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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면 결정 사흘만에 철회했지만…신뢰 땅바닥 떨어진 KFA [ST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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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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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대한축구협회(KFA)의 신뢰도가 땅바닥으로 추락했다.

KFA는 "31일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지난 28일 의결했던 징계 축구인 사면 조치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같은 날 밝혔다.

앞서 KFA는 지난 28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우루과이이와의 평가전(1-2 한국 패)을 불과 약 1시간 앞둔 오후 7시경 "징계 중인 축구인 100명에 대해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면 대상자 명단은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고 있는 전현직 선수를 비롯해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으로 구성돼 있었으며 지난 2011년 프로축구 승부조작으로 제명된 당시 선수 48명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승부조작은 프로스포츠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중범죄다. 물론 과거 다른 프로 종목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존재했었지만, 연루된 이들을 용서한 종목은 전무했다.

그러나 KFA는 유일하게 "지난해 달성한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과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자축하고 축구계의 화합과 새 출발을 위해 사면을 건의한 일선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과거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를 이들을 다시 받아들이려 했다. 과정 또한 전 국민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던 우루과이전을 불과 1시간 앞두고 발표해 '날치기'라는 비판도 받아야 했다.

발표 직후 KFA의 행정력을 의심하게 하는 일도 발생했다. KFA의 발표 이후 대한체육회가 "징계 기록을 삭제하는 규정이 없어 사면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 게다가 한국프로축구연맹도 "우리는 사면하지 않았다. 현재 사면할 계획도 없다"고 잘라 말하며 KFA는 대한체육회의 규정을 모르고 축구계의 뜻도 취합하지 않은 채 결정권을 행사하는 '우스운 단체'가 됐다.

반발 여론도 뜨거웠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응원단 붉은 악마는 SNS를 통해 "사면을 강행할 시 향후 모든 A매치를 보이콧하겠다"라고까지 했으며, K리그 각 팀 서포터즈들도 앞다퉈 반대 성명을 쏟아냈다. 축구회관 앞에서는 축구 팬의 1인 시위가 이어질 정도였다.

29일 저녁 홈페이지를 통해 보다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은 이후에도 비판 여론이 끊이지 않자 KFA는 결국 이날 사면 결정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프로축구 승부조작 가담자 48명을 포함해 총 100명에 달하는 징계 축구인의 사면은 없던 일이 됐다.

그러나 이 과정 또한 매끄럽지 않았다. 별다른 설명 없이 '달랑' 정몽규 회장의 입장문 한 장을 통해 무마하려 했다. 심지어 입장문에서도 "'10년 이상 오랜 세월동안 그들이 충분히 반성을 했고, 죄값을 어느 정도는 치렀으니 이제는 관용을 베푸는 게 어떻겠느냐'는 일선 축구인들의 건의를 계속 받았다.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최근에는 해당 선수들만 평생 징계 상태에 묶여 있도록 하기보다는 이제는 예방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계몽과 교육을 충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됐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동떨어진 KFA의 도덕성과 현실감각을 짐작케 했다.

지난해 12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전 감독과 태극전사들은 똘똘 뭉쳐 카타르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여파로 모처럼 축구계에 '훈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KFA는 잘못된 선택으로 따뜻했던 분위기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

다행히 승부조작범들이 사면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팬들은 이번 일을 통해 뼈아픈 점을 하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KFA라는 단체가 '한국 축구의 발전'이 아닌 여전히 '축구인들'만을 감싸는 집단이라는 사실이었다.

[스포츠투데이 이한주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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