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양회동’들이 말했다…“정당한 노조활동”의 꿈, 혼란, 그리고 눈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놀라운 성취” 건설노조 단체협약 쥐고

현장 교섭하는 지역 간부들의 눈물


한겨레

지난 1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건설노조 탄압 중단 촉구 총파업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건설노조 고 양회동씨를 향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일곱 개 장으로 구분된 28개 조항, 부칙 4개 조항으로 이뤄진, 5쪽짜리 단체협약.

특별하지 않다. ‘주 40시간의 노동과 유급 휴일 임금지급 기준(보충 협약), 조합원을 이유로 고용 등에 차별을 두지 않을 것, 노조 전임자의 활동을 보장할 것, 분쟁의 평화적 해결’ 따위를 적었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이 규정한 내용을 확인하고, 일터의 현장 상황에 맞게 일부를 구체화한 정도다. 2021년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와 전문건설업체가 맺은 단협은 올해까지 전국의 형틀 목수, 철근공 등 토목건축분과 조합원 3만8000여명 대부분에게 적용된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단협과 이후 교섭 과정을 이야기하던 도중 건설노조 충남지부 이상호(59), 광주·전남지부 이준상(42), 부산·울산 경남지부 김태민(55)은 예외 없이 울음을 터트렸다. 모습은 제각각이다. 갑자기 흐른 눈물에 당혹해 안경 닦는 천으로 얼른 눈을 훔쳤다. 글썽인 채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말을 멎고 “어후, 어후” 탄식만 했다. 이준상은 “이 단협 몇장에 너무 많은 사람의 땀과 눈물이 담겼다”고 말했다.

건설노조의 단체협약은 노동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정 노동자들이 초기업 규모의 노조로 뭉쳐, 사용자(사업자) 단체에 속한 기업들과 해당 산업 노동 조건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틀을 공통으로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교섭’이 당연한 일터 현실에서, 이런 교섭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와 불평등을 극복할 대안으로 여겨졌다. 세 사람은 건설노조의 단협을 현장에서 적용하라고 요구하고 관리하는 일을 해왔다. 지난 1일 분신한 뒤 숨진 건설노조 강원지부 양회동 지대장이 “정당한 노조 활동”이라고 유서에 적은 일, ‘공동공갈’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일과 같다. 울고 있는 세 사람은, 그리하여 ‘양회동들’이다.

한겨레

건설노조 대전·세종·충청 건설지부의 단체협약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양회동들은 건설 현장 너머에도 있다. 산업 특성으로 인해 실업 상태인 경우가 잦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이 불완전하게 인정되거나 사용자가 모호한 하청·특수고용 노동자(특고)의 다양한 교섭과 단체협약은, 최소한의 노동 조건을 지키는 구명줄이었다. 2023년 봄, 애써 찾아냈다고 믿었던 교섭과 단협을 빼앗긴 화물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도 같은 두려움을 호소했다. “우리 요구도 공갈, 협박이었을까요?”(홍창의 배달플랫폼노조 위원장) “맨몸으로 경쟁에 내몰리게 됐습니다.”(고정기 화물연대 부산지역본부 양산지부장)

<한겨레>는 서울에서 건설노조의 1박2일 투쟁이 벌어지던 16~17일 양회동과 같은 일을 했던 건설노조 지역 간부들을 만나 노조 가입부터 단협 체결, 최근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겪은 희망과 혼란, 좌절을 들었다. 이어 비슷한 처지에 놓인 화물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를 만났다. 불안정 노동자의 교섭과 단협을 대상으로 한 정부의 공세 속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잃고 있는지 돌아보기 위해서다.

단협: 정착, 공정, 자부심


떠돌이 건설 노동자 세 사람이 노조에 모인 시점은 2010년대 중반으로 엇비슷하다. 충청도 출신 건설 노동자 이상호의 30여년 건설 노동자 인생에 얽힌 기억도 노조 가입 이전까지는 대부분 고향 땅 너머에 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때 하루 7~8천원 받고 성남에 다리 놓던 기억이 나네요. 그쯤부터 떠돌이로 일했지요.” 그가 회사와 고용 관계를 맺은 기간은 길어야 1년, 근속 기간 1년 미만이 94.3%(2021년 기준)에 이르는 건설업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처지였다. 고용의 불안정은 머무는 곳의 불안정과 일치한다. “오야지(팀장) 통해서 알음알음 일을 찾았으니까요. ‘현장이 거제도에 나왔는데 갈 수 있냐’ 그러면 가야죠. 제주도 갔을 때는 비가 많이 와서 돈도 못 벌고 나왔네요. 가족이랑 편히 밥을 제대로 못 먹었어요.” 2015년 막 조직되기 시작한 건설노조 충남지부에 가입하며 이상호는 비로소 정착했다. 노조가 지역 안에서 일자리를 제공한 덕이다.

