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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음주운전 사고와 처벌

각목든 폭력남편 피해 음주운전으로 도망간 아내.."면허취소 억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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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남편 피하려 음주상태로 운전해 10m 이동한 여성

유죄에다 면허까지 취소되자.."생명 위협느꼈다"며 소송

긴급대피인지가 관건..법원 "부득이한 음주운전 인정"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지난해 5월 중순, 한밤중에 자동차 운전석에 앉은 A씨. 혈중알코올 농도는 0.16%로 술에 만취한 상태였다. 이대로 운전하면 면허 취소는 물론 형사처벌 대상인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럼에도 A씨는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시작했다. 음주운전은 바로 앞에 주차된 차의 뒷부분을 살짝 들이받으면서 종료됐다.

이데일리

(사진=연합뉴스)


직후 A씨는 스스로 112에 음주운전과 사고 사실을 신고했다. 음주운전 혐의로 입건된 A씨는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형량은 벌금 500만원의 집행유예 1년이었다. 경찰청은 음주운전 사실을 바탕으로 A씨의 운전면허를 취소했다.

A씨가 행정소송을 내면서 그날의 사정이 자세히 밝혀졌다. A씨는 그날 밤에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갔는데, 사실혼 관계이던 B씨가 술에 취한 채 시비를 걸었다. B씨는 가정폭력 재발 우려 대상자로 등록돼 있을 만큼 폭력적이었다. A씨는 집 밖으로 나와서 주차해뒀던 차의 운전석에 앉아서 B씨의 화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B씨가 따라나와서 A씨에게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A씨가 내리지 않자 B씨는 각목으로 차량 유리창을 깨뜨리며 나오라고 했다. 깨어진 유리파편이 A씨에게 쏟아져 내렸다. 이대로면 차가 더 망가지고, 자신마저 크게 다칠 것으로 생각한 A씨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렇게 이동한 거리는 10m 남짓.

법정에서 A씨는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바람에 술을 마신 것조차 잊고서 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음주운전 이동 거리도 짧아서 큰 재산 피해나 인명 사고가 없던 점도 참작해달라고 했다.

사건의 쟁점은 A씨의 행위가 형법상 ‘긴급피난’에 해당하는지였다. 비록 형사소송에서 다룰 사안이지만, 행정소송에서도 무시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형법은 ‘자기나 타인이 위험을 피하려고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긴급 피난을 인정한다. 다만 해당 행위가 ▲유일한 수단이고 ▲피해를 적게 발생하고 ▲얻은 이익이 잃은 이익보다 크고 ▲사회적으로 적합해야 한다 등의 깐깐한 조건이 붙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사건을 심리한 수원지법은 A씨가 경찰청을 상대로 “자동차 운전면허 취소를 없던 일로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최근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한 음주운전은 B씨의 차량 파손과 폭력 행위에서 급하게 벗어나고자 했던 긴급피난 행위에 해당해 위법하지 않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법원은 A씨가 처음부터 음주운전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고, 폭력으로 부상을 입은 채 부득이하게 운전을 했고, 이후 차량을 들이받았으나 파손 정도가 가벼운 점을 두루 고려해 결정했다.

물론 형사재판에서 A씨의 유죄가 확정됐지만, 그 재판에서는 ‘긴급피난’이 쟁점이 아니어서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앞서 A씨의 차량을 파손하고 폭력을 행사한 B씨는 피해자(A씨)의 처벌불원 탓에 제재를 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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