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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숙제 해오면 과자 준다고 했는데...” 나이지리아 4남매 빈소 울음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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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젓한 첫째, 천국에서도 동생들 잘 돌볼 것”

안산시 지역사회 장례 준비에 힘 모아

조선일보

29일 경기 안산시 군자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지난 27일 새벽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발생한 빌라 화재로 숨진 나이지리아 4남매의 영정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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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군자장례식장 3층. 지난 27일 새벽 인근 선부동의 한 빌라를 덮친 화마에 목숨을 잃은 나이지리아 국적 4남매의 빈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빈소에는 장난스런 표정의 네 아이 아나스타샤(11), 갓슨(7), 케네디(6), 미셸(4)의 영정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사진 앞에는 국화와 함께 조문객들이 두고 간 과자, 음료수도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과 인연이 있는 지인들은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첫째딸 아나스타샤가 의젓하고 책임감있는 아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의 영어 교사를 했던 이지니(55)씨는 “너무 착해서 동생들이 아프면 학교도 오지 않고 집에서 동생들을 간호하는 의젓한 아이였다”면서 “천국에서도 세 동생을 잘 보살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씨는 “네가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 사 왔어”라며 셋째 케네디의 이름을 불렀다. 이씨는 영정사진 앞에 과자를 놓으며 “케네디에게 숙제를 해오면 과자를 준다고 했는데, 숙제를 해오지 않아 주지 않았다”며 “그런데 이제는 주지 못하게 됐다. 그때 그냥 줄 걸 평생 한이 될 것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아이들을 모르는 시민들도 안타까운 소식에 빈소를 찾았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김정숙(67)씨는 오후 4시쯤 빈소를 찾아 카스테라 두 봉지를 놓았다. 김씨는 “일면식도 없지만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파 장례식장을 수소문해 2시간 쯤 지하철을 타고 왔다”고 했다. 일본에서 산 적이 있다는 김씨는 “나도 타지 생활을 했기 때문에 머나먼 한국에서 아이 넷을 한 번에 잃은 나이지리아인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며 울먹였다.

4남매의 아버지 A(55)씨와 어머니 B(41)씨는 이날 오후 5시 20분쯤 빈소로 나왔다.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검정색 정장을 입은 A씨는 화상을 입은 두 발, 오른손 손등과 팔목에 붕대를 감고 휠체어를 탄 채 빈소에 들어섰다. 허리를 다친 B씨는 허리에 복대를 감고 검은색 상복을 걸친 채 양쪽에서 부축해주는 지인에 의지하며 겨우 걸음을 뗐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 영정사진 앞에 선 부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A씨는 이마를 짚고 연신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흐르는 눈물을 흰 손수건으로 닦아내던 B씨는 아이들의 학교 교사를 보자 “최선을 다했는데…”라며 오열했다. B씨의 손을 꼭 부여잡은 한 교사는 “우리가 함께 할테니 부디 굳건하게 버텨야 한다”며 위로했다. 지인들이 병원 치료부터 하라고 했지만 부부는 상주로 빈소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까스로 생명을 건진 A씨 부부와 막내딸(2)을 돕기 위한 따뜻한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안산시 관계자는 “남은 가족을 돕고 싶다는 후원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 모금 절차를 준비했다”며 “현재 임시 거처를 마련해뒀고, 긴급 생계비 지원은 물론 치료비 등 앞으로 발생하는 비용도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A씨 부부의 막내딸은 임시 아동보호시설에서 돌봄을 받고 있다.

아이들이 다녔던 대안학교의 최혁수 교장은 “현재 학교 차원에서 모금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다니던 교회에서도 특별 헌금을 모아 전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국경없는 마을’ 박천응 대표와 안산 세계사랑교회 정정자 목사 등도 유족과 협의해 빈소를 마련했다. 군자장례식장도 빈소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4남매의 장례는 31일 치러질 예정이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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