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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인터뷰] ‘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 “사건 아닌 ‘경찰’에 집중…값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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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투데이

웨이브 ‘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가 OTT와의 협업 소회를 밝혔다. 사진|웨이브


“예전에 ‘궁금한이야기 Y’를 담당할 때, 원주에서 취재하다 남의 집 담벼락을 넘다 경찰에 검거된 적이 있었어요. 장애인분들을 구출하려다 제 본분을 망각하고 담을 넘다 그렇게 된 거였는데. 이번에 강릉경찰서에 섭외차 기획안을 들고 갔는데 낯익은 분이 계시더라고요. 왜 낯이 익지 생각했는데 대번 ‘예전에 나한테 조사 받았잖아’ 하시더라고요. 알고보니 당시 원주경찰서 형사팀에 계시던 분이 강릉경찰서 형사과장이 되어계신 거였죠.”

현직 PD의, 어쩌면 훈장 같은 흑역사가 세월이 지나 아주 특별하고 유의미한 콘텐츠로 빛을 봤다. 최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국가수사본부’ 연출자 배정훈 PD가 제작 과정에서 다시 만난 소중한 인연도 그 중 하나다.

‘국가수사본부’는 사건 발생부터 검거까지, 세상에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100% 리얼 수사 다큐멘터리다. 일선에서 뛰는 현장의 기록을 담은 국가수사본부의 24시간을 치열하게 그려내는 ‘리얼 탐사 추적극’으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을 연출해온 배정훈 PD가 웨이브와 손잡고 OTT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연출작이다.

“1년 전이에요. 국가수사본부 건물에 처음 갔던 게 2022년 3월이었죠. 꼬박 1년 걸린 프로젝트입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 만난 배정훈 PD는 ‘국가수사본부’의 기획부터 제작 과정과 다수 회차가 공개된 현재까지 느끼는 다양한 소회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른바 ‘사건물’ 전문 PD였던, 특히나 수사기관의 문제점을 아프게 꼬집어 온 그가 ‘국가수사본부’를 기획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배PD는 “10년 가까이 ‘궁금한 이야기 Y’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제작하면서 현장에서 취재하다 보면 경찰관들이 실수나 잘못 하는 경우도 많고, 우리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취재하긴 했지만 사실 훨씬 더 많이 목격한 것은 현장에서 사건을 잘 해결하시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이 값진 이야기는 왜 조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이번에는 그동안 잘 보지 못했던 결들을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 시사교양국에서 만드는 다큐멘터리와 OTT 플랫폼과 함께 한 제작 과정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마감기한 유무’다.

“지상파는 보통 방송의 마감 시점을 잡아놓고 준비를 하죠. 이 프로그램의 경우 웨이브와 미팅 한 것은 작년 5월 쯤이었는데, 방송을 언제 한다는 기한은 없었어요. 이야기가 완성되는 게 곧 마감기한이 된다는 거였죠. 시간이 그만큼 오래 걸린다는 건 제작비가 상승한다는 의미인데, 거기에 대한 지원을 충분히 받으면서 준비했어요. 또 우리 콘텐츠는 질문을 남기고 끝내지 않고 사건의 전말을 보여주는데, 충분한 제작기간을 갖고 제작할 수 있고 콘텐츠에 물읍표를 남기지 않고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어요.”

촬영 분량이 풍성하고 고민이 많이 담길수록 결과물의 퀄리티가 좋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상, 제작자로서의 만족도 또한 배가됐다. 정식 오픈 전, 프로그램 홍보 차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제작한 프로그램 중 최고의 퀄리티라고 자부했던 배PD에게 그와 같은 판단의 근거(!)를 묻자 “돌려 들으니 부끄러운 워딩”이라면서도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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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가 타 프로그램과 다른 시선으로 접근한 촬영에 대해 떠올렸다. 사진|웨이브


“실제로 사석에서 동료들에게 그렇게 얘기 했었어요. 촬영을 하면서, 저도 이렇게 생생한 현장에서 촬영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알’의 경우, 수년 뒤 탐문을 해서 관계자를 만나는 식이라 실제 현장을 만날 순 없고 자료를 통해 현장을 이해하는 게 다였는데, 이번엔 실제 현장을 촬영할 수 있었죠. 현장에서의 감식반의 고민이나 그런 게 다 담겼어요. 그런 생생함도 처음이었고, 충분한 제작기간을 갖고 후반작업 하면서 제작할 수 있었어요. 제작진의 고민이 그만큼 많이 녹아있는 콘텐츠죠. 또 장비도 SBS가 갖고 있지 않은 장비 두 대를 구입해, 영화 장비를 사용해서 4K로 촬영했기 때문에 영화의 질감을 느끼실 수 있을 거에요.”

