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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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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에 기소된 '좀비 사건'…머그샷 찍는 첫 美대통령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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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당시 성추문을 막기 위해 돈을 건넨 혐의와 관련해 형사기소가 결정됐다. 미국 건국 이래 전·현직 대통령이 형사기소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트럼프와 공화당 측은 ‘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하는 반면 민주당은 ‘정당한 절차’라며 맞서고 있어 2024년 대선의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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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를 기소한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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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대배심은 2016년 대선 당시 포르노 배우에게 성추문 입막음을 위한 돈을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 기소를 결정했다. 트럼프 측이 가족기업인 트럼프그룹의 회삿돈으로 13만 달러(약 1억 6000만원)를 지급하며 기업 문서에는 '법률 자문 비용'이라고 기재해 문서 조작을 했다는 혐의다.

CNN에 따르면 문서 조작 자체는 경범죄지만 선거법 위반 등 다른 범죄를 감추기 위해 조작했다면 중범죄가 될 수 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자금을 쓰며 문서를 조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단 뜻이다. 이 외에도 30여 개 혐의가 더 있다고 CNN은 전했다. 대배심은 유무죄 여부를 결정하는 소배심과 달리 기소 여부만을 결정한다. 일반 시민 23명으로 구성되는 맨해튼 대배심에서 과반에 의한 기소 결정이 났다는 것은 최소 12명이 찬성했단 뜻이다.

이번 기소의 뿌리는 트럼프가 재임 중이던 2018년 ‘러시아 스캔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관련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수사를 진행하던 중, 트럼프의 최측근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플리바겐(plea bargain·사전형량조정제도)을 통해 각종 의혹을 실토했다. ‘성추문 입막음 사건’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지시로 자신이 돈을 건넸다고 밝혔다. 2006년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던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대선을 앞두고 이를 폭로하려 하자 트럼프 측에서 돈을 줬단 의혹이 언론을 통해 불거진 참이었다.

뉴욕 맨해튼 지방검찰(이하 맨해튼지검)이 나선 것이 이때다. 이들은 특검 수사와는 별도로, 회삿돈을 쓰며 문서를 조작한 일이 뉴욕주 법을 어겼다는 데 주목했다. 2019년 3월 러시아 스캔들 특검은 트럼프 선거캠프의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지만, 맨해튼지검의 ‘성추문 입막음’ 조사는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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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트럼프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폭로한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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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는 고구마 줄기 캐듯 이어져 트럼프그룹의 비리 등으로 그 범위가 점점 넓어졌다. 2019년 8월, 맨해튼지검은 트럼프그룹에 납세자료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트럼프 측이 거부하며 소송이 오가던 중 ‘트럼프의 회계사’로 불리던 최측근 앨런 와이셀버그 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협조하며 수사는 급물살을 탄다.

2022년 12월, 결국 트럼프그룹은 뉴욕주 지방법원에서 탈세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맨해튼지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사건의 ‘뿌리’인 ‘성추문 입막음’으로 돌아왔고 지난 1월 말 대배심을 구성해 두 달 만에 트럼프 기소를 끌어냈다. 첫 수사로부터 약 5년 만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관련 수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길 반복해 ‘좀비 사건’이란 별칭이 붙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미 정계와 언론은 트럼프 기소가 2024년 대선에 큰 파장을 부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은 “대선 개입 시도로 미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줬다”며 “신성한 사법제도를 무기화하지 마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은 기소 결정이 정당한 법적 절차란 반응이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트럼프는 모든 미국인과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역사상 최대 수준의 정치 박해이자 선거 개입”이라며 정면승부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앞서 그는 지난 18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제적으로 '체포설'을 언급하며 “저항하라”는 메시지로 지지자를 규합하기도 했다. NYT는 “공화당의 반(反)트럼프 진영까지 분노하며 결집하고 있다”며 공화당 경선은 트럼프에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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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국 중도층의 표심을 잡아야 하는 본선에서는 트럼프가 불리할 것이란 관측이 대다수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민주당은 트럼프가 중도층 지지를 완전히 잃었다고 보고 있으며, 공화당원들도 트럼프가 본선에서는 문제가 될 것이라 본다”고 분석했다. 최근 대선 지지율 조사(퀴니피액대)에 따르면 트럼프(46%)는 조 바이든 대통령(48%)과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 2%포인트 뒤지고 있다.

트럼프는 내달 4일께 뉴욕주 지방법원에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니얼스와의 성관계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그는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CNN은 짚었다. 검찰청에서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사진)은 찍어야 하지만, 전직 대통령이란 신분 때문에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설 가능성은 적다.

다만 재판부의 공소 기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부 조작과 선거법 위반을 연관 지은 선례가 없고, 핵심 증언을 한 코언이 복역까지 한 탓에 배심원단에 신뢰를 사지 못할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 법에 따르면 트럼프가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해도 대선 출마는 할 수 있다. 또 초범인 이유로 징역형을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외신의 보도다.

트럼프는 기밀문서 유출 혐의와 1ㆍ6 의회 폭동 사태 선동 의혹에 대한 특검 수사도 받고 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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