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병원 찾아 2시간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 지방의료체계 붕괴 위협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건물서 추락한 10대, 구급차에 실려 헤매다 심정지

전문의 부재·응급환자 과밀 등 네 곳서 입원 거절

2021년 119 출동 1시간 내 병원 못 찾은 환자 약 20만명

의료진 부족에 업무 강도 높아져 퇴사율도 높아지는 악순환

복지부, 응급의료 개선 계획 내놨지만 의료진 충원 계획 없어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보다 산모가 더 많이 죽는다는 기사, 사실입니까. 아니죠?”

메디컬 드라마 라이프에서 대형 대학병원 총괄사장으로 취임한 구승효(조승우 분)는 병원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응급의학과를 포함한 필수과 의사를 지방 분원으로 내려보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근무를 선호하는 전문의 집단 저항에 부딪힌다. 이에 구승효는 산모 사망 관련 통계를 앞세워 의료진을 설득한다.

세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드라마 속 대사지만 실제로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으면 중국에서보다 산모가 더 많이 죽는다는 통계가 있다. 2007~2008년도 기준 강원도는 신생아 10만명 당 산모 사망이 34.6명으로 전국 평균 2배가 넘었는데, 이는 40명 수준인 중국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특히 이런 강원도의 수치는 같은 시기 서울(10.8명)의 3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나 수도권에 편중된 의료시스템과 지방의 부실한 의료체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당시 강원도 내 11곳의 지방자치단체가 한 시간 거리에 분만실이 없었다. 최근 통계로는 2019년 전국 평균 모성사망비는 9.9명,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5.6명인데 비해 강원도 모성사망비는 24.1명을 기록하고 있다.

수도권과 지방의 이런 의료 불균형은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낸다. 최근에도 대구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청소년이 병원의 잇따른 거절로 구급차에 실려 헤매다 심정지로 사망했다.

29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오후 2시15분쯤 대구 북구 대현동의 한 골목에서 한 청소년이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 4층 높이 건물에서 떨어져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를 다친 이 청소년은 사고 당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출동한 구급대는 오후 2시34분쯤 대구 동구 한 종합병원으로 환자를 옮겼지만, 전문의 부재를 이유로 입원을 거절당했다. 구급대는 20분 후 중구 한 상급종합병원에 다시 달려갔지만 이곳에서도 응급환자가 많아 수용이 불가하다는 답변에 또 다른 병원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후 그를 태운 구급차는 병원 두 곳을 더 전전했지만 치료를 받지 못했다. 소방당국은 수용 가능한 병원이 있는지 전화도 돌렸지만 각 병원 사정으로 모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CPR) 등을 실시하며 심정지 상태에서 다시 대구 한 종합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이 학생은 숨을 거둔 뒤였다.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는 드문 경우가 아니다. 119구급차를 타고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거리를 표류하는 것을 ‘응급실 뺑뺑이’라고 하는데, 2021년 한 해 119 출동 이후 1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 뺑뺑이 환자는 19만6561명이었고 지난해 119구급차가 병원의 거부 등으로 환자를 재이송한 사례는 6840건에 달한다.

특히 지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은 전공의 등 의료진 부족이다. ‘2017~2022년 수련병원별 전공의 정원 및 충원 현황’에 따르면 경북대병원은 소아청소년과(4명 모집에 0명 지원)와 응급의학과(3명 모집에 0명 지원)의 충원율이 0%를 기록했다. 2명이 정원인 흉부외과는 1명만 충원(50%)했고, 3명이 정원인 외과는 2명만 충원(66.7%)했다.

칠곡 경북대병원은 3명이 의사 정원인 산부인과의 경우 1명만 충원(33.3%)했고, 2명이 정원인 응급의학과는 1명만 충원(50%)했다. 더 큰 문제는 필수의료 과목 전공의 충원율 부족 현상이 환자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아청소년과 기준으로 살펴보면 경북대병원은 2017년 1분기 진료 대기일수가 10일이었는데 반해 지난해 3분기에는 16일로 늘어났다.

비단 대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위원회의 국정감사 당시 자료에 따르면 제주대병원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전남대병원은 정원 16명 중 10명, 전북대병원은 정원 15명 중 10명의 전공의가 없었다.

의사 부족 현상으로 인한 지방대 병원의 높은 업무 강도 등으로 퇴사율도 높다. 충북대병원은 2022년 9월 기준 35명의 의사가 사직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며 닥터 헬기의 활용과 중증 응급의료센터의 확대를 골자로 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의료진 충원에 대한 계획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서 병원의 응급 의사 당직을 함께 묶어 운영하는 병원 간 ‘순환 당직제’의 경우 중증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료 인력들의 휴가와 휴식에 대한 선택권을 제한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의료 인력들의 기피 현상 심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