아이템에 따라 참혹한 사건 현장을 다루고 있지만 ‘레귤러 컨텐츠 생산자’가 아닌 만큼, 고민은 기존의 타 프로그램 제작 과정보다 치열했다. 그리고 치열했던 토론의 결과는 ‘국가수사본부’에 그대로 담겼다.

“우리의 카메라가 들어가는 곳은 상당히 참혹한 현장들입니다. 단지 그 현장의 상황을 보면, 참혹함은 존재해요. 그 생생하게 촬영된, 시신의 화면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과거의 관행대로 생각한다면 블러 처리를 진하게 할텐데, 그런 관습적인 방식 말고 화면 처리를 다르게 해보자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1, 2회를 예로 들자면 붉은색을 뺀 대신, 그림은 생생해요. 참혹한 현장과 장면을 어떻게 보여드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있는 게 ‘국가수사본부’입니다.”

‘국가수사본부’는 총 7개 제작팀이 서울, 부산, 광주, 강릉, 원주, 순천, 여수 등 전국을 돌며 동시다발적으로 제작한 결과물이다. 제작진은 전국의 경찰서에 머무르면서 형사들의 루틴을 따라가며 그때그때 발생하는 일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제작진이 애초에 염두했던 지역 선정 기준은 없었고, “최대한 많은 지역의 경찰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지난해 3월부터 전국 방방곡곡 경찰서를 발품 팔고 다녔는데, 결국 관건은 이들이 머문 시기 관내에 벌어진 ‘사건’ 유무였다.

“사건의 경중을 두고 접근한 건 아니지만, 일단 강력사건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강력사건이 많이 난다고 소문난 곳에 가보기도 했는데, 우리가 가면 사건이 안 나는 겁니다. 그런 기묘한 경험을 여러 번 했고, 촬영을 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마지막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했죠. 실제로 한 경찰서엔 캐릭터가 강한 형사분이 계셨는데 실제 성격은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카메라 앞에 서는 걸 거부하셔서 섭외에 실패하기도 했죠.”

‘사건’이 프로그램의 주요 소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에 필요했던 건 이 프로그램의 진짜 주인공인 ‘경찰’의 협조였다. 경찰 입장에선 ‘국가수사본부’ 24시간 따라붙는 ‘관찰카메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만큼, 제작진과의 동행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지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배PD는 격하게 공감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에 방해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고 관련 설명을 이어갔다. 그는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촬영 분량이 있다. 방송에 나간 것은 실제 촬영분량의 1/20 정도”라며 “본편에 담기지 않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경찰의 요청, 피의자의 반대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애초의 대원칙은 피의사실공표문제와 공무상비밀유지문제가 있었고, 이를 당연히 지키는 선에서 제작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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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가 현재진행형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지켜본 소감을 밝혔다. 사진|웨이브


‘국가수사본부’는 에피소드별로 강력사건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마약 등 최근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떠오르고 있는 범죄들도 집중적으로 다룬다. 뿐만 아니라 경찰의 희로애락이 ‘제대로’ 담긴 회차도 있다. 배PD는 “‘국가수사본부’가 무겁고 진지하고 잔혹하게만 보는 게 아니라 ‘경찰이 이런 애환이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현재진행형’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는 만큼, 경찰들의 반응도 리얼하게 담아냈다. 사건이 풀리지 않은 시점의 절망도, 미궁에 있던 사건의 실마리가 드라마틱하게 풀려갈 때의 쾌감도 제작진은 가감 없이 담아냈다. 타 시사교양 다큐멘터리처럼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 게 아니고, 현재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만큼 경찰들의 인터뷰 역시 직업적인 측면을 넘어 진솔하게 담겼다.

