기 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책 만들기에 참여했다. 어릴 때부터 아픈 곳이 많아 병원을 다니다 보니 병원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은 경우라고 이씨는 말했다. 유중윤씨(39·응급간호팀 응급진료센터)는 보험사 손해사정사로 일하다가 뒤늦게 간호사로 전업했다. 유씨는 “예전에도 남자 간호사들이 있었지만 수술방이나 집중치료실(ICU) 등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주로 배치됐다”며 “남자 간호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께 ‘우리 여기 있어요’라고 얘기하고 싶어 참여했다”고 말했다.

국내에는 1962년 남자 간호사가 처음 등장했다. 60여 년이 흐른 현재 남자 간호사 수는 3만명을 넘어섰다. ‘간호’와 ‘돌봄’이 여성의 일이라는 선입견이 무너지면서 남성들의 간호대 진학도 늘고 있다.

유세웅씨(30·장기이식센터 이식지원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누나의 영향으로 간호대에 갔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지켜본 간호사분들의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어요. 환자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보호자들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 목표에요.”

박준용씨(34·입원간호2팀 82병동파트)는 공대에 입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다시 간호대에 진학했다. 박씨는 “남자 간호사에 편견이 있었는데 우연히 병원에서 일하면서 간호사 일에 확신이 생겼다”며 “현재는 ‘섬세한 청일점’이 되기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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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를 출간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들. (왼쪽부터) 박상곤, 엄군태, 유세웅, 장명철, 이수근, 김진수, 유중윤, 박준용씨.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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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올해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남자 간호사는 3769명으로 전체 합격자 중 16.1%를 차지한다. 2004년(121명)과 비교하면 약 30배 가량 늘었다.

남자 간호사가 급증했지만 편견은 여전히 존재한다. 장명철씨(31·응급간호팀 응급진료센터)는 “(남자 간호사는) 뭘 해도 손이 거칠고 덜 꼼꼼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가운을 입고 병실에 가면 의사인 줄 안다. 아직도 남자는 의사라는 편견이 있다”고 했다.

여성 환자를 간호할 때 신체 노출이나 접촉이 불가피해 겪는 어려움도 있다. 유중윤씨는 “간호사에 남녀 구분이 없듯 간호사도 환자를 성별로 구분하진 않는데 여자 간호사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엄군태씨(32·비뇨기과 외래방광내시경실)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신입 시절에는 ‘왜 남자 간호사가 오냐’며 호통을 치는 환자에 주춤한 적도 있었죠. 성격상 말 하는걸 좋아해 까칠한 환자나 보호자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다가가니 나중에는 ‘그 남자 선생님 어디있냐’고 찾을 정도로 좋아해주세요.”

남자 간호사가 한명도 없던 신경외과와 류마티스 및 내분비내과 병동에 발령을 받은 박상곤씨(32·외래간호팀)는 ‘남자는 멀티플레이가 안된다’는 편견에 맞서야 했다. 박씨는 “1년이 지난 뒤 병동에 남자 간호사가 하나둘씩 들어오더니 지금은 여러명의 남자 간호사가 투박해 보이지만 그들만의 섬세한 간호로 각자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탈의실이나 화장실 등의 기반이 부족한 예도 있다. 이수근씨는 “여자 간호사들을 위한 탈의실은 층마다 있지만 남자 탈의실이 없는 병동도 있고 다른 층에 있어 멀리까지 가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남자간호사로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롤모델 부재’를 들었다. 업무 강도가 높아 여자 간호사도 정년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소수인 남자 간호사가 버티는건 더 힘든 일이다.

장명철씨는 “주위 간호사들 중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는걸 보고 ‘행복한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서로를 격려해주고 행복한 기운으로 냉랭한 분위기를 따뜻하게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김진수씨는 “새로운 부서의 선생님들을 모시고 남자 간호사의 다채로운 모습을 소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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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간호사가 되기로 했다>를 출간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남자 간호사들.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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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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