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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동서남북] 야당 눈에만 보이지 않는 北 전술핵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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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지난 27일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고 있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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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지도부 회의 발언, 논평, 브리핑 등을 모아놓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한번 세봤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비판·비난이 130건을 넘는다.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점도 있지만, 상당수는 ‘굴욕’ ‘매국’ ‘백기 투항’ ‘이완용’ 계열이다. 더 살벌하고 더 자극적인 표현 찾기 시합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다. 반면 이 기간 8차례에 걸친 북한의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핵어뢰 도발에 대해 민주당이 비난한 것은 대변인 논평 3차례가 전부다. 이재명 대표 등 지도부의 언급은 없다.

최근 북한의 도발은 ICBM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한민국을 겨냥한 것이다. 북은 소형화한 전술핵탄두를 대남 타격용 미사일 8종에 장착해 쏘겠다고 했다. 방사능 쓰나미로 항만을 초토화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대놓고 “언제 어디서든 핵무기 사용”을 위협했다.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 말만 들으면 이런 북 핵·미사일 위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이 쳐들어와 독도는 물론 나라 전체를 뺏기는 신(新)식민지 시대가 임박한 듯하다.

정부 조치와 일본의 대응이 국민들 눈높이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지금 야당이 하는 것은 건설적 비판이 아니라 저주·말폭탄·선동이다. 지소미아를 복원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북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함인데 야당 대표는 “한·미·일 훈련을 핑계로 자위대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힐 수 있다”고 버럭했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일본 시민들의 박수를 받자 “얼마나 많이 내줬으면 그 나라 국민들이 박수를 치겠나. 어느 나라 대통령인가”라고 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5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13번 받았는데 그때는 얼마나 퍼줘서 그랬나. 우리 대북 정찰·감시 능력을 허물고 ‘핵 폐기 시늉’만으로 미국의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해줘서 그랬나.

지난 5년간 한·일 과거사 숙제는 민주당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윤석열 해법’처럼 욕먹는 방식이 아니면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안다. 결국 이들은 두 손 들고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무책임을 택했다. 한·일 관계는 최악의 수렁에 빠졌고, 고령 피해자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다. 야당은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지, 정권 지지율 끌어내릴 호재가 생겼다고 신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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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강행 규탄 및 일본의 사죄배상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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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문제는 물론 중요하고 정부는 계속 노력해야 한다. 다만 국가 생존과 미래에 이게 전부는 아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북핵 위협은 초읽기에 들어갔고, 세계 질서는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전략적인 합종연횡이 필요한데, 여기서 일본은 거의 빠지지 않는다.

북핵에 대응하려는 한미 동맹 강화는 결국 한·미·일 협력으로 이어진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같은 강대국 보호무역주의 틈새를 파고들 때 한·일·대만 등이 연대를 이루면 목소리가 커진다. 날로 커지는 중국의 갑질에 혼자 맞서기보다 미·일 주도의 쿼드 등에 합류하는 게 유리하다. 유럽·나토와 협력하려고 해도 이미 G7 같은 틀에 일본이 있다. 내키든 내키지 않든 이게 냉혹한 현실이다. 신냉전 파고에 대비해 방파제를 쌓아야 할 시간을 죽창가 부르다 허비한 게 지난 몇 년이었다.

반일 선동을 비판하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고 눈을 부라리는 사람들이 있다. 틀리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힌 역사는 일본보다 중국이 훨씬 길고, 근래에 우리 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쪽은 북한이다. 정치적 잇속에 따라 역사를 취사선택해 기억하고 이용하는 집단에도 미래는 있는가.

[임민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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