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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DB하이텍, 주주 반발에도 ‘팹리스’ 분사… ‘순수 파운드리’ 회사로 새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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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이 29일 경기도 부천 DB하이텍 본사에서 열린 제7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DB하이텍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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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과 팹리스(반도체 설계사업) 사업을 병행하던 DB하이텍이 일부 개인투자자들의 반발에도 비주력인 팹리스를 자회사로 떼어내고 순수 파운드리 기업으로 새출발을 한다.

29일 경기 부천시 DB하이텍 본사 대강당에서 열린 제7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회사의 팹리스 사업을 담당하는 브랜드사업부를 분사하는 안건이 가결됐다. 주총에 참석한 일부 주주들은 “결국 신설 회사를 상장해 DB하이텍 주가가 폭락하는 거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날 DB하이텍 주총에는 예년보다 많은 97명의 주주가 참석했다. 안건 심의에 앞서 여러 주주들이 물적분할 관련 발언을 요청하고 나서면서 진행이 수차례 멈췄다. 발언을 원하는 주주와 신속한 진행을 요구하는 주주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오전 9시 20분쯤 시작한 주총은 1시간 50여분간 이어져 11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의장을 맡은 최창식 DB하이텍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지난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전력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4년 연속 신장하는 결실을 얻었다”며 “올해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반도체 시장이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고, 회사 내부적으로는 가동률 하락과 가격 인하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어 실적 감소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파운드리 고객 이해 상충 이슈를 해소하고 거래선과 제품군을 확대해 나가는 한편, 브랜드는 전문 경영인 영입과 독자 경영 체제 구축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한다”며 “그 어느 때보다 주주 여러분의 믿음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최 부회장은 “분할 목적은 매우 순수하다”고 수차례 강조하며 사업 현황 및 물적분할 안건 관련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30분가량 이어갔다. 그는 “파운드리 사업을 분리하는 목적은 고객과 경쟁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두 사업이 서로의 구속을 받지 않고 거침없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분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브랜드사업부를 물적분할하면 DB하이텍의 100% 자회사가 돼 모기업의 지원으로 사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인적 분할은 회사의 자본력이 약해 적대적인 M&A(인수합병) 먹잇감이 되기 쉽다고 판단해 물적분할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DB하이텍은 지난해 7월 파운드리 사업부와 팹리스 사업부의 분사를 검토한다고 발표했으나 주주 반발에 부딪혀 그해 10월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데 대해 최 부회장은 “당시 주주 친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검토를 중단했고, 이후 분할 5년 내 상장 금지 조항 등 여러 안전 장치를 마련했다”고 했다.

분할로 신설한 회사가 상장하면 기존 회사의 기업가치가 떨어진다는 주주들의 우려에 DB하이텍은 분할 후 5년간 신설 법인 상장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물적분할 5년 경과 후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모회사 DB하이텍 주총을 통해 주주 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정관을 신설했다. 최 부회장은 “물적분할 회사는 100% 자회사로 남고, 상장 계획이 없기 때문에 물적분할 전후 기업 가치 변동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총에 참석한 일부 주주들은 물적분할 추진에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는 데다 분할 5년 후 상장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며 크게 반발했다. 한 주주는 “소액주주들은 대주주가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물적 분할을 한다고 의심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5년 내 상장 계획이 없다’고만 하면 대주주 배불리기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최 부회장은 “5년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이며, 5년 내에는 상장을 절대 하지 않겠다”며 “5년 후에 만약 하더라도 주주의 승인을 받아서 하겠다는 보호 장치가 충분히 마련돼 있다”고 답했다.

다른 주주는 “상장 여부가 중요한데, 회사 설명을 들으면 오히려 상장이 거의 확실해 보이고 향후 프리 IPO 방식으로 상장에 내몰리게 만드는 상황이 우려된다”며 “공시에는 5년 내에 상장을 하지 않겠다고 명시하고 보도자료에는 이 사실을 누락해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에 최 부회장은 “프리 IPO는 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의 경우에 대해서도 주주 안전 장치를 만들어놨다”고 답했다.

또 “팹리스를 100% 자회사로 분할하면서 고객사한테 어떻게 두 회사가 다른 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간다”며 “어떻게 이해 관계 상충 문제가 해소된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밖에 “평균 승려 기간이 98일인데 왜 DB하이텍은 분할을 22일만에 날치기로 시도하느냐” “수년간 회사를 믿고 투자하고 있는데 주주와 충분한 소통을 하지 않고 있다” 등의 의견도 제기됐다. 사업부 분할 안건이 가결 요건을 충족했다는 결과에도 “신뢰가 안 간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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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DB하이텍 정기 주총 이후 물적분할에 반대한 소액주주들이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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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하이텍은 물적분할을 통해 파운드리에만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이해 충돌 때문에 범용 제품인 LCD 중심 디스플레이구동칩(DDI)에 국한했던 사업 영역을 고부가가치 OLED 구동칩 등으로 확장할 수 있고, 고성능 반도체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분사하는 브랜드사업부는 팹리스 전문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신설 법인 사명은 DB팹리스(가칭)이며, 분할 기준일은 오는 5월 2일이다. 최 부회장은 “이미 전문 경영인을 영입했고, 최근 정부에서도 팹리스 친화 정책을 많이 내고 있어 여기에 동참해 독자 경영 체계를 구축해 성장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앞서 DB하이텍은 황규철 사장을 브랜드사업부 최고경영자(CEO)로 내정하고, 파운드리사업부와 브랜드사업부 각자대표체제를 출범했다.

DB하이텍은 파운드리와 팹리스의 동반 성장으로 향후 파운드리 4조원, 브랜드 2조원 등 기업가치를 총 6조원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최지희 기자(h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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