김태민 또한 그즈음 “이렇게 살 바에야” 하는 마음으로 건설노조 부울경지부를 찾았다. 김태민은 “잘못 걸리면 석 달 이상, 일상적으로 한 달치 임금을 떼였고, 막상 ‘오야지’ 따라 현장에 가보면 ‘공사대금이 이것밖에 없다. 이것만 받고 일하라’는 얘기를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고 했다. 그가 막 노조활동을 시작한 2015년 기준 건설업의 체불 임금액은 2488억원으로, 전체 산업 임금체불의 19.1%를 차지했다. 이준상은 “그럴 때 불만을 얘기하면 뺨에 돈 던지고 ‘너 나가’하는 꼴도 많이 봤어요. 팀장 이상으로는 눈도 못 맞추는 거예요”하고 그 시절 ‘대등할 수 없었던’ 노사 관계를 전했다.

정착, 공정한 대가, 대등한 노사 관계를 꿈꾸며 세 사람은 건설노조에 합류했다. 합류하는 노동자가 늘며 대구·경북(2006년)을 시작으로 광주·전남(2013년), 부산·울산·경남(2015년) 같은 지역에서 먼저 노조와 지역 업체들이 권역별로 단체협약을 맺기 시작했다. 점차 확산하던 움직임은 2017년 마침내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형틀 목수·철근공 등이 조합원인 분과)가 전국 200여개 전문건설업체(철근콘크리트연합회)와 중앙 교섭을 하는 단계에 이른다. 아파트 단지 등 규모 있는 공사를 하는 전국 대부분 전문건설업체가 단체교섭에 포함됐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척박한 환경에서 노조를 조직하고, 사용자를 끌어모아서 교섭의 장으로 나오게 하고, 구체적인 임금 수준과 노동 조건을 동등하게 결정한 건설노조의 성과는 매우 놀라운 것”이라고 짚었다.

‘중앙교섭 → 권역 단위의 보충 교섭과 단체 협약 체결 → 업체가 지역에 현장을 꾸리면 지역 간부들이 단협 이행을 요구하고 노사 관계를 관리’하는 건설 노조와 회사들 사이 관계가 자리잡혔다. 임단협에 포함된 노동조건은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자연스럽게 건설 노동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건설노조와 회사가 합의한 임금 수준은 건설업의 표준 임금 노릇을 했다. 2018년 1만5천명 정도이던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 조합원 수는 현재 3만8천명 수준으로 늘었다. 김태민은 “다양한 업종의 노동자들이 먼저 노조 가입하고 싶다며 찾아 왔다”고 했다.

건설노조 지역 간부가 된 세 사람은 단협을 쥐고 각 지역에서 공사를 시작하는 업체를 찾았다. 이준상은 “그럴 때면 우리가 현장을 구조적으로 바꾼다는 자부심도 엄청났다”고 말했다. 그는 “양회동도 그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도기: 갈등, 협상, 이해


세 사람은 “단협의 해석과 이행을 사이에 두고 교섭 초기에 혼란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노사가 알아서 접점을 찾아가던 중”이라고 말했다.

이준상은 “광주 지역도 초기 3~4년 과도기를 겪었다”고 했다. 노사관계 개념이 희박한 건설업에 교섭과 단협, 이행이 자리 잡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는 노조 조끼만 보이면 문을 걸어 잠갔지요. 대놓고 ‘우리는 불법 도급 쓸 것’이라는 업체도 있었습니다. 조합원도 없는 각종 노조가 민주노총 건설노조 단체협약서를 가져다가 도장만 찍고 노조 전임비만 받아가는 진짜 갈취도 있었고, 회사 쪽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 조합원도 있었고요.”

한겨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이었다. 단기 입직과 실직이 반복되는 노동 환경에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지속적인 공급은 노조의 중요한 역할이다. 재하도급 등 불법 고용을 최소화하고, 건설업의 노동 조건을 건설노조 단협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도 일정한 조합원 고용이 유지돼야 했다. 다만 현재 제도에서 노사가 고용문제를 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불완전한 제도 아래에서 건설노조의 단협은 고용과 관련해 ‘조합원 우선 채용’ 대신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타협 지점을 찾았다. 그 해석을 두고 업체와 씨름하고 타협하는 일이 지역 간부들에 맡겨졌다.

김태민은 “우리 지역 해당 직종 조합원 비중을 들어서, 이 정도 공사 규모에서 차별되지 않는 조합원 고용 인원을 제시했다”고 했다. 이상호는 “노조법을 들어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집회·시위를 벌이거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을 신고할 때도 있었다. 고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선 단체행동권인 쟁의행위가 제한적이니, 집회·시위·불법 신고 등 시민의 일반적인 권리를 활용한 셈이다.

