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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음주운전 사고와 처벌

"아빠 죽인 사람, 단 한 달이라도 실형 받길"...음주운전 사고 유족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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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사고로 아버지 잃었다는 유족 글
가해자는 불구속 수사·실형 가능성도 적어
'음주운전사고 기사' 보며 "처벌 강화되길"

한국일보

8일 음주운전으로 대전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배승아(9)양을 치어 숨지게 한 방모(65)씨가 차에 오르기 전 비틀대면서 걷는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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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배승아(9)양의 목숨을 앗아간 대전 스쿨존 음주운전 사고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수많은 살인자들이 집에서 편안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한 음주운전 사고 유족의 글이 온라인상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음주운전 사고가 나는 게 반갑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음주운전사고로 가족을 잃은 입장에선 음주운전 사망사고 관련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 언젠가는 사법기관이 음주운전 사고 가해자를 강하게 처벌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는 취지다.

아버지를 음주운전 사고로 잃었다고 밝힌 작성자 A씨는 "우리 가족의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 더 많은 사고가 생겼으면 좋겠다"면서 "이런 기대를 하고 살아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하고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 음주운전 사고 피해 가족들 앞에 놓여 있다"고 썼다.
한국일보

1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음주운전 사고 유족의 글. 지난해 음주운전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는 작성자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줄어들 것이라며 처벌 강화를 호소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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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아버지는 지난해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다녀오겠다고 하며 나갔다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버지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한 사람은 같은 동네에 살던 주민이었다. 그는 면허 취소 수준의 술을 마셨지만 운전대를 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가해자가 합당한 죗값을 치르기만을 기다리며 슬픔을 견뎌왔지만, 최근 검찰로부터 보완수사 결정 통보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가해자가 119에 신고하지는 않았지만, 블랙박스에 피해자를 구조하려는 듯한 모습이 찍혀 있었고",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절박해진 A씨는 상담비만 수십만 원을 받는다는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변호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가 돌아왔다. "현실적으로 '이 정도'로는 실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보완수사를 요구한 이유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과실을 보기 위한 것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는 "다른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하고, 그 사고가 언론에 보도돼 화제가 되면 이 사건에 대한 양형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는 정도였다.

A씨는 "피해 유족들에게는 너무 죄송하지만, 슬프고 아픈 음주운전 사고일수록 더 반갑다. 그래야 판사님이 더 센 판결을 할 거고, 우리 아빠를 죽인 가해자가 단 한 달이라도 실형을 살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음주사고로 가족을 잃었던 만큼, 막상 관련 기사를 읽을 때면 눈물부터 앞을 가렸다. 그는 "눈물범벅이 되어 기사 하나를 한 번에 다 읽지도 못하면서 기사를 읽고 또 읽는다"며 "기사를 읽으면서 99%라고 했던 집행유예 가능성이 이젠 96%쯤 되진 않았을까, 이젠 80%쯤은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한국일보

11일 대전 서구 둔산동 스쿨존에서 만취운전자 차량에 치여 숨진 배승아(9)양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사고 현장에 놓아둔 꽃과 장난감, 음료수 등이 비닐에 싸여 있는 모습. 전날 강풍과 비 소식에 편지가 젖을까 봐 걱정한 주민들이 비닐로 감싸고, 날아가지 않게 돌로 단단히 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둔산동 맘카페 한 주민은 비 소식을 듣고 걱정돼 가봤더니 이미 몇몇 분들이 비닐로 잘 보호해 놓으셨더라면서 친구들과 어른들의 편지, 사고 당시 승아가 갖고 있던 물건들은 수거해 승아의 오빠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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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 강화를 호소했다. 그는 "나도 술 마시고 가해자를 차로 치어 죽인 뒤, 아빠를 죽인 그 놈인 줄 몰랐다고 어디까지나 술 먹고 한 실수라고 주장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며 "그런데 똑같은 인간으로 묶이기 싫어서, 아빠 얼굴에 먹칠하는 거니까 참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한 집안의 가장, 아이들의 엄마, 작고 소중한 내 아이를 죽인 사람은 남은 유족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면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황망히 생명을 잃어야 하나, 제발 피해자 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판결을 내리지 말아 달라. 음주운전자들을 엄하게 처벌해 달라"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도로를 달리고 있는 수많은 차들 중에 누가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며 "피해자는 가해자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데도, 가해자는 자기 집에서 따뜻한 밥 먹고 가족들이랑 웃으며 누가 또 술 먹고 사람을 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을 것"이라고도 썼다.

A씨의 글에는 공감과 위로를 표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 죽이려고 술 마시고 차를 타는 것 아닌가. 외국처럼 사형까진 아니어도 중형 좀 때려달라", "무섭게 처벌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지금처럼 쉽게 하지 않을 거다. 왜 방법이 있는데도 하지 않나" 등이다.

A씨처럼 음주운전자 때문에 가까운 사람을 잃었다는 누리꾼들의 사연도 소개되고 있다. "결혼 후 한참 만에 아이를 가져 기뻐하던 지인도 만삭 아내를 두고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삼촌도 쉬는 날 본가에 오려고 버스 타러 가다가 대낮에 음주운전하던 사람 차에 치여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앓아누우시고 밤낮으로 우시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제 친구도 재작년에 초록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세상을 떠났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등이 이어졌다.

원다라 기자 d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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