“큰 원칙 중 하나가, 이야기를 보태거나 빼지 말자였어요. 그냥 상황을 정말, 가급적 있는 그대로 보여주자였죠. 문제가 되는 상황을 의도적으로 빼거나 한 것도 없지만, ‘이렇게 하면 경찰이 욕먹으려나?’ 싶어서 빼거나 ‘이러면 더 응원하려나?’ 이러면서 과장하거나 그런 게 없었어요. 정말 있는 그대로 보여드렸죠. 실제로 그렇게 수사를 하세요. 그분들은 미제로 남기지 않고 사건을 풀어야 하는 공무원이니까, 어떤 실마리가 풀렸을 때 정말 기뻐하시죠. 그게 그분들의 순간의 감정이라 생각해요. 공무원이라고 비즈니스적으로 점잖게 하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 콘텐츠의 시간도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과정을 보여줄 순 없지만, 취지와 맥락을 이해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찰과 동행하면서 경찰이라는 ‘직업인’이 갖는 고충에 대해서도 체감하게 됐다고 했다. 배PD는 “강력팀 하면 보통 강도사건, 살인사건 해결하는 영화적 상상을 하지만 이분들에겐 일상적 사건도 엄청 많더라. 실제 강력반 형사들이 큰 사건이 났을 때 고생하시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너무나 많은 사건들을 처리하시느라 너무너무 고생하시더라”고 말했다.

그런 경찰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제작진 역시 “매 순간이 돌발상황이었다”고. 배PD는 “제작진 입장에선 언제 어디서 사건이 터질 지 모르는데, 우리의 인력과 장비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여러 가능성에 대비한 카메라 세팅과 제작진 배치를 해야한다는 고충이 있었다. 또 자야 할 시간에 자면 안 되는 고충이 있었고, 촬영 분량이 너무 많아 (SBS에) 상당히 민폐를 끼쳤다”고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프로그램 공개를 일주일 남겨준 시점 예기치 않게 터진 ‘국가수사본부장’ 후보 관련 사건도 제대로 만난 ‘돌발상황’이었다. 배PD는 “1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수사본부’라는 여섯글자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방송 공개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국수본’이 신문을 도배하더라. ‘지금 공개하는 게 맞나’ 싶기도 했지만 우리는 일선의 수사하시는 분들을 취재한 거니까 초심을 잃지 말자 다독였던 기억이 있다”면서 “덕분에(?) ‘국수본’ 하면 웨이브 ‘국가수사본부’까지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됐다”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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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 배정훈 PD가 수사장르물 전문 제작자로서의 책임감과 소명을 드러냈다. 사진|웨이브


2008년 SBS에 입사한 배PD는 2014년 ‘그것이 알고싶다’ 팀에 들어간 뒤 ‘오늘만 사는 PD’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독하고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쳤다. ‘그것이 알고싶다’ 팀을 떠난 뒤에도 SBS를 대표하는 다양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메만졌고, 이번엔 SBS 시사교양 PD 중 첫 타자로 OTT와 손 잡고 ‘국가수사본부’의 메가폰을 잡고,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

방송가의 손꼽는 ‘탐사보도’, ‘수사’ 장르 프로그램 제작자인 만큼, 배PD가 갖고 있는 책임감도 특별했다.

“개인적으로 이런(수사) 장르에 관심이 상당히 많은데요, 이번에 ‘국가수사본부’를 제작하면서 우리 주변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하는 게 우리의 역할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진 한 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이야기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어느 정도 거리로 이걸 전달할 것인가. 또 제가 카메라 앞에 서서 질문하러 다니던 탐사보도와는 다르게, 이걸 관찰자 입장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시작된거죠. 계속 이러한 장르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고민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시청자들과도 토론과 고민을 계속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비판을 위한 비판 말고, 건강한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말미, ‘국가수사본부’에 대한 여자친구(배우 이영진)의 반응을 묻자 배PD는 “(제작기간 동안) 지방 출장이 많아서 많이 못 만났는데 ‘뭐 하고 다녔구나’라며 위로해주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최근 화제가 된 여자친구표 부적(실상은 캐릭터 카드)을 지갑에서 꺼내보이며 “최근 신상 부적을 줘서 두 개 갖고 다닌다”며 애정을 과시했다.

여자친구의 반응뿐 아니라, ‘국가수사본부’에 대한 일선 경찰들의 반응도 덧붙였다. “다들 고생했다고, 방송 잘 봤다고 삼겹살 같이 먹자고 하시더라고요. 고마워하셨어요. 그분들이 그렇게 묵묵히 자기 일 하는 걸 조명받았던 적은 없으니까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우리 아이들도 부모님도 우리 아빠를 그리고 자식을 멋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신다는 반응이 제일 많았어요. 그래서 참 뿌듯합니다. 삼겹살이요? 제가 사러 가야죠.(웃음)”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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