다만 최근 들어 이보다 더 근본적인 타협 지점이 생겨났다. 이상호는 “우리가 뚫고 나가는 방식은 일로 승부 보는 것”이라고 했다. “현장 조합원한테 ‘일 잘해야 한다’고 잔소리 많이 했습니다. 한 4~5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외부 업체가 처음 우리 지역에 들어오면 일단 ‘주변에 한 번 물어보고 오라’고 해요. 우리가 일을 잘 못 했다고 하면 안 넣겠다고요.”

조합원과 회사의 갈등이 있을 때 노조가 이를 중재하는 역할도 회사에 제시하는 ‘당근’이었다. 김태민은 “객관적으로 노동자가 무리한 이야기를 하면 조합원을 설득해보기도 하고, 다른 현장으로 옮기거나 지방노동위원회까지 간 사건에서 회사 편을 든 적도 있다”고 했다. 소규모이고 불확실한 고용 관계가 만연한 탓에 ‘노무 관리’ 개념이 희박한 회사(하청)를 대신해 노조 간부는 노동자를 독려하고, 회사와 갈등을 최대한 풀어가는 노무 담당자 같은 일도 맡았다.

이준상은 “특히 지역에서는 일상적으로 회사와 대화하다 보니 노조와 전문건설업체가 서로 사정을 이해하며 일종의 신의칙이 생겨났다”며 “그들도 원청과 관계에서 최저입찰제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을’들이고 이를 고려해 우리도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불가피한 노사 갈등을 처벌이 아닌 자율적인 교섭으로 풀어 “노동쟁의를 예방·해결함으로써 산업평화의 유지와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은 노조법 1조에 적힌 지향점이다. 노동자 수와 현장 규모가 적은 지역부터 노조법의 지향이 천천히 자리 잡고 있었다.

붕괴: 탄압, 갈등, 울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대대적인 건설노조 수사는 이같은 교섭 과정을 타깃으로 삼았다. 세 사람은 각자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등이 각각 공정거래법, 채용절차법 위반 등을 들어 단속에 합류했다. 대통령은 건설 노조를 ‘건폭’이라고 불렀다.

건설노조 조합원 2만5천여명이 모여 “건설노조 정당하다”고 외치는 한켠에서, 이상호가 울먹이기 시작했다. “힘들게 만들어 온 노사 관계가 공갈, 협박, 건폭이라는 말로 다 무너져 버린 겁니다. 단체협약은 종이쪼가리가 됐고 현장에서 대화는 막혀버렸어요.” 결국 울음이 터졌다. “미안해서요. 조합원들한테 미안해서. 놀고 있는 조합원이 많은데, 잘 대화하던 업체들도 만나주질 않아요. 이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습니다. 양회동 열사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요?”

건설노조에 대한 정부의 압박은 불법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넘어 현장에서 노조의 교섭과 단체협약을 무너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노조가 지난 15~17일 토목건축분과 조합원을 상대로 긴급 설문조사한 내용을 보면, 응답한 2262명 가운데 현재 실업 중인 노동자는 27%였다.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조합원 고용이 지난해 12월보다 30% 정도 줄었고 많은 지부는 70~80% 줄어든 곳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현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고용에 대한 어떤 태도 변화가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 610명 중 346명(56.7%)이 “민주노총 조합원은 아예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상호는 회사와 대화가 자리 잡힌 뒤 거의 하지 않던 ‘공사 현장 새벽 집회’를 올해 들어 매일 벌이고 있다. 대화가 사라진 자리에 갈등이 시작됐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건설노조 조합원이 느끼는 두려움은 무엇보다 그동안 교섭과 단협 이행으로 쌓아 온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기준’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설사 태도에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복수응답, 응답수 4219개)에 건설노조 조합원 32%가 “현장에 불법 고용된 노동자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사측이 작업 속도를 높일 것을 강요한다”(16.3%)거나, “작업 물량이 남았음에도 현장에서 나갈 것을 요구한다”(14.6%)는 응답도 있었다. 이준상은 “건설 현장 문제에 정부가 개입을 한다 하더라도 불합리한 구조는 두고 노조만 일방적으로 때리면 10년, 20년 전 기준도 없고 불법이 난무하던 시절로 건설업은 돌아갈 것”이라며 “그러면 또 노조는 그 불합리함을 딛고 격렬해질 텐데 왜 이런 비효율적인 싸움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두려움, 미안함, 울음으로 점철한 1박2일을 마치고 세 사람은 17일 다시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교섭을 복원하고 단체협약의 의미를 찾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건설노조의 1박2일 집회를 겨냥해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하청, 특고 등 비정규직들이 25~26일 노조법 2·3조 개정을 통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협약 체결권을 요구하기 위해 연 1박2일 집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명이 연행됐다.

양회동의 죽음에 담긴 의미, 불안정 노동자의 노사 관계에 얽힌 희망과 좌절, 사라진 노사 대화가 산업 질서에 미칠 영향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2023 서울 국제 블루스 페스티벌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후원하기]▶▶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