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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나는 학폭 가해자··· 사죄하러 변호사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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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학생서 청소년 지킴이 된 김광민 변호사

특수 폭행·절도로 강제 전학 당해

지금은 가해 학생 ·소년범 변호 주력

처벌 위주 대응은 한풀이에 불과

학교 역할·담임 재량권 인정 통해

진심 어린 사과 끌어낼 수 있어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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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가해 청소년’이었던 학생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특수 폭행으로 출석 정지(정학), 특수 절도로 강제 전학 조치를 받았다. 10년 후 그는 변호사가 됐다. 그리고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청소년 지원 업무에 나섰다. 문제 학생들의 부모는 ‘너도 저렇게 될 수 있어’ 하는 사례로 지목하기도 했다. “내가 가해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학교 폭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요. 나 때문에 피해를 받았던 친구들에게 이렇게라도 사죄하고 싶었습니다.” 사람사이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를 맡고 있는 김광민(43·사진) 변호사 이야기다.

김 변호사는 자신 때문에 고통 받은 친구들에게 가장 확실하게 용서를 비는 방식은 단순히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 학생이 나오지 않고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학교 폭력(학폭) 가해 학생 또는 소년 범죄자들을 주로 변호하는 것도 이들이 더 나쁜 길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피해자의 고통을 보고 안타까워 하며 가해자들에게 모든 비난의 화살을 퍼붓는데 익숙한 탓이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학폭에 대응하는 방법은 피해자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라며 “피해 회복도 가해자에게 센 처분을 내리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개사회에서 통할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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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은 강해졌지만 학폭이 줄어들기는커녕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오히려 생활기록부에 학폭 가해자라는 빨간 줄을 피하기 위해 용서를 구하기 보다 피해자를 상대로 소송 등 맞대응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학 진학에 불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정순신 사태’가 대표적이다. 김 변호사는 “학폭 가해자가 돼 생기부에 난리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해 가해자 부모들은 소송을 남발하게 된다”며 “이것이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폭력의 형태도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물리적 폭력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뤄지자 부모의 직업과 같은 형태로 또래의 권력 관계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게 그의 평가다. 김 변호사는 “학교 폭력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정한 것만 집중적으로 막고 나서니 부모가 판·검사라는 것을 내세우는 ‘변태적’ 학폭이 판을 치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권력 관계로 자리 잡으면서 부끄럽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점”이라고 한탄했다.

피해자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동안 가해 학생들은 철저히 악마로만 존재한다. 왜 폭력을 행사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가해가 일어나는 이유를 모르니 폭력도 사라질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처벌은 강해졌는데 왜 폭력은 끊임없이 계속되는지 반문한다. 그는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학폭을 근원적으로 없앨 수 있는가 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며 “가해자들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 청소년을 위한 변론에 힘을 쏟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학폭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학교의 배제, 교육의 부재를 꼽는다. 실제로 각급 학교에서 운영하는 학폭 전담 기구의 구성원 중 절반은 학부모가 차지하고 교감, 학생부장, 지역사회 전문가, 경찰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학생을 가장 잘 아는 담임은 참석조차 못한다. 학교 폭력이 정치화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배제한 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며 “여기에 정치인들이 가세하면서 학폭에 대응하는 방식이 엇나가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학폭이 여전히 판치고 피해자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고통 받고 있는 현 시스템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반문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간단하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줌으로써 피해자들에게 정서적 회복의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처벌만 중시해서는 절대 이뤄질 수 없는 목표다. 학교로의 회귀를 강조하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학교 폭력에 대해 학교의 역할과 담임 선생님의 재량권을 인정하고 양측의 화해를 유도할 수 있도록 과도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해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친구들이 얼마나 슬퍼하고 고통스러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사진=송영규 선임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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