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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무슨 일?" 새벽 뒤흔든 사이렌…軍이 거꾸로 서울시에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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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북한이 31일 오전 6시29분께 평안북도 동창리 일대에서 남쪽 방향으로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 관련 뉴스속보를 시청하는 학생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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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새벽 서울시와 행안부가 각각 보낸 위급재난문자. 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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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준비하는데 갑자기 민방위 사이렌이 울리고 아내와 저, 아들 스마트폰에서 일제히 재난 문자가 동시에 들어오니까 정말 전쟁이 났구나 싶었습니다.”

서울시 강동구에 거주하는 박모(44)씨 말이다. 31일 960만 서울시민은 혼란에 빠졌다. 이날 새벽 6시 41분 서울시가 보낸 위급재난문자를 읽은 순간부터였다. 가족과 대피를 해야 하나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했지만, 대피 장소 등 추가 안내는 없었다.

허술한 위급재난문자에 더해 평소에 정부와 국민 모두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점도 시민 혼란을 가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재난안전포털이나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에는 비상시 행동요령도 나와 있고, 집·직장 주변 ‘민방위 대피소’도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자치단체가 평소 훈련을 하거나 홍보를 널리 하지 않으면 시민들이 평소에 숙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과거에는 민방위 훈련을 통해 이를 숙지해 왔지만, 전국단위 '공습대비' 민방위 훈련은 2017년 8월 이후 폐지됐다. 지난 6년간 전혀 대비가 없었던 탓에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모두가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새벽 깨운 경계경보에 서울시민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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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 TV에서 북한 우주 발사체 관련 뉴스속보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 휴대전화 안전안내문자를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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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혼란은 서울시가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 지령방송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바람에 발생했다. 통제소가 보낸 지령방송은 '현재 시각, 백령면 대청면에 실제 경계경보 발령. 경보 미수신 지역은 자체적으로 실제 경계경보를 발령'이란 내용이었다. 서울시는 이날 새벽 수도방위사령부 측에서 별도 경계경보 발령 요청이 없었는데도 이 지령을 ‘경계경보를 발령하라는 요청’으로 이해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군에서 판단한 발령 지역(인천시 옹진군 백령면·대청면 일대)을 우리는 17개 시도에 전달만 했을 뿐”이라며 “발령 지역 판단은 군에서 해야 한다. 행안부는 물론 서울시가 판단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 경계경보 사이렌에 수도방위사령부가 거꾸로 서울민방위경보통제소에 확인 전화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행안부 민방위 경보 발령·전달 규정 6조에 따르면 민방공 경보는 공군구성군사령관 등 군에서만 발령할 수 있다. 지자체장이 자체 발령이 가능한 재난 경보와는 구분된다. 북한 발사체가 서해상을 경유함에 따라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대청면 일대 경계경보 역시 공군사령관 요청으로 행안부가 발령했다.

민방공 경보는 경계경보와 공습경보, 화생방경보, 해제경보 등 4가지다. 경계경보는 적의 지상 공격·침투나 항공기·유도탄 공격이 예상될 때 내린다. 이때 발령 단계와 발령 시간은 모두 군에서 지정하고, 행안부는 군의 판단에 따라 제1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를 통해 ‘발령 행위’만 하게 된다. 행안부가 담당하는 발령 행위는 사이렌, 재난문자, 안내방송 등 3종류다. 17개 시도에 위치한 지역민방위경보통제소에도 상황을 공유한다.

중앙민방위경보통제소 연락을 받은 지역민방위경보통제소도 관할 지역에 사이렌, 재난문자, 안내방송 등 발령 행위가 가능하다. 다만 역시 ‘군’에서 발령 요청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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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31일 시청 브리핑실에서 이날 오전 북한이 주장하는 우주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서울시가 발송한 '경계경보' 위급재난 문자 관련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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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일본 정부는 같은 날 오키나와 현에 전국 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발령하면서 ‘미사일 발사, 북한에서 미사일이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안 또는 지하로 대피하라’란 구체적 내용을 담았다.

북한 발사체는 이날 오전 7시 5분쯤 전북 군산 어청도 서방 200여km 해상에 떨어졌다. 하지만 서울시 경계경보 해제는 기존 경계경보가 오발송이란 행안부 재난문자(오전 7시 3분)가 뿌려진 지 22분 만에 내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안부 ‘오발송 재난문자’ 발송 이후 상황 확인하느라 해제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이번 혼란을 계기로 대피 장소 등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공습과 폭격이 예상될 땐 가장 가깝고 안전한 대피 장소로 주변 지하철역이 꼽힌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 중인 서울 시내 역사는 337개다. 인근에 역이 없을 땐 지하주차장이나 상가 지하 공간도 효과적이다.



"정부와 군 경보체계 일원화해야"



행안부와 지자체간 전파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행안부는 “지령방송 문구는 정부합동예규인 민방위 경보발령 전달 규정에 따라 발령하고, 31일도 예규상 문구 그대로 발령했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군의 경보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명국 전 방공포병사령관은 “군의 탄도미사일 경보 체계를 행안부·지자체와 연동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소동”이라고 지적했다. 군은 미사일을 발사하면 예상 낙탄 지점 근처 부대에 자동으로 경보를 발령하는데, 이런 시스템과 정부 시스템을 연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앞으로도 비슷한 오경보가 이어지면 이솝우화 ‘양치기 소년’처럼 다들 경보를 무시하는 상황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김민욱·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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