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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월 37만원 내고 교통딱지 맘대로 끊으세요" 中 황당 월정액 [글로벌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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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 충성 맹세한 지방 리더는 빚 탕감해줄 수도"

중앙일보

중국 쓰촨성 러산시에 있는 세계 최대 석조 불상인 '러산대불'이 최근 경매에 나왔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문화재 러산대불도 지방 정부의 재정난 앞에선 매각 대상물일 뿐이다.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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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국 쓰촨(四川)성 러산(樂山)시는 색다른 문화재 경매에 나섰다. 71m 높이의 세계 최대 석조 불상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러산대불'의 30년 운영권을 17억 위안(약 3213억원)에 내놨다.

#. 중국 허난(河南) 성에선 '월정액 교통 딱지'가 화제다. 현지 교통 당국이 과태료 부과에 혈안이 된 나머지 운전자들에게 "월 2000위안(약 37만원)짜리 벌금 패키지를 미리 사서 앞으로 낼 범칙금에 대비하라"고 권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중국 지방 곳곳에서 이와 비슷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중국 지방 정부들이 쌓여만 가는 부채에 시달린 나머지 창의적인 '궁여지책'을 동원해 돈벌이에 나선 것이다.

이들이 '마른 수건 짜는' 심정으로 돈벌이에 매달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를 겪으며 재정난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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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경제성장이 둔화한 가운데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막대한 돈을 쓴 탓에 지방 재정에 큰 압박이 가해졌다"는 게 서방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로 중국 31개 성·시·자치구가 지난해 코로나 비용으로 쓴 돈만 3520억 위안(약 67조원)이다.

류쿤(劉昆) 중국 재정부장(장관)도 지난달 초 국무원이 주최한 주요 부처와의 대화에서 지방 정부의 재정난을 공식 인정했다. 지방 정부 적자는 지난해 11조6221억 위안(약 2198조원)을 기록했다. 2010년보다 3.5배 커졌다.



톈진 소득 대비 부채 3배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중국 31개 성·시·자치구 중 17곳 이상이 부채 한도를 초과했다. 이들 지역은 벌이보다 씀씀이가 컸다는 뜻이다.

대규모 항만·기간시설 사업을 벌였던 톈진(天津)직할시의 경우 소득 대비 부채가 3배나 됐다. 윈난(雲南)성·구이저우(貴州)성 등의 부채 비율도 200%를 넘었다.

지방 정부들이 이같은 '빚덩이'를 안게 된 또 다른 배경은 부동산 열풍이다. 일례로 톈진시는 대규모 부채를 바탕으로 한 부동산 폭등을 "경제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동산 침체에 재정난이 가중되면서 현재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가 높은 대표적인 도시 신세다.

빚을 못 갚는 지방 정부들 때문에 지역 금융기관도 휘청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구이저우·윈난성·네이멍구 등지의 소규모 지방 은행들은 파산 직전"이라며 "경기 둔화가 계속되면서 대규모 연체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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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성화의 일환으로 야심차게 추진됐던 톈진 117 타워. 2008년 첫 삽을 떴지만 수 년간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고 지방 정부 재정난이 심화하며 15년째 완성되지 못한 채 흉물처럼 남아 있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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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지방에선 여러 문제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허난성 일부 지역에선 재정 부족으로 버스 운행이 중단됐고, 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시 교통공사는 수 개월간 밀린 직원 급여가 9000만 위안(약 169억원)에 달한다. 다롄(大連)·우한(武漢)에선 의료비 지원이 줄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최악의 경우 '제2의 허강(鶴崗)시'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탄의 고장'인 헤이룽장(黑龍江)성 허강시는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중국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 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석탄에 의존해온 지역 경제가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 인구 유출, 세수 감소 등 악순환이 이어진 결과다. 허강시는 공무원 채용 시험을 중단할 정도로 쪼들리고 있다. 집값마저 급락해 "허강시 부동산은 배춧값만 못하다"는 말까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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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강시는 중국 최초로 재정난을 못 이기고 지난해 모라토리엄(채무 불이행)을 선언했다.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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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지도자 '살생부' 설도



중앙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달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도 지방 부채 문제가 화두로 올랐다.

중국 금융 당국은 올해 양회의 8대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지방 부채 해결을 내걸며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지방 정부의 부채 상환을 유예해 이자 부담을 줄이고 신규 부채를 억제하겠다"는 게 대책의 골자다.

또 무리한 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지방 정부가 경제성장 목표치를 낮추는 것도 허용할 방침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톈진 등 16곳의 지방 정부가 올해 지역내총생산(GRDP) 목표치를 중국 국내총생산(GDP) 목표인 5% 이하로 잡았다"며 "중앙 정부가 일부 재정을 지방에 이전하는 등 추가 대응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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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제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부채보다 '숨겨진 부채'가 더 많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지방 정부의 비정상적인 자금 조달 경로가 문제로 지목됐다. 그간 지방 정부들이 'LGFV'(지방 정부융자기구)로 불리는 특수법인을 설립해 해당 법인이나 건설사에 부채를 떠넘기는 방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지적이다.

양예웨이(楊業偉) 궈성(國盛)증권 연구원은 "숨겨진 부채가 공식 부채의 2배 이상일 수 있다"며 "실제 부채 규모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또 LGFV 채권의 절반 이상은 위험이 높아 등급조차 받지 못하는 무등급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건전성이 악화했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같은 무등급 비율은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상태다.

백진규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지방 건전성이 악화하면 기업의 개별 신용도도 악화한다"며 "이는 국유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중국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방 채무 사태가 중국 전체의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중국 지도부가 이번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는 색다른 시각도 있다. 3연임으로 1인자 자리를 굳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방 채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이란 관측이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시 주석 입장에서 문제가 있는 지방 당서기와 부패 세력을 제거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며 "시 주석에게 충성을 맹세한 지방 지도자만 선별해 금융 수혈을 하거나 빚을 탕감해 주고, 나머지는 부패 세력으로 규정해 제거하는 이른바 '살생부'로 지방 부채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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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국제부 기자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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