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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잘못 보낸 경보, 알맹이 쏙 빠진 대피령... 혼란의 출근길에 시민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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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발사체에 서울시·행안부 '허둥지둥'
아무 정보 담기지 않은 문자 시민들 황당
같은 날 日정부 신속·정돈된 대응과 비교
한국일보

3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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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영문 모를 경보에 놀랐는데, 게다가 오발령이라니…”

31일 서울 중랑구에 사는 직장인 장영균(28)씨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오전 북한 발사체가 한반도 남쪽을 향해 발사된 뒤 서울시가 보낸 경계경보를 약 22분 후 행정안전부가 긴급 재난문자로 부인하고, 재차 서울시가 경계경보 해제를 문자로 알리는 등 출근 직전 일대 혼란을 겪은 탓이다. 오발령도 문제지만 따로 발송된 재난문자엔 왜 경보를 발령했는지,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등 알맹이가 하나도 없었다. 장씨는 “진짜 전쟁이 터지기라도 하면 경보가 대피 길잡이 역할을 할 수나 있을지 걱정”이라며 혀를 찼다.

"실제 전쟁이었으면 어쩔 뻔"

한국일보

북한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31일 오전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발령 위급 재난문자(왼쪽 사진). 이어 행정안전부는 오전 6시 41분 서울시가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문자를 다시 보냈고(가운데), 서울시는 경계경보 해제를 알리는 안전안내문자를 발송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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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이날 오전 6시 41분 “오늘 6시 32분 서울 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의 재난문자를 보냈다. 서울 일부 지역에선 문자 발송 전부터 민방공 경보(적 공격이 있거나 공격 예상 시 경보) 사이렌 소리가 1분간 울리기도 했다.

시민들을 더 당황케 한 건 경보 발령 사유가 전무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북한의 발사체 소식을 몰랐던 시민들이 상황을 확인하려 온라인에 한꺼번에 접속하면서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가 한때 마비됐다. 이모(26)씨는 “대피하라고만 할 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어 별별 생각을 다 했다”며 “사정이나 알고 도망을 쳐야 할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오전 7시 3분 행정안전부가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 사항”이라는 정정 문자를 보낸 뒤에야 혼란은 잦아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경보 발령 사유는 담기지 않았다. 뒤이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해제 문자에 처음 ‘북한 미사일 발사로 인한 위급 문자’란 내용이 들어갔다.

허술한 재난정보 시스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피 요령 등 행동지침도 적시되지 않았다. 시민 윤정아(19)씨는 “학교나 지하철 역사 등이 대피소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막상 위급 상황이 닥치니 어디로 갈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초구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서모(36)씨도 “알람 소리에 놀라 우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정신없는데 어디에도 지침이 없었다”면서 “정부든 지자체든 대처 요령부터 알리는 게 먼저 아니냐”고 쓴소리를 했다.

일본은 즉시 "지하로 피신" 알림

한국일보

일본 정부가 31일 북한의 '우주발사체' 발사 소식에 오전 6시 30분 오키나와현에 발령한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 피난 경보. 도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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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허술한 대응은 지진 등 재난이 빈발하는 일본의 신속ㆍ정확한 조치와 대조됐다. NHK방송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6시 30분 인공위성으로 지자체 등에 긴급정보를 전달하는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통해 오키나와현 주민들에게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며 건물 안이나 지하로 피난하라고 당부했다. 약 30분 뒤인 오전 7시 4분엔 발사체의 일본 상공 통과나 낙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피난 권고를 해제했다. 일본 정부의 알림엔 경보 발령 사유와 대피 요령이 명확히 표기됐다. 그러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한일 양국의 재난문자를 비교하며 “바로 이게 대피 문자 양식의 정석” “우리 정부도 좀 배워라” 등의 질타가 쏟아졌다.



나광현 기자 name@hankookilbo.com
김도형 기자 nam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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